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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캇아빠 Mar 22. 2024

정말 잘하고 있어요

오늘 딸아이의 학교에 다녀왔다. 부모님/선생님 인터뷰의 밤이라는 이름의 행사다. 일 년에 2번 있는 선생님과 만나는 시간인데, 현재 배우고 있는 과목의 선생님을 만나서 짧게 5분 정도 이야기를 나눈다. 초등학교 때는 스케줄을 잡고 15분 정도 정식으로 앉아서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었는데, 고등학교로 올라가면서 선착순으로 5분짜리 짧게 간단하게 대화를 하는 시간으로 바뀌었다. 아이가 배우고 있는 4과목의 선생님을 각 교실로 찾아다니면서 수업진행상황을 듣는 건데, 한 번에 3~4팀 정도가 앞에서 기다리고 있고, 만약 앞에 부모님이 있는 사람이 극성이라면 기다리는 시간이 꽤 길어진다.


학교로 가기 전 수학선생님이 보내준 중간테스트 시험 결과를 보자고 하자, 아이는 이번 시험을 망쳤다고 하면서 울기 시작했다. 너무 울어서 정확히 들리지는 않지만, 시간이 모자랐다, 어려운 문제를 풀다가 다른 문제를 못 풀었다, 다른 애들은 쉬운 문제부터 풀었다, 나도 그렇게 했어야 했는데 억울하다, 같은 이야기 들이다. 사실 충격적인 점수이기는 했지만, 아이와 함께 시험전날 같이 공부했던 봐로는, 아이가 어떻게 푸는지 모르는 것도 아니고, 원리도 잘 알았다. 그래서 시험점수에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해주고, 아빠도 학교 다닐 때 시험을 그렇게 못 봤는데 이렇게 잘살고 있지 않냐고, 기초를 다지는 게 중요한 거지 점수는 아무 상관없다고, 달래어 주자, 가까스로 눈물을 멈춘다.


하지만, 문제는 그 점수를 들고 선생님을 만나는 일이다. 선생님을 만나는 일은 언제나 불편하다. 교실 앞에서 잔뜩 긴장하고 있으니, 오히려 아이가 내게 너무 긴장하기 말라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기다리는 동안 나는 식은땀을 계속 흘리고, 다리는 안절부절못하고, 팔짱을 꼈다가 풀었다가 반복하고, 이상한 목소리로 아이에게 괜찮을 거야라고 연신 떠들어댔으니 말이다.


"정말 잘하고 있어요. 뭐라고 보탤 말이 없을 정도로 잘하고 있어요. 다른 과목들도 다 잘하죠? XX는 보는 눈이 정말 좋아요. 다음학기에도 꼭 이 과목을 또 들었으면 좋겠어요. 정말 훌륭해요. 아이가 정말 자랑스럽답니다"

처음에는 뭔가 이상했다. 곧 "But"나 "However" 같은 말이 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곧, 잔뜩 웅크렸던 어깨가 펴지고, 입꼬리가 한껏 올라가 버렸다.


"고맙습니다. 저도 제 딸이 정말 자랑스럽답니다. 고맙습니다."

한참을 기다린 우리 차례는 그렇게 순식간에 끝났다.


"거봐 내가 그랬잖아. 괜찮을 거라고. 잘하고 있다고 하시잖아. 잘했어. 잘했어. 앞으로도 계속 잘하면 돼"

나는 긴장이 풀려서 인지 아이에게 계속 말을 걸고, 아이도 보통 같으면 아빠의 수다를 귀찮아했겠지만, 오늘은 계속 웃어준다.


그리고, 왠지 선생님이 해주신 말들이 내게 해주신 것 같아 더 행복하다.


정말 잘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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