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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둡 Feb 23. 2024

길 위에서 | 3

터널의 중간



아랫배와 심장 사이 어디쯤 알싸한 뻐근함이 밀려온다. 아마 부신에서 아드레날린이 폭발하고 있는 듯하다. 곧 터널에 진입한다. 퇴근길 막바지에 있는 이 터널은 상시 막힌다. 서서히 속도를 줄이다 결국 정차한다. 이제 브레이크를 조였다 풀었다 하며 서행해야 한다. 이 삼 주 전인가 터널 중간쯤 꽉 막혀 정차하고 있던 차 안에서 '공황'이 왔었다. 그 이후 터널 진입 할라 치면 은연중 그 순간의 공포가 얕게 떠오르며 긴장하게 된다. 생경한 경험이었다. 관에 들어가 땅에 묻힌 암담한 압박감이 밀려오고 눈앞이 점멸하며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다음날 회사 앞 정신건강학과를 찾아 '공황'이라는 진단을 받아왔다. 골똘히 생각해 봤지만 지금이 딱히 더 힘들지 않다. 올해 우리 팀 과제가 상무님 KPI와 엮여 있어 골치가 좀 아프다는 것과 와이프가 모르는 빚이 있고 또 빚이 있는지 모르는 그 와이프가 덜컥 명예퇴직을 수용한 것쯤이랄까. 사는 건 고난과 시련이 늘 함께 한다. 이번이라고 별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아닌 모양이다. 운동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사의 권유로 시작한 러닝도 건너뛰고 집에 가고 있는 중이다. 나의 걱정과 상념들을 저녁 식사하며 잘 풀어 볼 요량이다.


거실 불은 꺼져 있고 와이프는 작은 짐승처럼 식탁에 웅크려 있었다. 저녁을 하다 말았는지 식탁 위에 도마며 냄비며 그대로 올려 있는 채로 말이다. 어제 잠깐 다툰 걸로 이렇게 시위할 사람은 아니었다.


"자기야? 왜 그래?"


와이프는 어린아이 같은 울음을 터트렸다. 의례적으로 안아서  달래 보려 일으켜 세우니 바닥에 주저 않아 꺼이꺼이 울었다. 한참이 지나 울음이 잦아드나 했더니 뜬금포가 터졌다.


"샤워하고 ...흑 ..운동 맞아? "


"응? 응! 회사에서 운동한다고 말 안했나?“


'갑자기 왜?'라고 재차 물었다. '갑자기 왜' 사실 둘러댈 말들은 많았다. LDL 콜레스테롤이 높아 고지혈 위험이 있으며 아버지가 당뇨라 가족력이 있으니 이제부터 관리를 해보련다 또는 맥락이 없어도 어느 날 갑자기 느닷없이도 있는 것 아니냐라는 식으로.


"자기야, 내 이야기 끝까지 듣고 말해"


스트레스는 늘 있어 인지하지 못했는데 최근 '공황'이 왔고 치료 일환으로 운동을 하고 있다고.


"이유는 몰라. 다만 너한테 오늘 꼭 하고 싶은 말은..."

 

천천히 빚을 진 경위를 최대한 설득력 있게 설명해야 한다. 러시아 코로나 백신이 효과가 탁월하다는 소문이 돌았고, 위탁 생산기술 이전 계약을 할 것 같다는 회사 주식을 샀고, 더더욱 확실 시 되자 마이너스통장과 신용대출까지 끌어 올인했는데, 다음날 제품의 적합 판정 기준을 맞추기 위해 데이터를 임의로 조작했다는 내부 고발로 주가가 반 토막 아니 반의반 토막이 났고, 아직 회복되지 않았고, 주식으로 코인으로 부동산으로 모두 돈 벌었다고 자랑할 때 박탈감을 느껴 뭣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성급했다고.


와이프는 그렁한 눈을 쉴 새 없이 반응하며 내 말을 따라왔다. 인내심이 많은 여자다.

그리고 종내에는 묻는다


"아... 그래서 얼마나?"


그녀의 깊은 탄식에 공황이 다시 올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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