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중독
<공기의 맛>
숨을 쉬어봐요.
들숨이는 호흡으로 들어온 공기는 우리에게 여러 맛을 선사해 줘요.
천천히.
자연스럽게.
그리고 강렬하게.
공기에도 맛이 있어요.
우리는 그 맛을 맡는 순간 그곳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죠.
그 날씨의 향을 머금은 바람을 타고 나를 만나러 와 인사를 해주는 듯해요.
그 인사에 나는 불가항력적으로 눈이 게슴츠레 떠지며 멍해지네요.
그런 순간들이 있죠.
멍해지는 순간.
그 순간은 언제나 나에게 평안함을 줍니다.
그 평안함이 꼭 잔잔함이 아니라, 작은 요동침일 때도 있어요.
마치, 두꺼운 이불로 소음을 막고 얼굴을 처박아 소리를 지르는 것과 다름없이.
2024.02.14
그 계절만 되면 들어야 하는 노래가 있고, 그 계절에 봐야 하는 영화가 있고, 그 계절에 어울리는 장소가 있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계절이 있고, 싫어하는 계절이 있고. 그에 따라 좋아하는 날씨, 싫어하는 날씨가 갈린다.
계절마다 먹어야 하는 제철음식들이 있고, 계절마다 입고 있는 옷이 달라지며, 계절마다 피고 지는 꽃들, 계절마다 불어오는 바람이 다르다. 그리고 그렇게 계절마다 불어오는 각기 다른 바람을 타고 온 서로가 만난 우리는 짜고 치는 것도 아닌데 알게 모르게 계절을 공유한다. 그렇게 계절을 공유하는 서로가 뒤엉켜 만들어진 계절의 체취는 곧 그 계절의 향기가 된다. 이는 우리 안에 각 계절마다 상징하는 색감들로 가득 묻어난 풍경을 배경으로 삼아 생긴 정서의 흔적이다.
날씨에 영향을 꽤나 많이 받는 나는 그 날씨를 품고 있는 계절을 온전히 느끼며 여행한다. 그러다 보면 특정한 순간에 그날의 향기가 자연스럽고도 강렬하게 베인다. 매 순간 기억이라는 뜬구름을 붙잡으려고 애쓰고 발버둥 치는 나는, 신기하게도 그 계절의 향기를 맛보는 순간만큼은 너무나도 쉽게 그 기억 속으로 들아갈 수 있었다. 그런 나는 운이 좋게도 매년마다 다시 돌아오는 계절의 분기 덕분에 떠나버린 계절의 정서를 되찾을 수가 있었다. 계절의 정서가 잔뜩 묻어있는 그 향기는 뚜렷하지는 않지만 내 안에 분명히 존재하는 공기로 다가와 과거와 현재를 뒤섞기 시작한다. 그 해의 그 계절의 그날에 내가 보고 느낀 향기가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는 흔적들로 인하여 그렇게 난 각 계절의 향기들에 심취해 살아간다. 기억여행을 하기에 딱 좋은 계절의 향기로 인하여 계절공기에 중독된 거나 다름이 없다. 그렇게 중독된 공기를 천천히, 되도록이면 음미하면서 맛보다 보면 그 향기가 매번 강렬하게 나를 태우고, 그을림이 생겨 오래도록 그 순간을 기억하게 해 준다. 그러니 계절공기에 중독이 안될 수 없었다. 이런 하루하루의 나날들을 품고 있는 계절공기에 중독되기 시작한 건 지나가버린 추억을 붙잡고 싶어 하는 나의 욕망에서 나오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욕망은 이미 지나가버리고 어느 순간 사라져 가는 기억을 멱살 잡고 끌고 온다.
당연하게 찾아오는 4계절의 분기가 아닌 하나의 계절 속에서만 살았다면 나는 과연 어떻게 그 계절들을 기억하고 그날의 온도를 기다리며 마주할 수 있을까. 사실 한 계절만 알았다면 그저 오아시스의 존재를 모르고 사막을 여행하는 것과 다름없이 각 계절 모두에게 사랑에 빠지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텐데. 1년에 4계절이 존재한다는 것은 잊지 않고 너를 기릴 수 있는 감사한 장치인 것이다. 이제 나는 계절공기에 중독이 된 것인지, 그때의 그 순간을 사랑하는 것인지, 너를 사랑하는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아 어쩌면 나는 계절마다 또다시 내 몸에 새길 수 있는 서로의 체취가 뒤섞인 흔적의 발자취에 중독된 것이구나. 그리고 그 중독이 곧 사랑이구나.
수많은 하루 중에 한 날, 뜻깊은 자리를 부여했던 그 하루하루의 한 날들이 모이고 모여 한 달이 되고, 또 한 계절이 되고 그렇게 한 해가 된다. 한 해가 지나갈 12월의 마지막날이 다가올 때쯤 우리는 매번 뒤를 돌아보고 앞을 향해 나아간다. 2024년 11월 초. 나는 살면서 처음으로 올해를 12월이 아닌 11월에 되돌아본다.
한 해를 다 돌아보기에 하루하루가 벅차 계절로 나누고 각 계절로 추억여행을 하다 보면, 그 계절들이 하나하나 참 많이도 나를 태웠구나 싶은 흔적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해마다 그 흔적이 보다 더 강렬하게 남아있는 한 계절이 있다. 올해, 따지고 본다면 가을의 향기가 나를 참 많이도 감싸 안았다.
올 8월 31일 일주일간 몽골을 다녀왔다. 하루에 4계절을 품고 있다 표현을 하는 몽골에서 맛본 공기가 요즘 같은 시대에 '가을'이 아니라 '갈?'이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더운지 추운지 느껴볼 새도 없이 짧아진 우리나라의 가을의 향기와도 같았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올해의 가을은 익숙해진 '갈?'의 분기가 아닌 오랜만에 느껴보는 '가 을'이었고, 벼가 서서히 익어갈 수 있게 충분한 여유를 선사하듯 길게 느껴졌다. 매번 12월 31일에 다급히 한 해의 마무리를 하던 나에게 조금이나마 쉬어가라는, 어쩌면 미리 받은 산타할아버지의 선물이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이는 마치 월동을 준비하여 다시 또 돌아오는 새로운 봄을 찬란하게 맞이하라는 계시와도 같았다.
차디찬 겨울로 시작한 한 해에서 설렘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봄이 다가와 너무 뜨거워서 나의 살가죽이 다 타버린 여름의 흔적을 잔뜩 안고 지금 나는 가을의 선선한 공기를 서서히 맛보면서 겨울을 맞이하고 있다. 올해가 순식간에 흘러간 듯싶지만, 아직 2개월이나 남짓 안 남은 올해를 천천히 뒤돌아 볼 수 있는 이유는 지나온 올 한 해 빈틈없이 흔적들을 남긴 각 계절들의 향기 덕분이다. 계절의 체취가 잔뜩 묻은 그날의 향기는 하나하나 잊고 싶지 않은 기억의 흔적으로 남아있다. 그 흔적은 또다시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그 순간에 머물러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게 만들기도 한다. 저마다의 계절들이 각기 다른 그들만의 매력으로 만든 스토리. 그들이 내어주는 온도, 습도, 조명.... 각기 다른 그 손길로 나를 감싸 안은 각 계절의 날씨들이 이제는 너무나도 소중한 나의 이야기들을 만들어버렸기 때문에 하나하나의 향기가 매혹적으로 날 감싼다.
그렇게 다양한 맛을 지니고 있는 공기의 냄새가 매번 날 유혹한다. 그리고 난 저항 없이 그 늪에 빠져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