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분지 도시로 여름에는 무척 더워 오죽하면 아프리카만큼 덥다 하여 대구 + 아프리카를 합쳐 [대프리카]라는 신조어가 생겼을 정도로 뜨거운 대구를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더웠던 올해(2024년)의 여름에 방문을 하게 되었다.
[가고 있는 중}의 즐거움
대구는 나에게 4월의 벚꽃 시즌과 같이 짧지만 아름다운 추억이 깃든 도시이다.
대구 1호선 안지랑역의 빌라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하였고, 신혼이었으나 신랑이라는 사람은자신의 엄마와 부산에서 함께 살면서 대구 신혼집에는 매주 화요일이나 주말에만 방문(?)을 하였다. 그렇게 연고지가 없는 도시에 나 혼자 덩그러니 있을 것이라는 서울에 사는 지인들의 생각과 달리,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대구에서도 열심히 일을 해야 했던 나는 외지인이라는 단점이 있었지만, 회사에서 알게 된 언니들과 동생들의 따뜻한 마음 씀씀이 덕분에 8년이 지난 현재도 대구의 이미지는 따뜻함으로 다가온다.
나는 서울 사람이 어쭙잖게 사투리 따라 하는 게 제일 싫다
첫 만남에서부터 대구사투리 억양으로 대놓고 미리 경고를 주었던 왕언니는 첫인상은 무서웠으나, 일 때문에 징징 대는 나에게 업무의 팁(Tip)도 무심한 듯 살짝 던져 주고, 내가 살던 집 건너편의 누드 닭발 맛집이 있다는 것도 알려주며 그 음식을 처음 맛보게 해 주었다.
그리고 동성로라는 번화가를 알려 주었고, 그곳에서 한 브랜드의 유리컵을 사고 싶었지만 [과소비를 하지 말자!]라고 스스로 세뇌시켜 놓고선 포기했었는데, 며칠 뒤 사무실 내 책상 위에 그 컵이 포장되어 올려져 있는 감동도 경험하였다.
그 감사했던 추억들을 떠올리며 나의 평생친구와 대구에 도착하자마자, 호텔에서 짐을 풀고 동성로 쪽으로 산책을 나 섰다. 폭염 경보가 울렸던 그 무더운 날에.
동성로에서
8년 만에 혼자가 아닌 평생 친구와 동성로를 걷다가 그 시절엔 없었던 거대한 관람차가 생뚱맞은 골목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는 것에 헛웃음이 나왔고, 대구백화점이 음산한 분위기를 내뿜으며 굳게 문이 닫혀 있는 것을보았을 땐 잠깐동안 "대백 앞에서 보자"라고 말을 했던 7년 전의 빈이 언니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고, 그 대백(대구 백화점의 줄임말)이 사라졌다는 것에 나는 왜 눈물을 흘렸는지아직도 의문이다.
엄마가 여기에 살고 있을 때 하은이가 엄마 뱃속으로 쏘~옥 들어왔어
대구 지하철 1호선 라인의 [안지랑] 역을 짚으며 평생친구에게 태몽이라는 것도 이야기해 주고, 그것에 대한 여러 질문을 받아 꼬꼬무(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의응답의 시간으로 바뀌는 상황에서도 왠지 다른 때와 달리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아이의 순수한 질문에 착실히 응답해 주기도 하였다.
아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호텔로 들어가기 전 근처에 자리 잡고 있는 [김샛별양과자점]에 들러 사장님과 잠깐의 귀한 수다의 시간도 가질 수 있었다.
약국 옆 김샛별양과자점 - 친절한 샛별사장님의 정성 가득 수제 구움과자
수다의 시간에도 구움 과자를 사러 들어오는 학생 손님들부터 퇴근 후 달달한 무언가로 힐링을 하러 온 손님까지. 오후 9시까지 운영하는 양과자점은 달달함으로 지친 하루를 달래러 온 손님들이 꽤 있었다.
내일7년 만에 만나는 빈이 언니에게 주려고 샛별사장님의 추천 양과자들로 구성된 선물세트를 구매하고 나오려는데 돈을 안 받으려는 자와 반드시 지불하려는 자의 실랑이 사이에서 작은 꼬마 친구가 "엄마 그냥 나 먼저 간다"라고 문을 열고 나가는 바람에 지불하려는 자는 돈을 그냥 카운터 위에 올려놓고"잘 지내! 언젠가 또 봐"를 외치고 뛰쳐나와 버렸다.그러고는 호텔로 걸어가며 생각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