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고독
김 과장과 담배 한 대 피우고 커피 주문하러 가는 길이다. 커피는 사 먹어야 카페인이 해갈되는 것이 특이하다. 내 빚을 와이프가 갚아 주는 대신 용돈을 받게 된 후로 커피를 사 먹는 문제를 잠깐 고민해 보았지만 도저히 탕비실 커피만으로는 갈증이 해결되지 않는다.
"자차도 그만둬야 하는 거 아냐"
사정을 알고 있는 김 과장이 한소리를 한다. 그러게 말이다. 용돈 생활은 가계 경제에 대한 걱정은 덜었지만 빈궁했다. 술자리며 스크린 골프며 예전처럼 빈번하기가 여간 쉽지 않다. 하지만 실수에 대해 나 스스로 벌하고 싶은 것도 있고, 와이프가 벌고 있지 않으니 아껴야 하기도 하고... 그나저나 와이프는 다시 일할 생각이 있긴 하나
자랑거리는 아니지만 벌이는 와이프가 더 괜찮아 큰돈이 드는 문제들은 와이프를 많이 의지했었다. 명퇴 대상자가 되었다고 말했을 때 버텨 보는 것이 어떠냐고 권해 보고 싶었지만 차마 입 밖으로 소리 내진 못했다. 그녀와 내가 가진 가치관 중 일치했던 것은 결혼으로 누군가는 벌고 누군가는 생활을 유지하는 역할을 무 자르듯 분담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었다. 우리 모두 자신을 위해서라도 일이 있어야 하며 공동생활에 있어서 너나 할 것이 집안일을 해야 한다는 것. 일과 가정일 모두 인간으로서 품위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 행위라 생각하는 주의였다. 와이프가 이 생각은 변하지 않았을 것이라 믿고 싶다. 아껴 쓴다면 부족하지는 않겠지만 와이프가 벌지 않는 것은 가계에 꽤 큰 타격이기도 하니 말이다.
"자기 앞으로 일은 어떻게 할 생각이야?"
결국 참지 못하고 저녁 식사 자리 와이프에게 슬며시 던졌다. 와이프는 잘 조려진 가지 볶음을 가져 가려다 젓가락질을 접는다.
"그냥 무슨 생각이 있는 건지 지금은 일단 쉴 생각인지 궁금해서"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무마한다. 기술직이었고 그래도 나름 이름 있는 회사 출신이기도 하니 작은 규모로 페이를 포기하고 옮겨 보는 것도 나쁜 선택이 아닐 것이다.
"나 아파트 입구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 모집하던데 그거 할까 봐"
어? 아르바이트를 하겠다고 편의점? 이게 무슨 말일까 그 고생을 하며 쌓은 커리어 다 버리겠다는 말인가
가진 기술로 먹고살아야지 나름 경력도 나쁘지 않지 않나. 비슷한 일 하는 작은 회사로 옮겨 보는 게 바람직하지 않느냐라고 내 생각을 말했다.
"자기야 나 기술 없는 기술자야. 지금까지 관리나 하고 보고나 하던 사람이야. 그리고 설령 있다고 해도 그 회사에서만 필요한 부품 같은 일이었지 대단한 기술 없어. 스타트업 같은 곳 들어가면 어디 어디 출신 과장이었다 하면 거의 건물 하나 혼자 들어 올려 야 할 구축을 맡긴단 말이야 난 못 해"
참으로 비관적이다. 와이프는 말을 이어 나갔다.
"다 갖춰진 곳에서 또 부품 같은 일을 하면 모를까... 지금으로서는 뭐... 일 되게 잘해서 이 나이에도 이곳저곳에서 불러줄 인재는 안되고.. 여하튼 나도 생각 중인데 가볍게 편의점 아르바이트부터 해볼까 해"
뭐 어쨌든 일을 하긴 하려나 본데, 그게 편의점 알바라니. 나름 돈 잘 벌어오는 와이프가 자랑 거리였고 술자리에서 종종 다른 사람의 부러움이 되기도 했었다. 적지 않지만 많지도 않은 나이에 벌써 사회생활을 접으려 드는 것 같아 약간 조바심이 났다.
"회사에 들어갈 생각이 없는 거야?"
"응 나 회사 생활 이제 못해... 하기도 싫기도 하고 찾는 곳도 없고 갈 만한 곳도 없어"
"자기야 우리 그렇게 안 급해 천천히 생각하면서 관리자 자리라도 알아봐. 그런 일도 있을 거야. 절대 돈 때문이 아니라 지금까지 해 왔던 일이 아까워서 그래. 그리고... 아르바이트.. 할 정도로 급하지 않아"
내가 와이프를 통해서 얻은 사회적 인정과 부러움 금전적인 여유 이 모든 것이 손 안에서 사라지는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