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대를 잡은 아이

매일 아침 단상과 그 기록

by 북마니

초등학교 3학년즈음이었을까. “사람들은 자동차를 왜 타고 다니지? 자전거를 타거나 걷거나 뛰면 되는데, 왜 그렇게도 많은 자동차를 만들어 내어 공기를 오염시키고 환경을 더럽힐까?라는 생각을 했다. 환경에 대한 남다른 걱정과 호기심으로 인해 고3 때 환경공학과를 선택했는데 , 이제와 돌아보니 자연을 항한 나의 애정은 이미 초등학생 때부터 시작되었나 보다.



딸내미도 작년 4학년 때 비슷한 질문을 했다. “ 엄마 사람들은 왜 다 차를 타고 다녀? 자전거 같은 거 타고 다니면 되잖아 “ 나와 비슷한 나이 때, 또 비슷한 질문을 하다니, 역시 넌 내 딸이 맞는구나,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생각에 웃음이 나왔다. 어린 시절의 나는 그 질문에 대답을 못했지만, 엄마가 된 나는 그 질문에 대답을 해준다. “자전거나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가 있고, 그 보다 더 빠른 교통수단을 이용해야 하는 경우도 많아. 걸어서 가면 너무 오래 걸리고 힘이 들잖아.”



이제 나는 차를 타고 다녀야 하는 이유는 너무나 많고 그것이 정당하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내가 싫어하고 힘들어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운전’이다.



캐나다에서는 운전을 꼭 해야만 한다. 한국처럼 가까운 곳에 슈퍼 하나 없다. 하다못해 달걀 프라이를 해 먹으려다, 달걀이 똑 떨어진 것을 알면 , 운전을 하고 달걀을 사 오던지 아니면 달걀 프라이를 먹지 않겠다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나는 주로 달걀 프라이를 포기한다.



나는 운전이 무섭다. 다른 사람이 운전할 때는 괜찮은데 내가 운전대를 잡으면 이상하게도 긴장되고 두렵다. 운전을 배우고 자동차를 몬 지 거의 15년도 넘었는데 아직도 두려운 마음이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두려움이 좀 사그라들었어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그 두려움의 크기는 조금도 작아지지 않았다. 그런데, 어제 오후 차를 몰고 가다가 약간 경사진 곳에서 차가 꿀렁하고 움직인 순간 마치 무섭지 않은 놀이기구 탔을 때처럼 묘하게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라, 오늘 차가 움직일 때 좀 재밌네.’. 생전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하는 내가 신기하게 마저 느껴졌다. 그러다가 문득 깨달았다. 운전이 싫다고 생각하고 사니까 계속 운전이 싫은 것은 아닐까? 그래 마음을 바꿔보자, 모르는 길에서 당황스러운 순간이 와도 모험이라고 생각하자. 운전을 놀이기구 타는 것처럼 생각하고, 새로운 길을 탐험하는 모험가자 되자. 그렇게 마음을 먹으면 언젠가는 나도 고속도로를 달리며 운전을 즐기는 날이 올지도 몰라!



오늘도 어제의 그 결심을 품고 운전대를 잡았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왜 이렇게 운전이 무섭지? 속도를 100까지 내야 하는 길을 달리는 것도 아닌데, 차가 많은 길을 달리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두려울까? 생각해 보니 내가 무섭게 느끼는 포인트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빠르게 달리 때 둘째는 방향을 바꾸거나 반대편 차선으로 나가야 할 때였다. 분명히 앞 뒤 좌 우를 몇 번이나 확인했고, 저 쪽에서 오는 차와 나의 거리가 충분하다는 것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멀리 있던 차가 갑자기 ‘확’ 나타나서 나를 박아버릴 것 같다는 생각에 공포와 두려움이 밀려온다.



어릴 적, 나는 늘 두려움 속에서 살았다. ‘지금은 집에 없지만 갑자기 나타나서 우리를 괴롭히면 어쩌지? 또 칼을 들고 나타나서 우리 모두를 죽인다고 하면 어쩌지?’그 공포의 대상은 바로 아버지였다. 이제 와 여러 공부를 하고 책을 읽은 후에 아버지라는 사람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는 악성 나르시시스트와 경계성 인격 장애를 가진 사람으로 멀쩡했다가 가족을 괴롭히고, 싸움을 걸었다. 그는 자신의 분을 쏟아 내며 스트레스를 풀지만 그 싸움으로 다시 스트레스를 받는 악순환에 갇힌 사람이었다.


그런 그는 말로만 싸우는 것이 아니라 폭력을 동반하였고 때때로 칼을 휘두르며 우리를 모두 죽이겠다고 협박하였다.. 그러다가 “에이 시발” 하고 밖으로 술을 마시러 나갔다. 갈 곳도 없었던 엄마와 나와 내 동생은 숨죽여가면서 그가 언제 휙 다시 나타나서 우리를 죽이면 어쩌나 라는 공포에 떨면서 살았다.. 밖에서 저벅 거리는 발소리만 나도 ‘이제 왔나’라는 공포로 벌벌 떨었다. 어린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채로 그저 공포에 떨며 무력하게 버텼다.



운전할 때 느껴지는 그 막연한 두려움이 바로 과거의 공포로 인해서 라는 100퍼센트 확신은 없지만 두개의 다른 공포가 같은 느낌으로 비슷하다. 어제 심리학 교재에서 읽은 부분이 마음에 남았다. “어린 시절의 극심한 스트레스는 뇌의 신경 구조를 바꿔놓으며 그 영향은 어른이 되어서도 지속된다” 나는 도로 위의 차들에게 그때의 아버지의 그림자를 투사하며 공포를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게 살고 싶다. 공포의 원인을 알았으니, 더 이상은 그 두려움에 묶여있고 싶지 않다. 이제는 운전을 즐기고 길을 찾아 떠나는 주인공의 삶으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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