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이프란츠 Nov 20. 2024

도도새의 역설

날지 못하는 새


산호초로 둘러싸인 화산섬에 새들 자유로웠다. 가끔 폭우강풍일었지만 기온은 언제나 온순했고,  숲은 어디서나 둥지를 틀 수 있을 만큼 넉넉했다. 새들은 부러 정글 속 깊이 몸을 숨기지 않았고, 지천에 널린 먹잇감으로 싸우지도 않았다. 새들은 섬의 주민이 되어  생태계에 응했고, 섬 곳곳을 매일 돌아다니며 조막만 한 보물을 숨겼다. 보물 섬서 자라는 카라비아의 열매였다.


새들은 그것을 끔찍이 아꼈는데 열매 씹지 않고 그대로 삼키곤 했다. 그리고선 슬슬 아랫배가 부풀어 오르면 적당한 장소를  열매를 배설했다. 그런 습관적 행동이 언제부터 반복됐는지 알 수는 없지만, 새들이 더 이상 날지 않게 되면서 추정. 도도새는 그렇게 화산섬에 가장 잘 길들여진 동물이었다. 달아날 이유가 없기에 천천히 날지 않게 되었다. 그것은 정말 놀라운 경험일 테지만, 모리셔스 섬에선 아주 자연스럽고 당연한 현상이었다.   


그러다 16세기 바다를 항해하던 포르투갈 선원들이 모리셔스 섬을 발견했고, 이후 네덜란드 섬을 지배하면서 섬은 범죄자의 유배지로 사용다. 사람이 살지 않던 섬에는 곧 범죄자 함께 개, 고양이, 원숭이 등 외래종이 침입했다. 그것들은 도도새의 알훔쳐 달아났고, 사람들은 도도새를 보이는 족족 죽였다. 배를 곯아서가 아니라  재미로 했던 다. 엇에도 얽매이지 않던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고작 날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그리 쉽게 멸종될 수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모리셔스 섬에서 벌어진 사건을 두고 도도새의 법칙 말한다. 그것은 도도새 섬의 풍환경에 나태해졌을뿐더러, 스스로 날기를 포기했기에 도태됐고, 약육강식이 배하는 야생에서 살아남기 위해 끓임 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장이다. 그렇지 않다면 생존 가능 희박해질 수밖에 없다 다. 한때 우리에게 이런 도도새의 법칙을 종종 인용했던 대통령이 있었다. 금은 자신이 비난던 도도새의 섬 같은 곳에 고립된 채 살고 다.


도도새의 그림을 보면 날카로운 부리와 발톱을 가졌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빠르고 거칠어서 가축으로 삼기에 적당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리고 그런 도도새가 길들여지지 않았다는 건 자연적 본성일 테다. 럼에도 사람들은 총칼을 들어 새들을 위협했고 무분별 사냥을 했다. 얼마나 잔인했던지 현재까지 도도새의 온전한 뼈를 찾을 길이 다. 상황이 이런데도 사람들은 도도새를 바보새라며 조롱한다. 자신들이 저질렀던 참혹한 살육 현장을 낭만적인 모험처럼 떠들면서, 모리셔스 섬엔 아주 먼 옛날 날지 못하는 새들이 살았다는 이야기를 전설처럼 다.


도도새를 멸종시켰던 인간의 난폭은 현재 진행형이다. 심지어 그런 폭력은 같은 종족인 인간을 상대로 자행되고 있다. 그래서 팔레스타인이나 우크라이나에는 순진무구한 사람들이 고 있다. 인간의 탐욕은 그림 리퍼의 대낫보다 치명적이어서 살아남은 자 불안케 한다. 래서 멸종의 위험은 그림자처럼 우리 곁을 따라다다. 특히, 현장 등에서  경고하는 신호가 자주 감지된다. 오늘 자본주의는 이윤 창출 위해 산업안전 비용 보다 노동자의 죽음을 싸게 는 게 낫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도도새가 섬에서 멸종되었던 것처럼 산업현장에서 분주히 일하 개미도 조만간 전멸 모다.


날지 못하는 새들은 야생과 가축의 삶 중 무엇을 선택할지 고민한 적이 없다. 오직 인간에 의해 들닭과 집닭으로 뉘었을 뿐이다. 그리고 간은 집닭으로 구분된 것 길들다. 그런데 길들다는  무슨 뜻일까? "길들인다는 건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야. 네가 날 길들인다면 우린 서로 필요해진단다."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말했다. 길들임은 서로 소중히 생각하는 것다.  길들는 많은 시간정성어가고, 천천히 다가가는 인내 요하다. 여우는 자기처럼 길들지 않은 동물들이 사냥지만, 길들 닭은 큰 관심을 다며 닭처럼 자신을  길 부탁했다.


하지만 그런 여우라도 케이지 안에  바라진 않을 것이다. 그것은 길들임이 아니라 사육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대랑 육계나 계란을 생산하기 위해 만들어진 배터리 케이지에선 길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누가 빨리 생산을 많이 하느냐를 다 뿐이다.  속에서 은 세상과 단절된 채 그저 의미 없이 주어진 것다. 소비 위한 사육 기다림은 곧 지체이고 실패를 뜻한다. 그건 가 바랐던 길들임 다.  


도도새의 멸종은 분별한 욕심과 무관심 때문 일어났다. 길들 없 폐기된 도도새는 우리 모습  닮았다. 작은 날개가 있쉽게 자유로이 날 수 없다는  절망을 . 절망도도새처럼 순간 사라질 모다는 불안 때문. 그래서 정말로 중요한 건 서로 길들이소중 간직 것이.  사라진 지 300년 지난 , 우리는 그런 사실을 자꾸 잊는. 그리고 서로 길들못하고 있. 이것은 도도새의 역설이다.





 <참고자료>

* 그림 리퍼(Grim Reaper): 커다란 낫을 들고 있는 저승사자를 의미함

*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

* 나무위키 <도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