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닭은 우리에게 치킨이 되었을까? 나는 꽤 오래전부터 이런 생각을 자주해왔다. 그것은 닭과 치킨 사이에서발생된어떤 일과감정에 관한 것이다. 그 사사로운 걸 한번 꺼내어 본다면내가 치킨에 집착하는 이유를 알 수 있지 않을까. 내게 일상적이지만은 않은 치킨, 바로 그런 이야기를쓰려는 거다. 다만, 나는 일단 글을 써보겠다고 마음만먹었을 뿐,앞으로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모른다. 그저, 이야기를 하다 보면 무언간 손에 잡히지 않을까 싶다.
약 5천 년 전 길들였던 인도차이나 들닭은 현재인간과공존하는 닭이 되었다. 다른 새들과 달리 닭은 잘 날지 않고 굳이 높은 곳에 오르지도 않는다. 투계용 닭을 제외하고 성격도 비교적 온순해 가축으로 기르기 좋다. 그것은 먹이사슬 상위에 있으면서 최대 천적인 인간의 보호를 받고 있다. 척박한 땅에서도 닭은 적은 양을 먹고 빨리 자란다. 천재지변 등으로 급박한 순간엔 보자기에 싸서 간단히 운반할 수도 있다. 생존과 적응의 문제를 해결한 닭은 이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가축이다. 인류가 지구상에 소멸한다 해도 닭은 끝까지 살아남을 것이다. 매일 음습한 어둠을 물리치고 가슴 깊숙이 품었던 알을 낳으며, 떠오르는 해를 감격스레 맞으면서 말이다.
유태인이나 인도네시아인은 제물로 닭을 쓴다고 한다. 날개가 있어도 발바닥이 땅에 붙어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닭, 그처지가 인간의모습을 닮은 것이다. 인간은 자신을 쏙 빼닮은 닭을 잡아 신에게 드린다. 그리고는 자기 죄를 씻고 신의 은총을 간절히 구하는 거다.
이제 닭고기는 단백질의 주요 공급원이지만, 과거엔 주로 달걀을 얻기 위해 닭을 길렀다. 귀한 손님이 어쩌다 오면 씨암탉을 통째로 잡아 가마솥에 보양식인 백숙을 끓였다. 그래서 '통닭'은 서민에게 고급스러운 음식이었다. 1880년대 개항기에 서양식 병원 등 신문물이 들어왔을 때, 원두우(영어명 언더우드)는 국내 선교를 위해 한글번역이 필요하다 생각했다. 그래서 1890년 그는 일본 요코하마에서 우리나라 최초 한영사전인 <한영자전>을 발간했다. 여기에 이미 '통닭'이란 낱말이실렸으니 통닭이 얼마나 우리 일상에밀접했는지 보여준다.
'통닭'은 무게가 아닌 마리 단위로 소비했던 생활 탓에, 지금도 우리는 복날닭 한 마리를 찾는다. 그리고 돼지고기나 소고기와 달리 닭은 마리 단위인 '호'로 판매된다. 호수가 높다는 건 그만큼 중량이 무겁다는 걸 뜻한다. 5호는 500그램, 여기에 100그램씩 더하여 나머지 호수를 정하면 된다. 일반적으로 닭의 최대 호수는 17호이며, 17호는 1,700그램이다.
1932년 동아일보에 연재된 소설 <흙>에선 "일본요리의 대표는 사시미지요, 청요리의 대표는 만두, 양요리의 대표는 암만해도 로스트 치킨(닭고기 구운 것)이지요"라고 각 나라를 대표하는 음식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우리에겐 김치가 그런 음식이라고 덧붙였다. 부러 다이어트나 채식 열풍이 불어서 그랬을 것 같지는 않은데, 다른 민족의 고기음식과 비교해 백숙도 아닌 김치를 들었어야 했는지. 아마도 백숙을 우리 민족의 대표 음식이라고 말하기엔 닭이 부족했던시절이었을 테다. 1930년대 말제작된 <조선외래어사전>엔 '프라이드치킨'이란 말도 등재됐다. 적어도 이 시기 우리는 프라이드치킨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프라이드치킨은 한국전쟁 이후가 아니라 이미 일제강점기부터 백숙 자리를 넘보았을 것이다.
본래 프라이드치킨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먹던 음식에서 유래한다. 미국 남부지역은 목화농장에서 투입될 노동력이 필요했고, 노예선에 강제로 실린 아프리카인은 농장에 팔렸다. 농장 노예들은 하루종일 고된 작업에 매달렸고 농장주의 차별을 감당했다. 그들은 농장주가 먹다 남긴 닭조각을 모아 간단히 기름에 튀겨 단백질을 보충했다. 하지만 고향인 아프리카의 튀김닭 맛엔 미치진 못했을 것이다. 그래도 그들은 살기 위해 그것을 먹었고, 나중엔 먹기 좋게 갖은 향신료를 첨가했다. 그것이 프라이드치킨의 원조다.
그러다 1939년 켄터키 프라이드치킨(KFC)이 상업화에 성공한다. 현재 KFC는 스파이시하고 바싹한 튀김옷을 입은 프라이드치킨을 미국뿐만 아니라전 세계에날개 돋친 듯 팔고 있다. 한국전쟁 이후 우리 땅에 주둔한 미군들이 뜯던 프라이드치킨, 그것은 기름진 게 하나 없던 우리에게매력적인 음식이었다. 우리는 간신히 얻은 프라이드치킨에 가본 적도 없는 켄터키의 옛 추억을 떠올렸다.
1960년대 '명동 영양센터'를 필두로 전기구이 통닭 시대가 도래한다. 영양센터는 국내 최초의 로스트 치킨이었는데 지금도 명동에서 영업 중이다. 재밌는 건 이름이 전기구이라 해도 마지막 내올 때엔 유채기름에 살짝 한 번 더 튀긴다고 한다. 그러다 1977년 같은 지역에 있던신세계백화점 본점 지하에서통닭이 아닌 조각닭을 압력튀김기에 튀겼다. 그렇게 만든 림스치킨이 현재의 프라이드치킨 형태이다. 림스치킨은 염지 된 닭에 인삼이 첨가된 파우더를 묻혀 튀기는 엠보치킨이다. 우리 몸에 인삼이 좋다는 인식을 최대한 활용하고, 치킨 고유의 비린내를 제거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그렇게 우리나라 최초의 치킨프랜차이즈가 탄생했다.
전기구이 통닭이 뻑뻑하고 밋밋한데 반해, 엠보치킨은 부드럽고 감칠맛 나는신세계였다. 엠보치킨은 림스치킨뿐만 아니라, 둘둘치킨, 보드람치킨 등으로 이어진다. 학창 시절 학교에서 가까운 신촌골목에 둘둘치킨이 있었다. 이전부터 알던 치킨과 달리 크기는 좀 더 작았고 맛이 진했다.언제나 치킨 사장님의 후한 인심 덕에 닭다리 3개 얻었다. 근데, 엠보치킨 특성상 작은 영계를 쓰느라 중량을 맞추려 한 마리 반을 썼던 까닭이었다. 단골집 인심이라 믿을 만큼 나도 한 때는 순수했다.
림스치킨 등장 후 1980년 초부터 무늬가 없는 프라이드치킨이 활개 친다. 민무늬 프라이드치킨이란 염지 되지 않은 살로 담백하고, 물로 반죽한 튀김옷을 얇게 입혀 금방 조리된다. 간은 소금이나 후추를 뿌려 맞추면 된다. 지금도 전통시장에 가면 초벌로 튀겨져 탑처럼 쌓은 그런 통닭을 종종 볼 수 있다. 따라서 치킨 본연의 맛을 즐기고 싶다면 역시 시장통닭이 답이다. 어차피 먹기 전에 통닭을 잘라야 하므로 나는 조각으로 튀겨낸 민무늬치킨을 선호한다.
1984년 4월 KFC가 서울 종로 탑골공원 사거리에 1호점을 내면서 본격적인 켄터키 프라이드치킨 시대가 열린다. 그러나 현재 KFC 1호점은 2022년 1월 폐점되었다. 구도심 상권의 붕괴를 지적하기도 하나, 코로나19 감염의 장기화로 인해 급격히 줄어든 외식활동이 결정적 원인으로 꼽힌다. KFC진입으로 그동안 켄터키 상호를 쓰던 시장통닭은 간판을 걸고 사투를 벌였다. 그리고 결국 시장에선 켄터키 간판을 내렸다. 진짜 켄터키가 원조 켄터키를 이겼기 때문이다. KFC는 예전에 엠보치킨을 팔았지만 지금은 오리지널 치킨 메뉴로 남기고, 바싹한 크리스피치킨을 주력 상품으로 밀고 있다.
1980년이 되면서 프라이드치킨이 본격화된다. 특히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대중음식 반열에 올랐다. 그리고 1980년 후반 한국식 치킨이라 할 수 있는 양념치킨의 붐이 일어난다. 시장통닭인 민무늬 프라이드치킨에 고추장, 물엿, 간장 등을 베이스로 만든 양념을 버무려 양념치킨을 만든 것이다. 양념치킨의 원조가 누구인지를 두고 법적 싸움까지 벌였지만, 이제까지 개발된 치킨양념이 수백가지에 이르는 걸 보면, 양념 논란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무의미한 싸움일 테다. 당시 양념치킨 광고를 위해 유명 개그맨들이 TV에서 처갓집이나 페리카나를 외쳤던 게 기억난다.
2000년대 웰빙으로 건강하고 담백한, 지방이 적은 BBQ, 굽네치킨 등 로스트 치킨이 대두된다. 걸그룹 등이 광고 전면에 등장한 것도 이때부터다. 개그를 보면서 자란아이들에게 더 이상 치킨은단순히 먹는 음식이 아니었다.따라서 보다 화려한 이미지를입혀야 했다. 로스트 치킨은염지 된 닭을 그대로 굽거나 파우더를 입혀 오븐기에 넣으면 된다. 그렇게 구우면 겉은 바싹하고 속은 촉촉한 겉바속촉이된다.
지금은 다시 '후라이드치킨'이 아닌 프라이드치킨으로 돌아왔다. 반쯤 양념을 묻힌 반반치킨이 대세이다. 소위 말하는 K 푸드의 선봉장이 되어 프라이드치킨이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치킨은 과거 어떤 시기에 풍미했던 맛을 되찾는 게 아니라, 정말 우리 입맛에 맞는 걸 찾기 위한 여정인 것 같다. 그러고 보면 나는 태어날 때부터 치킨과 함께 성장했다. 그래서 내 삶을 관통하는 치킨의 역사를 생각하다보니, 마치 내가 글을 쓰는 게 아니라 치킨이 되어 기름 속에 퐁당 빠진 듯한 착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