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관희 Feb 08. 2024

나를 받아들이는 것(feat 궁예)

내가 누구인지 아는 것보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편하더라

제목 :누가 기침소리를 내었는가? 누구인가? 누가 기침소리를 내었는가?


궁예는 이렇게 말하고 기침소리를 낸 사람의 머리 안에 마구니가 껴있다고 철퇴로 때려 죽였다. 어제 밤에 아빠따라 봤던 기억이 있었는데 진짜 무서웠다. 나는 정말로 궁예가 모든 사람의 마음을 알거라고 생각했다. 근데 그것은 모두 거짓말이었다. 아빠가 말씀하기를 실제 역사에서는 궁예는 왕건의 역모로 인해 마을로 숨어 내려갔다가 백성들에게 맞아죽었다고 한다. 궁예가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알았다면 그렇게 허무하게 죽었을까? 궁예는 순 거짓말쟁이이다. 궁예는 정작 본인 마음도 몰랐다.



초등학교 시절 내가 쓴 일기의 내용중 일부이다. 초등학교 시절 썼던 일기장을 보는 것은 나에게 소소한 재미를 안겨주는데 이 일기를 읽고 정말 크게 웃었던 것 같다. 저 당시의 나는 순수한 마음으로 정말로 궁예가 미륵관심법을 가지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거라고 믿었던 것 같다. 하지만 실제로는 아니라고 하니 궁예가 정말 미웠었나 보다. 아무래도 그 당시 연기를 한 김영철씨의 열연 덕분에 어렸던 내가 깜빡 속아 넘어 간 것 같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연기에 속아 넘어가곤 한다. 그리고 그 사람이 누군인지를 어쩌면 그 사람의 연기를 통해서 판단할 수도 있다. 그렇게 쉽게 우리는 다른 사람의 언행 혹은 직업 등을 통해 그 사람을 판단한다. 


 하지만 내가 누구인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부터 생각해보면 쉽게 나를 판단하지를 못한다. 본인을 쉽게 판단 하고 내가 누구인지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매우 적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나는 당신은 우리는 매일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내가 한 가지 말할 수 있는 것은 나를 알기 보다는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 좀 더 쉬울 것 같다는 것이다. 나의 짧은 식견과 경험을 통해 알게 것은 나를 알기위해 무언가 노력하기 보다는 [나는 원래 이런사람이야] 라고 생각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으로 나에게 다가가는 방법이더라.


 그래서 나는 그렇게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의 나 자신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는 글써서 돈을 벌고 싶은 사람이야]


 이렇게 또 한번 이 순간의 나 자신을 받아들이면서 나는 나에 대해서 하나씩 알게 되어 간다. 하지만 조심해야 한다. 판단하고 결론을 지어버리는 것은 조금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5분 뒤에 나는 또 달라진다. 5분 뒤의 나를 또 받아들여야 하고 하루, 1주일, 1년 뒤의 나는 달라진다. 경험이 쌓이면서 성격도 성향도 달라진다. 그래서 본인을 판단하기 보다는 그때 그때의 본인의 모습을 받아들여야 한다. 내가 약한 모습이고 내가 모잘라 보이는 모습도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도망가지 않더라. 나는 많이 도망갔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기가 무서워서 도망갔다. 허나 이제는 도망가지 않으려고 한다. 내가 누구인지를 판단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나 자신을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도망가지 않으려고 한다.  


 나는 이 과정을 통해서 내가 처한 어려운 상황 그리고 넘겨야 할 고비들을 넘겨보려고 한다. 실제로 그러한 고비들을 넘기는데 이런 과정이 몹시 큰 도움이 되었다. 받아들이는 것이 내가 알게된 가장 큰 해법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포기하면 편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