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민재 Jan 15. 2022

취향의 발견

취향이 없었다. 주는 대로 먹고 하라는 대로 했다. 그게 편했다. 오히려 나쁘지 않은 평판을 얻었다. 뭐든 잘 먹는다고 뭐든 잘한다고.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 가고 있었다. 


그러나 취향 없는 자의 하루는, 한 달은, 일 년은 괴로웠다. 공허했다. 거기에 나 자신은 없었다. 달팽이집 없는 달팽이로 사는 느낌. 취향이 없는 건 위태로운 일이다, 이를 알게 된 건 한참 후의 일이다.


취향이 없었기에 취향을 가지려 노력했다.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기를 반복했다. 내가 조금이라도 더 좋아하는 음식을, 내가 조금 더 선호하는 사람을, 내가 좋아하는 향기와 물건과 공기를 하나씩 찾아나갔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내가 기분 좋을 때를 기록했다. 내가 싫어하는 것을 적을 때도 있었다. 조금은 억지로 취향을 만들기도 했다. 나에 대해 계속 질문하는 과정,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그렇게 찾아낸 취향과 기호가 모이면 내 특질이 되었다. 곧 내가 되었다.


아직 찾을 취향이 많고, 지금 찾은 기호들이 앞으로 바뀌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남들 보기에 기이할지언정 나만의 달팽이집을 갖게 되었다. 그러면서 적절히 거절하는 내가 되었다. 내게 미움받을 용기가 없었던 이유는 내 취향과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내 취향을 알기 위해서는 많은 취향을 접해보아야 했다. 이것을 발견하고 수정해나가는 과정은 어쩌면 사는 내내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아직 나는, 나를 채우기 위한 빈 조각을 찾고 있다.


내가 본래 가진 것을 발견하고, 내가 원하는 삶의 방식을 끊임없이 질문하는 일. 그리고 부족한 부분을 나름의 방식으로 채워가는 일. 없는 것을 불평하지 않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일. 남과 비교하지 않으려 더욱 내게 천착하는 일. 


그래. 지금 내가 걷고 있는 길은 자기 계발이 아니라 자기 발견에 가까운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보이지 않는 위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