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배송업이 주는 여러 장점 때문에 이 일을 좋아하며 감사함을 느낀다. 하지만 특정 상황이나 계절이 오면 실내에 앉아서 일하는 직장인이 너무나 부러워진다. 예를 들면 눈이 많이 오는 날 말이다. 이런 날씨에는 야외에서 걸어 다니거나 운전을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두려움을 느끼는 순간일 것이다. 이 두 조건에 모두 해당되는 배송업의 난이도는 수직 상승한다. 보통 남자는 군대에 있을 때부터 눈을 혐오하기 시작하는데 하루종일 제설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언컨대, 이 배송업이 느끼는 겨울과 눈의 공포에 비할 바는 못 된다.
폭설이 내린 날은 일단 일을 시작하는 것부터가 난관이다. 지금에야 분류작업을 야외에서 하는 경우가 드물지만 몇 년 전만 하더라도 환경이 굉장히 열악했다. 그래서 첫 몇 년은 눈을 맞아가면서 눈 위에서 일을 하기도 했다. 꽁꽁 언 손가락을 호호 불어가면서.
이렇게 분류작업이 끝나면 본격적인 고난이 시작된다. 도로가 차갑게 얼고 그 위로 눈이 쌓이면 천연 스키장이 완성되는데, 운전 중에 분명히 핸들을 옆으로 틀었음에도 차가 직진만 하는 그 공포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정면에 사람이나 비싼 차량이 있는 경우에는 정말 아찔하다. 그 순간에 나는 무기력 이란 단어를 온몸으로 느낀다. 마치 마음대로 되지 않는 내 인생 같다. 조그만 언덕도 오르지 못해 뒤로 미끄러져 내려온다. 아래의 사진에서 바퀴자국이 끊어진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렇게 밤이 새도록 절망과 싸우고 있으면 사람들은 해맑은 표정으로 눈구경을 나온다. 하하 호호 웃으며 순사람을 만들고 있는 저 앞의 사람은 과연 그들 앞의 차가 운전자의 의지보다는 관성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을 알까. 안다면 저렇게 느긋하진 않을 텐데 말이다.
덕분에 이런 날은 옆에서 걸어 다니시는 할머니가 내 차를 앞지르는 경우가 많다. 현타가 적잖게 오는 순간이다. 그래서 작은 골목들은 운전을 포기하고 걸어서 배송을 하는데 이 순간도 안심할 수 없다. 사실 가장 위험한 것은 건물의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보통 건물 입구에 있는 대리석은 눈과 얼음으로 뒤덮여 있기 때문에 상당히 조심해야 한다. 나는 여기서 미끄러져 공중에 뜬 적이 여러 번 있기에 그 위험을 너무나 잘 안다. 내심 어릴 적에 합기도를 다닌 것이 뿌듯하다. 그때 배운 낙법은 요긴하게 쓰였으니까.
더군다나 이런 궂은 날씨에는 다른 날에 비해 일도 많아진다. 직접 장을 보거나 외식을 하기보다는 집에서 적당히 시켜 먹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고객을 겨냥한 식품 배송 회사들은 각종 할인 쿠폰을 날려댄다. 솔직히 나도 좋은 쿠폰이 오면 주문을 하는 편이기에 누굴 탓할 것도 없다.
이렇게 이기지도 못할 눈과 싸워가며 집에 도착하면 '와 오늘도 살았다'라는 생각이 절로든다. 힘이 들었느니, 시간이 늦었으니 하는 것들은 중요하지 않다. 사고 없이 건강하게 집으로 들어오면 그날은 성공한 것이다. 모진 세상을 살다 보면 삶에 대한 감사함을 잊을 때가 있는데 나는 적어도 이런 날에 감사함을 느낄 수 있다. 오늘도 무사히 집에 온 것만으로도 너무나 감사한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