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피한 이야기 일수도 있는데, 나는 욕을 좀 잘했다 (아직도 좀 한다) 그렇다고 맨날 입에 욕을 붙이고 다니는 것은 아니다.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거나, 욕을 들어먹어 마땅한 인간들의 이야기를 하다 보면 그에 합당한 욕을 하고 싶어 져서 욕을 한다. 내가 욕을 한다고 해서 , 그 욕이 그 사람의 귀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그의 배를 뚫고 들어가는 것도 아니지 않나..
욕을 하는 그 순간만큼은 욱 하고 머리끝까지 올라왔던 스트레스가 좀 사라지는 것 같다. 그리고 욕이란 게, 원래 그런 목적으로 만들어진 거 아닌가? 내가 멀쩡한 아무에게나 욕을 하는 것도 아니고, ‘인간이라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라고 생각되는 인간에 대한, 나 나름의 응징과 징벌이다. 물론 그 사람은 내가 욕을 하는 것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나랑 아주 가까운 지인 몇몇만 내가 너무 화가 나서 욕을 하는 것을 들었다. “미” 나 “개”로 시작되는 욕정도이다. 이게 뭐 그렇게 심한가? C자로 시작하는 것도 아닌데 (나 도 C로 시작하는 욕은 싫어한다.) 그중에 나르시시스트 구 베프도 있었는데, 그녀가 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사람이 욕을 하면 어떡하냐라고 빈정거렸다. 순간 아차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내가 학생들에게 욕을 가르치는 것도 아니고, 나쁜 인간들에게 쓰라고 욕 있는 거지라고 반문했다. 이제와 보면 그녀는 욕만 안 할 뿐 사람들 편의대로 이용하고 빈정 거리는 게 일상인 사람이 누굴 탓하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내가 욕 들어 마땅한 인간들에게는 욕을 하는 게 나만의 권리이며 응징법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다. 그러나 문제는 욕이라는 것이 입에 붙으면, 쉽게 나와버린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남편으로 인해 스트레스가 너무 많이 쌓이면,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면서 욕을 했다. 그리고 정신이 돌아오면 ‘이렇게 까지 욕먹을 사람은 아닌데’라고 후회를 했다. 여느 남편이나 다 똑같다고들 말하지만, 가끔 왜 우리 남편은 나를 이렇게 미치게 하나라는 생각이 들며 혼자 중얼거리면서 욕했다. 스트레스를 풀 곳도 없고, 그렇다고 가서 소리 지르면서 싸우는 것도 싫었기에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던 것 같다.
내가 욕을 하는 게 별 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유로는 아마도, 어릴 적 부모님이 싸울 때 보고 들은 어나더 레벨의 욕들 때문인 것 같다. 원래 애들의 머리와 가슴은 백지상태라고 하지 않나, 그냥 스캔이 쭉 된 거다. 그리고 남편도 어떤 특정 지역 사람인데, 그 지역 특색이 그런 건지 남편이 이상한 사람인지 욕을 잘했다. (이제 남편도 나이먹고 성숙해져서 잘 안한다)이미 난 욕을 잘 받아들이는 옥토에서 자란 욕 꿈나무였는데 데 남편의 욕들이 나의 욕 재능을 더욱 개발, 강화시킨 것 같다. 이런 들 어떠리 저런들 어떠리, 어쨌든 욕하는 거는 괜찮아 라고 생각하고 아주 오랫동안 살았다.
그렇게 욕을 하는 내 모습을 정당화하는 지분이 80퍼센트 트정도의 삶을 계속 살았다. 그러다가 욕 지분이 약 50퍼센트 정도로 떨어지는 계기가 있었다. 목사님과 대화를 하다가 목사님께서 악은 어떤 모습이든 버리라 라는 말씀을 알려주셨기 때문이다. 크리스천으로 오래 살았지만, 그런 말씀이 있는 줄도 몰랐다.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 노라라” 데 살로니가 5장 22~23절 그 말씀이다. 욕을 먹을 만한 인간에게 욕을 하는 게 뭐 어마어마한 악이 되겠냐 만은, 그래도 “어떤 모양” 의 악에 해당하는 것이기에, 내 욕 지분을 무려 30퍼센트나 다운시켰다.
하지만 이제 욕 지분을 10퍼센트로 완전히 감축시키기로 하였다. 어떤 유튜브 영상을 보았는데 욕을 많이 하는 사람은 없어 보인다는 말이 꽤나 충격적이었다. 없어 보인다니….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내가 대신 욕해주니까 오히려 그들이 이 시원함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내 가 없어 보일 수 있다는 것은 판을 뒤집는 완전히 새로운 시각이었다. 성숙하고 성장하기 위해, 내면을 성찰하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욕을 하면 없어 보인다니.. 내 내면을 누가 볼 수 있겠는가? 어차피 드러나는 것은 내 말과 행동인데.. 있어 보이지는 못해도, 최소한 없어 보이지는 말아야지…
인간의 손실회피 욕구가 나에게도 정확히 작동하였다. 굳이, 내가 왜 없어 보여서 손해를 본단 말인가라는 이성적 판단이 들면서 욕의 지분을 10퍼센트로 감축하기로 하였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욕 하지 않고 “ 아 이 떡 하나 더 드실 인격자 분 “ 이렇게 하려고 노력 중이다. 잘 지킬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