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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선경 Oct 12. 2024

있는 그대로 사랑해

2024.08.14

인생이라는 것이 매번. 하루하루 충실히 살아감이 각자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려있듯이, 마음에 드는 하루. 뿌듯한 하루란 참 어려운 것 같다.


그래도 가끔 나의 하루가 참 의미 없게 지나갔나? 싶다가도 생각보다 나의 하루 안에 숨 쉬듯 자연스럽게 녹아있는 나의 노력이 숨겨져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내가 정말 마음속 깊은 곳에서 충족이 될 만큼 큰 어떠한 깨달음이 있어서, 일기를 쓸 때에도 막힘이 없는 그런 하루가 과연 충실히 살았던 하루였을까?


책을 읽다가도 어느 날은 이해가 안 되어서 자꾸만 읽히지 않는 그날이 있는 반면, 무심결에 펼친 어느 날에 읽은 같은 구절이 ‘아, 이런 의미인 건가?’라고 되새기게 되고.

분명 재미없게 보았던 영화를 우연히 다시 보았다가 꽂힌 대사에 큰 울림을 느끼게 되는데 오히려 정말 소중하게 보았던 영화를 다시 꺼내볼 때 그때만큼의 큰 울림을 느끼지 못하는 날이 있고.

흔히들 말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나를 안 좋아하고, 운명이라 믿었던 서로가 헤어지고 예상치 못한 순간에 만난 사람이 한순간에 운명이 되어가는.

타이밍.

삶의 타이밍이란 참. 새삼스레, 우연의 일치의 또 연속이지 싶다.


그 절묘한 타이밍의 힘을 빌려 그 시절 그 순간 정확하게 내 머리에 박혀 기록하고 싶은 단어들이 항상 있다.

요즘(?) 나에게 가장 강하게 꽂힌 단어, 감정.

삶에서 매 순간 나의 뇌에 찍어내는 복사본이 기억이라면, 나의 심장에 복사본을 매번 다른 모양으로 아낌없이 찍어내는 그 도장.

나에게 숨을 쉬는 것보다 살아있음을 증명해 주는 그것.


어릴 적, 나는 나의 감정을 정확하게 모르고 살 때가 있었다. (지금도 뭐 가끔은 그러는 것 같다.ㅎ)

내 안의 감정들이 꽤나 난폭했던 기쁨이로 인해 많이도 움츠려 있었던 그 시기에 나는 연기를 접하게 되었다.

그땐 멋모르던 낭랑 17세 소녀가 선택했던 길이 지금까지 이리도 큰 파장을 일으킬 줄을 몰랐지.

연기를 하면 내 안의 감정들이 마구마구 요동치고 자유로워진다. 그리고 가지각색의 성격들을 가지고 있는 그들은 더욱더 다양한 친구들을 만나게 되고, 깊고 넓은 관계도를 형성하게 된다. 움츠려있던 각자가 점점 자신의 영역들을 넓혀가며 당당해지고, 난폭했던 기쁨이조차 이제는 본인의 짐들을 내려놓고 한층 더 여유로운 티타임을 가질 때까지, 참 오래도 걸렸다.

그때부터였을까. 나에게 있어서 연기란, 과거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나의 인생 멘토라는 존재로 자리 잡았구나. 그래서 내가 너를 놓지 못하는구나. 어느 순간부터 네가 나의 길잡이가 되어주고, 나의 손을 잡아주고, 나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구나. 싱클레어에게 데미안이 존재했듯이 사람마다 자신이 가는 길에 있어서 길잡이가 되어주는 존재는 다양하다. 나에게는 그런 존재가 연기였던 것이다. 감사한 타이밍을 연결해 내가 너를 맞이할 수 있어 기쁘지 않을 수 없다.


연기를 하면서 감정을 다룰 수 있음에 항상 감사했다. 그리고 또 감정에 무뎌지는 것을 두려워했다.

연기를 하는 것이 樂(낙)이었던 나에게, 무정한 세상은 그 낙을 뺏어가기 일쑤였다.

나의 감정 상태가 제로베이스가 되었을 때, 나는 편안함을 느낀 것이 아니라 감정 없는 로봇임을 느꼈다.

너무나 잔잔한 호수가 되어버려 더 이상 흘러넘치지도 않는, 더 이상의 심장 박동의 요동침이 없는 숨이 멎은 상태였다.

무정한 세상을 살아가기에 누군가는 그런 순간으로 살아가는 그 삶이 오히려 편하고 안정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에게는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정확하게 인지조차 못하고 그저 둥둥 머물러있는 듯한 “무”의 상태가 꽤나 어려웠다.

그런 나에게 수많은 타이밍의 돌들이 던져졌다.


"Welcome to the real world. It sucks. You're going to love it." -Friends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우리는 사력을 다해 알을 깨고 나와야 한다."

"그 어두운 거울 위로 몸을 굽혀 내 모습을 비춰보았다. 이젠 완전히 내 친구, 나의 인도자인 그와 똑같이 닮은 모습이다." -Demian


버티는 자가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는 자가 승리한다고. 지치고 힘들지언정 이 거지 같은 세상에 꽃을 하나 심어 나비를 발견하는 재미를 찾는 것이 곧 내가 버텨내었다는 증거가 되는 것이라고. 이런 나의 동화 같은 상상이 헛된 희망이 아니라고. 보이지도 않는 투명한 알을 분명히 깨고 나와, 기필코 날개를 펼쳐 날아오르리라고. 나에게 중요한 것은 자유임이 틀림없고 그 자유가 곧 나의 춤이 될 것이라고.


최근 오디션을 보고 오랜만에 연기를 하면서 감정의 자유로움을 느낀 쾌감에 <몸의 자각 & 마이즈너 테크닉 워크샵>을 신청했다.

처음 마이즈너 테크닉을 접한 것은 작년 봄의 시작 즈음이었다. 학원에서 짧게 진행했던 시간 속에서 꽤나 매너리즘에 빠져있던 나에게 필요했던 공부임을 느끼고 훗날 꼭 제대로 배워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난 7월, 마침내 워크샵에 참여했다.

연기를 접하는 방식은 다양하게 있지만 나에게는 이 훈련법이 굉장히 잘 맞았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처음 연기를 접하게 되었을 때 배웠던 연기 방식이 곧 연기를 하면서 내가 치료를 받고 있었음을 알게 해 준 연극치료의 방식이었고, 이는 감정을 기반으로 훈련하는 마이즈너 테크닉을 통해 다시금 얻을 수 있던 설레는 연기와의 포옹이었다.

 

고작 한 발자국 안에 가득 담은 나의 이야기.

언젠가 돌아올 나의 집을 떠나 때로는 다른, 때로는 같은 공간을 걸어 다시 돌아온 집으로의 여정 속 찍힌 고작 한 발자국이 가득한 나의 여행길.

내가 바라보는 시선 속에 존재하는 시점들을 빈틈없이 색칠해 바라본 시야.

내가 바라보는 관점으로 인해 생기는 너와의 거리감 속 우리들의 미세한 호흡의 변화.

나에게 속해 있는 자연성으로 이루어진 나의 중심.

나의 관심이 곧 사랑이 되어 바람에 스치는 나뭇잎과 같은 관계성을 갖게 되는 너와 나.

너와 나의 대화 속에서 너를 통해 알게 되는 나의 감정들. 그리고 너로 인해 느끼게 되는 나의 감정들.

그 속에 존재하는 인식 오류를 인지하고 인정하며 수용하는 자세.

생각보다 무딘 감각력으로 예상치 못하게 뛰어난 멀티 실력을 통해 넓게 바라본 너의 세상.

계속되는 너, 너, 너,의 세상이 꽤나 재밌어서 자꾸만 그 세상 안으로 빠져들어갔다.

“나 지금 너 보고 있어.”

서로 바라보는 눈빛을 통해 군중 속의 고독을 느낌으로 나는 너의 적이 아님을 느끼게 해주는 안정감.

그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바라보고 안아주는.


이 모든 것은 혼자일 때 명확하게 느껴지는 감정들이 아니라, 함께일 때 비로소 확실하게 튀어나오는 감정들이었다. 이는 곧 특정한 어느 때가 아닌, 매일의 일상이 되어 모든 순간에도 우리 모두가 충분히 느낄 수 있는 따뜻함이었다. 그 어렵고도 단순한 것을 할 수 있게 함께해 주는 나의 친구들.


그들은 반짝이는 눈으로 나와 몰래 접선한다.

우리는 각자의 바깥에서 서로를 만난다. 마치 친구처럼.

친구가 된 이가 속삭인다.

당신에게 없는 것이 내게 있어요.

이걸 드릴 테니, 당신은 내게 없는 걸 주실래요?

그렇게 우정이 시작된다.

자신에게 없는 것을 서로에게서 몰래 훔치며.

당신에게 없는 것으로 인해 당신은 완벽해진다.

당신은 우정 도둑이다.

유지혜_우정 도둑


감정들은 뒤죽박죽 제멋대로이다.

때로는 나를 외면하고 힘들게 한다 생각했던 그들은 언제나 나를 위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나의 감정 메인보드를 활보하고 다녔고, 오히려 유난스럽게 무심했던 내가 그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았을 때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배려하며 받아들일 수 있었다.

기쁨이가 가는 곳에 슬픔이가 함께하듯, 잘 해낼 수 있을까 걱정하던 불안이가 셀카를 찍을 기회를 주듯. 자신이 모든 짐을 짊어지고 힘들어하는 기쁨이에게 손을 내밀어 주는 친구들.

각자가 가지고 있는 성질이 애초에 다르기 때문에 그들은 또 충돌하고, 누구 하나 특출나게 잘난 것이 아니기에 또다시 서로에게 스며든다. 그렇게 우리는 엉망이지만 아름다운 서로를 사랑으로 보듬게 된다.

사라져 버린 나의 기억 속 빙봉을 항상 기억해 주는 기쁨이 덕분에 더 이상 기억나지 않는 빙봉의 존재를 찾아 나는 또 기억 속을 여행하여 이렇게 글을 기록한다.

그러다 보면 매 순간의 타이밍들로 내 안의 자아가 형성되었다는 것을 온전하게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 타이밍 속 매번 나의 손을 잡아준 감정들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 진다.

Joy, I want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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