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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 Mar 10. 2024

어느 날 찾아온 번아웃과 갑상선암

 나는 유아교육과를 졸업 후 어린이집에 취업을 했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묵묵하게 일해서인지 원장님께서 예쁘게 봐주시고, 믿어 주셨다. 나는 경력도 얼마 안 되어 중간관리자가 되었다. ‘리더’라는 역할에 막중한 책임감과 부담감을 느꼈다. 뭐가 뭔지 모르니 무조건 앞장서서 모범이 되려 했다. 원의 평화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원장님, 선생님들, 학부모님들, 아이들 모두를 만족시키려고 했다. 

 네모난 건물 안에서 나의 눈치는 빛을 발했다. 하지만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는 나날이었다. 일이 많으면, 늦게까지 혼자 남아서 어떻게든 처리하면 되었다. 그런데 직장 내의 분위기를 좋게 만드는 것은, 가장 신경이 쓰이는 일이었다. 개성이 각기 다른 사람들이 모여 있는 집단에서, 함께 나아가도록 독려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 결국, 사람의 마음을 살피는 것이 가장 힘들었던 셈이다.      


 나는 관리자로서 사람들이 내리는 평가가 두려웠다. 하루하루 일을 쳐내듯이 바쁘게 살았다.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챙기느라 내 마음을 보살필 여력이 없었다. 

 중간관리자로서 원장님에게도, 선생님들에게도 끼지 못하는 외로움이 있었다. 나는 누구의 편도 아닌 중립을 지켜야 했다. 될 수 있으면 말을 아꼈다. 중간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도 많았다. 원장님께는 싫다, 못 하겠다는 소리를 못했다. 선생님들에게는 아무리 힘들어도 힘들다고 말할 수 없었다. 학부모님들의 요구와 불만은 그대로 흡수해야 했다. 나는 감정들을 표현하지 않고 참기만 했다. 하지만 참고 억누르는 것은 진정한 조화가 아니라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다 보니, 감정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한 번씩 슬럼프가 올 때도 있었다. 하지만 원장님께서 “너 아니면 안 돼. 난 너만 있으면 돼. 결혼해도 멀리 가지 마라.”라고 하는 말씀을 버팀목 삼아 버텼다. 내가 인정받고 있으며, 그곳에서 꼭 필요한 사람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의 한계를 느끼면서도 쉼 없이 꾸역꾸역 앞으로 나아가기만 했다.     


 그러던 내가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평소 같으면 그냥 넘어갈 일에 화가 나는 것이었다. 원장님에게도, 선생님들에게도, 학부모님들에게도 나의 표정이 숨겨지지가 않았다. 당황해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내가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우연히 갑상선이 호르몬에 영향을 준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보니, 갑상선암이라고 했다. 나는 충격으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어쩌면 그전부터 이미 나는 심리적 소진 상태였을지 모르겠다.

 항상 바쁘게 움직이던 내가 풀이 죽어있으니 원장님은 걱정이 되셨을 거다. 그리고 원의 일에 지장을 주고 있으니, 내가 빨리 기운을 차리길 바라셨을 거다. 그런 나를 불러 원장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거 별거 아니야. 누가 그렇게 일하래? 다 네 성격 탓이지.” 


원래 무뚝뚝하신 분이라 다정하게 말씀을 못하실 뿐, 나쁜 뜻이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그 말이 얼마나 아팠는지 모른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내 삶의 의미를 생각하게 됐다.  ‘충성을 다해 일해 온 10여 년의 결과가 이것밖에 안 되는구나.’,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지?’, ‘누구를 위해 살아왔지?’ 이런저런 번민에 허무한 마음이 겹쳐졌다. 나는 너무나 무거운 짐을 혼자 짊어지려 했다. 대신 나를 돌보는 데는 소홀했다.

 

마지막 근무 날, 회식이 있었다. 내 일을 대신하게 된 선생님의 시어머니가 그곳에 승진 축하 꽃다발을 가지고 오셨다. 나의 아픔이 누군가에겐 기쁨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뭐라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이었다. 어쩌면 “놀랐지? 힘들지? 그동안 고생했다.” 는 위로와 공감이 받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가장 힘든 시간, 내 옆에 그런 사람이 없다는 것이 슬펐다. 그때 나는 왜 나 자신에게 그 말을 해주지 못했을까? 왜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하지만 그 시련들이 의미 없다고 할 수는 없다. 분명히 나에게 필요한 시간이었다. 나를 믿어 주시는 원장님 덕분에 나는 다양한 일들에 도전하고, 성취할 수 있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나는 다양한 인간관계를 경험하며 성장했다. 내가 머무른 그곳은 다양한 경험과 감정들을 접할 수 있는 학교였던 셈이다. 어쩌면 이제 그만하면 됐으니, 진정한 나 자신을 찾으라고 병이 온 것 같기도 하다. 그 과정을 겪으며 나의 마음 근육은 단단해졌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만 맞추며 사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맞추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내 마음도 모르면서 남한테 맞추려고만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맞추려 한다고 맞춰지는 것도 아니었다. 되지도 않는 걸 되게 하려 애쓰면서, 뜻대로 안 되면 실망하곤 했다. 내가 다 맞춰주면 사람들이 날 좋아하느냐? 그것도 아니었다.


 엄청 추운 겨울날, 직장 동료가 양말을 신지 않고 우리 집에 놀러 왔다. 나는 ‘얼마나 발이 시릴까?’ 싶어 새 양말을 하나 꺼내 주었다. 처음에 거절을 하길래 미안해서 그러는 줄 알고 한 번 더 권했다. 그런데 화를 내는 것이 아닌가? 진심으로 원하지 않는 것이었다. 생각해 보니 맨발에 단화를 신어 멋을 낸 것 같았다. 일부러 신지 않은 것이었다.

 오헨리의《마녀의 빵》을 보며 배려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빵집을 하는 여성이 매일 딱딱한 빵만 사가는 남성을 안쓰러워한다. 정황을 보고 ‘가난한 화가’라고 추측한 그녀는 몰래 빵에 버터를 발라 주게 된다. 남성은 건축 설계사로 굳은 빵을 지우개로 사용하기 위해 사 간 것이었다. 여자 때문에 경연을 망친 남자가 화를 내는 것으로 이야기는 씁쓸하게 끝이 난다. 내가 배려라고 생각했던 것이 상대방에겐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분명히 내 할 일이 있어서 이 땅에 태어났을 것이다. 그런데 내 할 일에 집중하지 않고 남의 눈치만 보고 산다는 것은 직무유기다. 내게는 내가 할 일이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각자 자기 할 일이 있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인정 못 받는다고 해서 의미 없는 삶이 아니다. 나는 그동안 훌륭한 위인들처럼 큰 희생을 하거나 봉사를 하는 삶이 가치 있는 삶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그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신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원하신다고 한다. 하지만 자식이 기쁘고 행복하길 바라지, 자식이 희생하면서 힘들어하는 걸 원하는 부모는 없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 있는 그대로 우리를 사랑해 주신다. 내가 선택만 하면 된다. 내게 주어진 삶에 온전히 집중하고, 내 삶의 주인공으로서 창조하며 살 것인가? 남의 눈치나 보고 남에게 맞춰주면서 허송세월 할 것인가? 당연히 전자다. 나는 가슴 뛰는 일을 하면서, 기쁨과 행복을 느끼는 삶을 살고 싶다.      

 

 이 세상은 ‘나’로부터 시작되고, 모든 것은 내 마음 안에 있다. 그래서 내가 가장 소중하다. 그러니 내가 나를 도와야 한다. 내가 나를 돌보는 것을 이기적인 것이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 필요한 것은 나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용기다. 

 착한 것과 약한 것을 혼동하면 안 된다. 희생하고 양보만 하는 것이 착한 것은 아니다. 가장 착한 것은 나를 먼저 사랑하고, 나를 지키면서 남도 돕는 것이다. 남을 위한다고 나 자신을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 내가 나를 지키는 힘이 생겼을 때, 남을 기쁘게 하거나 돕는 것은 숭고한 일이 될 것이다. 

 다 때가 있는 것 같다. 나 자신에게 집중하고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마음속 느낌과 주변 사람들이 변화한다.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 하고 싶은 걸 하다 보면 내가 행복해진다. 그러면 힘이 생기고, 나눠줄 수도 있게 된다. 그때 나눠주는 사랑이야말로 사람들에게 위안과 행복이 될 것이다.     

 

 어릴 때는 짧고 못생겨서 너무나 싫었던 내 손이 요즘은 선물 같다는 생각이 든다. 현란한 문체는 아니지만, 이렇게나마 글을 쓸 수 있다는 게 행복하다. 사람들의 감정을 움직이고 감동을 줄 수 있다면 더 좋겠지만 결과는, 그냥 운명에 내맡길 뿐이다. 소명은 누가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닌 것 같다. 느낌, 직감으로 잡아내야 하지 않을까. 오직 나만이 알고 나만이 해낼 수 있는 일이다. 나는 오늘도 나의 직감을 믿고 따르며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꼭 나를 희생하지 않아도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는 방법이 있다.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는 것, 다른 사람의 말을 진심으로 들어주고 공감해 주는 것, 외로운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것, 따뜻한 말을 건네주는 것, 눈을 맞추고 미소 지어 주는 것 등 이렇게 소소한 것들을 나누는 삶이 최고의 삶이 아닐까, 싶다. 


사랑은 따뜻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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