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6일, 다시 한번 해외 출장을 위해 토요일 밤 비행기를 탔다. 7월 중순에 한반도에 물 폭탄 예보를 듣고 세종으로 출근하는 처지여서 다행스러우면서도 걱정스럽기도 했다. 밤 비행기이므로 20시간 비행을 해 녹초가 되어 가도 세르비아에 도착하면 오전 9시이다. 이때가 시차 적응과 컨디션 관리에 중요한 시점이다.
다행히 베오그라드의 친절한 단골 호텔은 오전 체크인을 해 주어 도착하자마자 침대에 드러누울 수 있었다.
점심 무렵이 한국의 저녁 시간이어서 호텔 근처에서 현지식으로 가볍게 해결했다. 눈이 부실 정도로 햇살이 강력하다. 뜨겁긴 해도 습하지 않아 피부보호를 위한 자외선차단제와 선글라스면 돌아다니기 충분한데 스마트폰에서 가리키는 기온은 29도이다.
식사 후 정신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니 조용하고 붐비지 않는 일요일이다. 오랜만에 출장지에서 일요일 오후를 보내게 되어 베오그라드 시내를 둘러보았다. 베오그라드(Belgrade : bel(흰색) + grade(도시))는 이름에서 하얀 도시일 것을 기대하지만 내 눈에는 회색도시이다. 국경을 접하는 헝가리와 크로아티아를 방문하면 우리가 예상하고 기대하는 뾰족한 첨탑으로 잘난척하는 그런 건물은 볼 수 없고 회색 회반죽, 시멘트 처리의 외관에 낙서로 가득한 볼품없는 외관의 건물들이다.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옛날 사회주의 시대 유고슬라비아 유산이라고. 나도 CIS 국가들 가보면 느낌이 회색도시여서 이런 느낌에도 어느 정도 동의한다.
우선 산책하기로 해 마음먹었지만 너무 뜨거워 인근 쇼핑몰로 몸을 피해 사람 구경부터 했다. 역시 시원하고 주말이어서 내부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베오그라드 대표 유적이자 관광지 그리고 시민들엔 유원지 역할을 하는 칼레메그단(Kalemegdan)으로 가 보았다. 높은 곳에서 시내를 흐르는 강을 볼 수 있어서인지 이곳에 머무르는 사람들의 걸음은 여유롭다. 그러나 급증한 깃발 부대(단체 관광객, 요즘은 중국인이 많다)는 사진만 찍고 이동하는 걸음은 바쁘다.
나도 바람을 맞으며 칼레메그단 공원 벤치에 앉아 또 사람구경하면서 타국에서 휴일 오후를 보낸다.
난 세르비아가 유럽에서 고독한 국가로 보인다 했다. 유럽이면서 제대로 된 유럽 대접을 못 받고 선진국도 아니며 개도국도 아닌 그런 나라이다. 그러나 베오그라드 시민들은 이런 고독함은 관심도 없고 그냥 그냥 잘 살아간다.
나는 매번 세르비아 출장 오면, 질문을 받는다. '그곳은 괜찮아? 위험하지 않아?' 한참 전의 내전 이미지가 강하다. 하지만 아이들이 많고 느리게 사는 베오그라드 시민들의 휴일을 보며 나도 덩달아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은 여러 번 와서 익숙해서가 아니라 하얀 도시에서 풍기는 향기이다. 이 향기가 좋다.
한동안 세르비아 출장 기회가 없을 듯해 스타벅스에서 기념, '향수'도구로 머그잔(You Are Here Collection)을 구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