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입은 공기
샤워를 한다는 것은 공기를 새로 입는 것이다. 모르는 사이 묻어 있는 음식 냄새, 땀냄새 혹은 먼지 냄새, 옅지만 내 몸냄새 등등, 한가득 덕지덕지 붙어 공기를 이룬다. 샤워 후 최초의 공기에서도 냄새가 난다. 환기된 새로 입은 공기. 남편은 공기를 새로 입고 집으로 퇴근 한지 꽤 됐다. 처음은 나도 무심했다. 샤워했나 보다고 생각하고 그 이상은 생각하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니 갑자기 무엇 때문에 라는 생각이 미쳤다.
"혹시 샤워하고 왔어?"
된장국에 두부를 한술 뜨며 아무렇지 않은 듯 심드렁하게 물었다.
"어. 회사에서"
달걀말이 하나를 주워 밥 위에 올리며 역시나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음, 회사에서? 그럼 운동을 했단 말인가? 평소 즐겨하지 않던 운동을 시작한 게 좀 뜬금없긴 하지만 지난달 건강 검진 결과지를 받아 왔던 것을 기억해 냈다. 사내 헬스장쯤에서 샤워를 했겠구나 내 생각은 거기서 멈췄다. 더 이상 확인하지 않았고 그 이상은 필요 없다 생각했다. 남편을 잘 알았다. 바람을 피울 만큼 리스크 있는 일에 모험하는 스타일도 아니고 이처럼 허술하지도 않다. 또 나의 자격지심이 더 이상 캐묻게 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최근 일을 그만두어 전업 주부가 되었다. 남편 퇴근 시간에 맞춰 밥을 올리고 정성스레 달걀말이를 준비한다. 시금치가 좋아 보이는 날이면 시금치 된장국을 끓여 내기도 하고 조금 여유가 있으면 무를 잔뜩 깔고 고등어를 올려 칼칼한 양념에 톡톡히 졸인 조림도 했다. 돈을 벌고 있지 않는 이 순간 쓸모를 증명하려는 듯 성실하고 있다. 남편은 내 성실에 무반응이었다. 빈말이라도 그렇게 열심히 할 필요 없으니 좀 느긋히 쉬라 한마디도 없었다. 알고는 있는지.
남편의 강력한 의지로 우리 부부는 아이가 없다.
'너 하나 건사하는 일도 꽤 힘들어 더 이상 책임 질 일은 만들고 싶지 않다.'
그렇다 복잡하고 책임질 만한 일은 만들지 않는다. 샤워를 하고 들어온 남편에게 다른 징조라 여기지 않는 것도 그를 알고 있어서 이다. 누구보다 그를 알고 어떤 선택을 할지도 예상한다.
'○ ○ ○ 님 진료 예약 하루 전입니다. 2022-11-30 10:00까지 내원 바랍니다.'
언뜻 확인한 문자였다. 무슨 병원인지까지는 확인하지 못했으나 확실히 봤다. 무슨 문자냐고 남편에게 물으니 흐트러짐 없이 담담히 대답한다
"광고야"
"아 그래? 나한테 할 말은 없어?"
"무슨 말? 뭐 있어야 되나?"
요새 광고는 저렇게 예약 문자처럼 오나 남편의 태연자약한 모습에 조금 물러섰다. 아니야 분명 뭔가 있는데, 꽤 살아본 결과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 걸 캐물으면 쉬이 짜증을 낸다.
"이거 하나만 물어보자 혹시 요즘 샤워 하고 들어오는 거랑 관련 있어?"
"뭘 의심하고 앞서 가는 거야?! 적당히 해"
역시 소파에 기대어 있다 벌떡 일어나며 짜증이다.
"나 담배도 사고 바람 쐬고 올 테니까 알아서 자"
결국 문 밖으로 나가버린다. 샤워를 하고 들어오고 숨기는 문자가 생겼다. 이건 누가 봐도 의심할 만하잖아라고 되뇌었다. 내 상상력이 닿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시원하고 알싸한 가을 한기를 가득 안고 갖가지 생활의 냄새를 풍기며 들어오던 그가 따뜻하고 정갈한 냄새를 뭉게뭉게 풍기며 낯설게 들어온다.
도대체 나는 남편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게 맞는가 싶다.
어떤 순간에 그가 할 선택마저도 확신할 수 있었던 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