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열심히 도망쳤는데..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 어떤 이야기를 기대했던 걸까. 한 줄 한 줄을 읽기가 고통스러웠다. 가슴에 큰 돌이 올라가 있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억지로 한 줄, 그리고 그다음 줄, 그리고 다음 줄, 하며 읽고 있는데, 여자친구가 거실에서 핸드폰을 보던 나를 발견하고, 뭐해?라고 물어보자, 나는 갑자기 울음이 터져버렸다.
“왜? 무슨 일이야? 뭔데? “
한번 터진 울음은 점점 커졌고, 결국 소리 내서 서럽게 우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여자친구는 큰일이 났구나 싶은 얼굴로 나를 기다려 줬고, 나는 아차 싶어, 급한 대로 사실을 알려주자 싶었다.
“너무 슬퍼. 브런치“
울음 사이로 겨우겨우 설명을 해주자, 여자친구는 그제야 다행이라는 표정으로 나를 위로해 줬다.
“못 읽겠어.”
“읽지 마. 나중에 읽어”
“너무 마음이 아파”
나는 한참이 지나서야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고, 여자친구는 그렇게 말없이 옆에 앉아 나를 지켜줬다. 그리고 한마디 보탰다.
“아주, 잘~한다”
분명 긍정과 긍정이 조합되었는데, 강한 긍정처럼 들리지 않았다. 잘하고 있다고 들었지만, 기분이 좋지 않았다.
어머니와 나는 책 읽는 취향이 매우 비슷했다. 어느 날 당시 베스트셀러 소설을 읽고 실망을 했는데, 어머니가 같은 책을 들고 다니시는 걸 발견했다.
“그 책 재미있어? 나는 별로던데, 좀 억지스럽고”
“별로야. 다들 하도 재밌다고 해서 읽는데..”
그렇게 나와 어머니는 한참을 책에 대해서 비판을 했고, 그 후로 어머니는 틈틈이 요즘 재미있는 책이 뭐 있냐며, 다음책을 항상 물어 오곤 하셨다. 그리고 집에 오실 때마다, 책장에서 하나씩 책을 바꿔가셨는데, 문제는 어머니가 놓고 가신 책들 대부분이 수필 책이라는 게 문제였다.
“나는 수필 안 읽는 다니까. 수필 싫어”
“읽어봐. 어쩜 사람 사는 게 그런다니.”
“이 책은 꼭 읽어야 돼. 진짜 재밌어.”
“이 책은 꼭 니 이야기 같아. 여자가 글쎄 1주일 만에 도망갔다지 뭐야 “
“엄마, 나 결혼생활 10년 했어 “
어머니의 수필사랑은 끝이 없었고, 결국 내 책장에는 수필만 남게 됐음에도, 나는 수필을 읽지 않았다. 읽고 싶지 않았었다.
하지만, 브런치가 문제였다. 우연히 하나둘씩 새로운 글들을 발견하게 되고, 글이 아니라 이야기에 놀라게 되었다. 글재주는 이야기가 주는 힘에 비하면 작아 보였다. 맞춤법이 틀리든, 조사가 이상하던,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이야기가 주는 힘이 그리고 그 이야기가 누군가의 현실이라는 사실에 안타까워하다, 웃다, 화를 내다, 슬퍼하고 있었다.
"이 브런치 읽어봐야 해. 아니 글쎄 그런 와중에 병원에 실려갔다니까. 어쩜 그러냐고"
"이런 이야기는 소설로도 못써. 너무 비현실적인데, 이게 사실이래"
"이 작가는 선X이 이야기 같아. 아니 이렇게 고생을 했다니 뭐야"
그렇게 나는 어느새 어머니처럼 수필을 읽는 사람이 되어 있었고, 여자친구에게 꼭 읽어보라며 링크를 보내주고 있었다. 아픈 사람이 있다는 건 좋은 일이 아니다. 하지만, 아픈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싫다고, 없는 셈 칠 수는 없다. 세상에는 슬픈일도 있고, 아픈일도 있고, 끔찍한 일도 있다는 걸 안다. 그리고 그 와중에 그 와중에 좋은 일들도 있겠지 하며 기대해 본다.
책장에 있는 책들을 하나씩 읽어볼까 하는데, 아무리 그래도 어떤 연예인이 미국에서 변호사된 이야기는 읽기 싫단 말야. 그 책은 언제부터 집에 있었던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