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예외가 아니다
세상은 내 짧은 기억력보다도 더 빨리 좋아져서, 예전에는 하지 못했던 불가능했던 것들이 너무나 쉽게 된다. 모두가 전화기를 한 대씩 가지고 있으니, 약속장소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는 일이 없고, 지도 앱이 있으니, 길을 놓치는 일은 있어도, 목적지를 못 가는 일은 없다. 번역기가 있으니, 번역하려고 두꺼운 사전을 찾지 않아도 되고, 자동차가 하는 운전이 나보다 나은 것 같다. 아이들 수학숙제는 AI한테 물어보면 웬만한 과외선생님보다 잘 가르쳐 주고, 나도 회사일을 AI에게 꽤 많이 시키며 일하곤 한다. 그렇게 세상은 좋아지고, 좋아진 만큼 내 시간을 더 보람되게 쓸 수 있게 된 지금. 정말 놀랍게도, 이렇게 발전된 세상에 사는 지금도, 매년 이맘때면 깜짝 놀라며 하는 말이 있다.
“한 것도 없는데 벌써 2월이네. “
기술의 발전하고, 시간의 흐름이 무슨 상관이냐 싶겠냐만은, 정말 매일같이 빠르게 발전하는 기술의 급류를 타고 있음에도, 그렇게 매일매일 새로운 기술을 확인해야 하는, 그런 세상에 살고 있음에도, 예전이나 지금이나, 심지어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확실하지는 않지만, 유추해 보건대) 인류는 언제나 2월을 놀라워했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거 같다.
분명 새해를 맞이할 때 올해의 각오를 생각했고, 올해는 분명 왠지 올해의 각오를 지킬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시간이 벌써 2월이라니, 믿기지 않는다. 올해 초 나는 모바일 앱을 만들어 보기로 결심했다. 아직도 회사에서 잘리지 않고 일하고 있기는 하지만, 세상 일은 알 수 없는 것 아닌가. 그래서 나는 모바일 앱을 만들어 떼돈을 벌어 성공적인 은퇴를 하는 꿈을 꾸었다. 사장한테 웃으면서 '열심히 하면 나처럼 될 수 있을 거야'라고 말하는 상상도 해봤다.
그래서 요즘 유행하다는 모바일 게임도 다운로드하여서 해보고, 스토리 영감을 받기 위해 소설책도 읽어 보고, 넷플릭스 애니메이션을 보며 화면효과들을 관찰하고, 그러다가 요즘 핫하다는 한국 드라마들을 보며, 요즘 젊은 사람들은 뭘 좋아하나 알아보고, 또 소설은 역시 추리 소설이 제맛이지 라며 애거사 크리스티 책도 한 권 더 다운로드하고, 애니메이션은 얄밉게도 일본 애니메이션이 재미있고, 넷플릭스는 이번에 또 새로운 영화가 나왔고..
그렇게 하다 보니 벌써 2월이다.
나도 안다. 지금 내가 이렇게 놀고 있을 때 누군가는 피땀을 흘리며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고통의 시간이 있어야 수확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천리길도 한걸음부터 라는걸. 지금이라도 마음을 다잡고, 목표한바 노력하면, 꿈이 정말로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마음을 다잡으며 동기부여를 하고 있는데, 이상하게 기시감이 든다. 왠지 이렇게 마음을 다잡은 게 왠지 낯설지 않다. 이런 모습이 아마도 작년 이맘때쯤 비슷한 시기에 했던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리고 그전 해에도. 또 그전전 해에도 말이다. 그리고 그전전전 해도... 또, 그 전전전전 해에도
그런데! 정말! 도대체! 1월은 어디로 간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