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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벨러 Feb 22. 2024

택배 하다 만난 꼬리가 긴 여자

야간에 일을 하다 보면 정말이지 기상천외한 풍경을 마주한다. 치마가 뒤집어진 채로 길에서 자고 있는 여자, 편의점 앞에서 대변을 보는 사람, 내 차의 블랙박스에 대고 스트립 쇼를 하는 아주머니 등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진귀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을 보면 카메라부터 켤 것 같지만 실제로 마주친다면 차마 그들의 프라이버시를 생각해 도저히 촬영을 할 수가 없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취해 있으므로 대처하기가 대단히 난감하다. 특히 상대가 여성이라면.


얼마 전 일이다.  나는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이 엉덩이에 휴지가 매달린 상태로 화장실에서 나오는 것을 목격했다. 옛날 시트콤에서나 나올법한 그 휴지의 길이는 대략 2m는 족히 넘었기에 그녀의 발걸음을 따라 한참을 나풀거리며 움직였다.


나는 속으로 오늘도 진귀한 풍경을 보게 됨에 감사하하며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저걸 내가 가서 떼 줘야 할까? 모른척하고 지나가야 할까. 요즘 같은 세상에 괜히 나서서 오해를 사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녀는 누가 봐도 취했다고 생각할 만큼 비틀거렸지만 걸음걸이는 실로 당당했다. 나는 그게 더 무서웠다.

내가 고민을 하는 사이 그녀는 횡단보도 앞에 서 있었다. 아마도 신호 색깔은 구분할 수 있는 상태였나 보다.

나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저기요."


"네?"


역시나 그녀는 동공이 풀려있었다. 날 보고 있는 건지 아니면 다른 어딘가를 보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더욱 무서워졌다. 이걸 뭐라고 말해줘야 할까? 잠깐 고민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그쪽 엉덩이에 휴지 달려있어요"


"네?"


역시 그녀는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나는 손을 뻗어 그녀의 휴지를 잡아 뽑은 후 그 풀린 동공 앞으로 흔들어댔다. 


"이거요"


그녀는 '오' 오하는 감탄사와 함께 나를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했다. 아마도 그녀에게는 새벽에 어떤 미친 사람이 보여주는 휴지 마술 쇼 정도로 보였나 보다. 졸지에 상태 안 좋은 마술사가 되어버린 나는 멋쩍게 차로 돌아왔다. 그래도 선한 일을 했다는 마음에 내심 뿌듯했다. 기분 좋은 하루였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그 휴지를 완전히 제거하지는 못했다. 생각보다 바지 안으로 깊숙하게 들어가 있었나 보다. 그녀는 결국 한 뼘 정도 되는 휴지를 엉덩이에 매단 채로 한참을 걸어 다녔을 것이다. 그래도 내 덕에 저기 멀리서도 보일 것을 뒤에서만 보아야 보이는 상태가 되었다.  그녀를 뒤에서 보지 않는 이상 그 휴지 때문에 욕먹을 일은 없을 것이다.


괜찮다. 원래 성인군자도 뒤에서는 욕을 먹기 마련이니까. 이 복잡한 세상에서 자신의 험담마저 없길 바란다면 그건 너무 욕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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