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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국을 먹으면 나이를 먹는다.

한 그릇은 모자라다

by 스캇아빠 Jan 04.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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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일들이 있었다. 신혼여행으로 예상하고 예약했던 여행은 10년 전 한국 이혼서류를 캐나다에 등록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가족여행으로 바뀌었다. 첫째 아이의 사춘기 막바지,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게 좋아지겠지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그런 생각을 비웃듯 제대로 폭발해서 가족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느끼게 해 주었다. 한국에서는 대통령이 쫓겨나고, 쫓겨난 그 대통령을 대행하던 사람도 쫓겨나고, 쫓겨난 그 대통령의 그 대행을 대행하는 사람이 대한민국 대통령을 하고 있고, 너무 많은 사람이 안타깝게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그렇게 2024년은 쉽게는 못 보내겠다는 듯이, 마지막까지 방심하지 말라는 듯이, 얼마 안 남았어도 하려면 뭐든 할 수 있다는 듯이, 그렇게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떠나갔다.


어렸을 때는 떡국을 먹어야 나이를 먹는 거라고 여겼다. 그게 상징적이란 것을 알았음에도, 떡국을 먹지 않으면 제대로 나이를 먹지 않는 거라 생각했다. 나이를 한 살 더 먹으면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었다. 고학년 형, 누나들이 쓰던 교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동호회 후배들에게 인사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는 학교에서 제일 나이 많은 학년이 되었고, 더 이상 선배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었다. 좀 더 높은 등급의 영화를 볼 수 있었고, 담배를 더 이상 숨어서 피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나, 좀 더 나이가 들어서는, 군대를 가야 했고, 취직을 해야 했다. 직장에서는 뭐가 뭔지 몰라서 헤매고 있어도, 물어본다는 것이 내가 자격이 없다는 것을 자인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더 이상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 쉽지 않았고, 나만 좋으면 좋은 거였던 세상이 점점 어렵다고 느껴졌다. 싸우지도 않았는데, 헤어지는 친구가 생기고, 20년을 넘게 알았는데도, 사실은 하나도 모르겠는 친구가 생겼다. 몸이 아픈 친구가 생기고, 마음이 아픈 친구를 위로해 줬다. 장례식장은 육개장 먹는 곳으로만 알았던 나는, 어느새 장례식장에서 검은 양복에 완장을 차고, 목놓아 꺼이꺼이 울었고, 며칠 후 할머니의 빈자리를 인정하고 나이 어린 조카들의 장난을 보며 웃을 수 있었다.


내 가족이란 말이 이제는 부모님의 아들이 아닌, 내 아이들의 아빠로서 있는 가족이 돼버렸고, 인생이 즐겁고, 순탄하다는 말이 동화 같은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이를 먹는 것이 단순히 숫자가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없는 것들이 하나씩 생긴다는 것을 의미하기 시작했고, 나이를 한 살 더 먹으면 더 많은 것을 할 수 없는 나이가 되었다. 약병에 쓰여있는 설명을 읽기 위해서는 당연히 안경이 필요하고, 핸드폰을 볼 때도 안경을 쓰면 기분이 좋다. 매일아침 한 움큼의 약을 챙겨 먹고, 핸드폰 알람으로 해야 할 일을 알려줘야 할 일을 잊지 않을 수 있었다. 아침에는 신음소리를 내며 일어나고, 저녁에는 신음소리를 내며 누웠다. 정체없이 불안함에 잠을 설치고, 아무일도 아닌일에 우울해 했다.


그럼에도, 올해 2025년도 떡국은 직접 빚은 손만두로 만든 떡만둣국이었다.


두부를 짜서 숙주, 대파, 당면, 돼지고기 넣고 만두소를 만든다. 만두피에 손바닥에 올리고 끄트머리에 물을 묻힌 후 큰 숟가락으로 한껏 만두소를 넣고 만두피를 붙인다. 만두가 터질까 중간중간 두 겹으로 접어 눌러주어 만두를 만들고, 멸치로 우려 놓은 육수에 만두와 떡을 넣고, 양파, 호박 계란을 풀어 끓여 소금으로 간을 한 떡만둣국이었다.


인생이 정말 쉽지 않았지만, 미친 듯이 힘들어도 그냥 죽으란 법은 없는 것 같더라. 좌절해서 눈물이 나려고 해도, 방귀소리를 들으면 어이없어서 웃게 되더라.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도 시간 지나면, 쓴웃음으로 추억하게 되고, 앞이 아무것도 안 보이는 절망의 순간에도 맛있는 거 먹으면 기분 좋고, 뜨거운 거 먹으면 앗 뜨거워 놀라게 되더라.


그러니까, 올해도 한번 미친 듯이 버텨보자. 힘들면 이야기해 내가 특별히 방귀 소리 내줄게. 사랑해 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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