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정말 좋은 아빠야"
동네친구 베쓰와 오래간만에 통화를 하게 됐다. 프레데릭턴에서 옆블록에서 살던 동네 친구 베쓰는 지금 홍콩에 있다. 남편도 고등학교 선생님이고 자기도 킨더가든 선생님인데, 수입이 더 좋은 곳을 찾아 6년 전에 홍콩으로 이사 갔다. 처음계획은 2년만 바짝 벌고 캐나다로 돌아오는 거였었는데, 벌써 6년째 홍콩에서 살고 있다. 그 사이 첫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프레데릭턴에 있는 대학교로 돌아왔고, 이제 중학교를 들어갔던 둘째는 12학년이 되었다. 남편 맷은 어느새 수염이 모두 흰색으로 바뀌어서 산타할아버지 얼굴을 하고 있다. 시차가 잘 안 맞는 탓에, 자주는 못하지만 계절마다 한 번씩 전화를 해서 서로의 안부를 묻고, 서로의 가족들의 안부를 물으면서, 가족들 험담도 하면서 수다를 떨었다. 그리고 베쓰는 언제나처럼 인사로 "너는 정말 좋은 아빠야"라고 이야기해 줬다. 항상 혼자 고생하는 나를 보고, 내 거의 모든 에너지를 아이들에게만 쓰는 나를 보고 베쓰가 항상 하는 말이었다. 그런데, 왜인지 그날만큼은 말이 잘 삼켜지지가 않았다.
"아니야, 내가 너무 애들한테 다 해줬던 것 같아. 오히려 나 때문에 아이들이 스스로 해야 할 일을 못하게 한 것 같아"
물론 베쓰가 좋은 의미로 이야기한 거겠지만, 요즘 점점 느끼는 내 이야기였다. 그런데, 의외로 베쓰는 내 말에 긍정했다.
"음.. 사실 나도 한마디 들었어. 내 테라피스트는 나보고 아이들한테 아무것도 하지 말래"
2000년 초, 지구가 멸망할지도 모른다는 모두의 기대를 저버리고, 어느 나라도 실수로 핵미사일을 발사하지 않았고, 나는 직장생활을 처음 시작했다. 작은 중소기업이었지만, 꽤 큰 기업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뭉쳐서 만든 회사인 만큼, 모두 어느 정도 직급이 있든 분들이었다. 모두가 어려운 일 있으면 자기한테 이야기하라고 했지만, 처음에는 누가 누구인지 얼굴하고 이름도 잘 외울 수 없었다.
처음 맡은 일은 이메일에 쓰이는 한글, 일본어, 중국어를 문자변환 해주는 모듈을 만드는 일이었고, 나는 기술자료들을 뒤지는 일로 내 프로그래머 일을 시작했다. 이제 막 프로그래머 일을 시작한 신입 개발자가 ISO-2022라는 이름도 생소한 (지금도 안 잊고 있는 것 보면 정말 강렬했나 보다) 표준 규약에 대해서 공부하고, 잘하지도 못하는 영어 자료를 뒤져가면서, 프로그래밍을 하고 있었으니,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을지,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때의 고통만큼은 잊히지 않는다. 그런데 그때 회사 그런 나를 보고 옆팀 부장님이 옥상으로 불렀다.
"회사에서 일하는 것은 마라톤 같은 거야. 너무 단거리처럼 뛰면 금방 지쳐서 더 이상 뛸 수 없어. 쉬면서 일하지 않으면 지쳐서 더 이상 이일을 할 수 없을지도 몰라."
당시 나는 일에 너무 빠져있어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부장님은 그다음에도 몇 번을 나를 볼 때마다 한마디를 해주셨다.
"마라톤인 거 잊지 마"
그리고 이제는 조금은 ,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얼마만큼 이 적당한 것인지 알 수 있을까? 얼마만큼의 노력을 해야 하고, 어느 정도의 서포트가 최선일까? 어떤 집에서는 부모가 개차반이라 아이가 잘 크는 집도 있고, 어떤 집은 부모의 희생으로 아이가 성공하는 경우도 있어 보인다.
일을 배우기 위해, 일에 더 적응하기 위해, 쉬는 날도 없이, 정말 문자 그대로 한 달 30 일을 모두 일로 가득 채워서 일을 하는 게 정말 성공적인 결과를 가져올까? 얼마큼 놀고 얼마큼 일해야 하는 걸까?
그리고 만약 정말 그걸 다 아는 날이 오면, 맞는 방법으로 살 수 있을까? 고민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