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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캇아빠 May 02. 2024

뒤를 보고 앉아서

오늘은 출근 기차에 앉을 때 뒤를 보며 앉았다. 지나가는 건물과 나무와 사람들은 가까이 오는 것이 아니라 내게서 멀어져 갔다. 겨울이 끝났는지, 사람들의 옷은 가벼워졌고, 나무는 초록색이 가득하고, 하늘은 눈부시게 맑았다. 기차역에 올라타는 사람이 아니라 기차역에서 내려 다른 곳을 향해 가는 사람을 보면, 내 기분 때문인지 표정이 더 여유로워 보였다.


10년 동안 탔던 차를 바꿨다. 18만km 동안 무사히 별 탈 없이 우리 가족을 여기저기 가게 해 주었으니 정말 고마운 차다. 10년 동안 미국 보스턴, 뉴욕, 워싱턴, 포틀랜드를 갔고 오바마가 간다는 여름 휴양지도 가보고, 캐나다 동부로 빨간 머리 앤 집도 가보고, 핼리팩스, 퀘벡, 몬트리올도 갔다. 이삿짐과 강아지를 포함한 온 가족을 싣고 20시간 동안 넘게 오는데도 문제한번 일으키지 않았다. 겨울에는 눈길을, 여름에는 캠핑장비를 싣고 여기저기 다니며 그렇게 우리 차는 그 고생을 하고 다음차를 살 때 생각보다 많이 쳐주는 아이가 돼서 그렇게 간단히 번호판을 남겨두고 떠났다.


요즘은 첫째 아이와 전쟁 중이다. 화도 내보고 달래기도 해 보고 사정도 하고 소리도 지르고, 나는 학교를 늦지 말라고 하고, 아이는 아빠가 문제라고 이야기한다.


어쩌면 나는 너무 앞만 보고 살았었나 싶다. 목표가 있었고, 계획이 있었다. 감수해야 하는 게 있고,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것만 있었다. 하지만, 내가 앞을 보면서, 앞만 보면서, 달려온 뒤에는, 멀어지는 사람들이 있었고, 멀어지는 물건들이 있었고, 멀어지는 관계들이 있었던 듯싶다. 아이의 나은 미래가 아니라 아이의 행복한 미래를 바랐던 건데…


시간이 돼서 아무렇지도 않게 버려지는 차가 아니라, 사랑받았었고 사랑받지만, 이제 다음 단계를 위해 눈물로 보내지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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