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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의 화영 Oct 23. 2024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

눈물 젖은 요구르트


신규간호사로서 일을 시작한 부서는 내과중환자실이었다. 병원에 입사할 때 가고 싶은 부서를 적어냈었는데 그때 1,2,3 순위 모두 중환자실을 적었다. 이유는 이왕 간호사 하는 거 제대로 배우고 싶었고 뭐든 잘하는 간호사가 돼 보자! 하는 포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다음으로는 병동에 비해 보호자를 적게 상대하는 게 큰 이유였다. 그 이유들에 걸맞게 중환자실은 정말 뭐든 잘 해내야 해서 대·차·게 힘들고, 병동에 비해서는 보호자를 적게 상대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상대를 안·하·는 부서는 아니었다.


대차게 힘들었던 신규 간호사 생활 동안 절대 병원에서 울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내가 엉엉 울어버린 날이 있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온갖 의료장비들의 알람이 울려대던 와중이었다. 그러던 중 소위 말해 '빨간 알람'이라 칭하고 가장 위급한 순간에 울리는 알람이 귀를 찔렀다. 알람의 원인은 부정맥, 갑작스러운 심실빈맥 (ventricular tachycardia)이었다. 1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순간이었지만 환자는 그 기간 동안 잠깐의 실신을 동반했다. 심장이 원래의 리듬으로 돌아오며 환자가 깨어났지만 자신이 실신했다는 것은 인지하지 못했고 눈을 감았다가 뜬 느낌이라고 했다. 괜찮다고, 아무렇지 않다고 했다. 시작은 그랬다.


이후에 환자의 심장기능이 더 떨어지기 시작하며 심실빈맥이 자주 발생했고 그럴 때마다 매번 실신이 동반되면서 환자는 점점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분명 앉아서 밥을 먹고 있었는데 눈을 감았다 뜨니 자신은 누워있고, 모든 의료진이 다급하게 본인에게 처치를 하고 있는 순간이 반복되었다. 깨어나는 순간마다 환자는 두려움에 떨며 손을 잡아 달라고 했다. 다시 눈을 감으면 이번엔 영영 못 뜨게 될까 봐 두렵다고 했다. 나는 무서워하는 환자에게, 치료 중이니 괜찮아질 거라고 다독였다. 다른 환자도 보러 가야 해서 이만 손을 놓아달라고 할 때마다 환자는 조금만 더 있어달라고 하며 손을 놓지 않으려고 했다. 할 일이 쌓여 있어 그 환자에게 오롯이 쏟을 수 있는 시간이 한정적이었다.

결국 환자는 인공호흡기를 적용하게 되었다. 인공호흡기를 하는 동안은 마약성 진통제와 수면제를 같이 사용하게 되는데, 두려움도 괴로움도 모두 약으로 잠재워버려서인지 환자의 병세가 꽤나 호전되는 듯 보였다. 시간이 지나 인공호흡기를 떼내기 위해 환자를 깨웠고, 오랜 동면 끝에 깨어난 환자는 다시 모든 것이 두려워 보였다. 나는 그런 환자가 안쓰러웠고, 안심시키고 싶었다. 


"인공호흡기 하고 있는 거 엄청 힘들죠? 이거 빼면 훨씬 편해질 거예요. 이제 인공호흡기 없이도 숨 잘 쉬고 심장도 괜찮아져서 의사 선생님이 인공호흡기 곧 빼준대요!"

나는 기쁘게 말했다. 환자도 고개를 끄덕였다. 하고픈 말이 많아 보였지만 인공호흡기 때문에 말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종이에 글씨를 적어서 의사소통 하기로 했다. 환자가 힘없는 손으로 적은 첫 문장은 '요구르트 먹고 싶어'였다. 


"내일 아침에 인공호흡기 떼고 입으로 먹어도 된다고 하면 제가 요구르트 꼭 먹게 해 드릴게요!"


환자는 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엄청나게 자주 나를 찾았다. 물도 먹고 싶고, 집에도 가고 싶고, 그냥 옆에도 있어줬으면 좋겠고, 요구가 점점 늘어났다. 조금은 버겁고 귀찮게 느껴질 즈음 퇴근시간이 다가왔고 빠르게 퇴근하려던 나를 또 한 번 불렀다. 빨리 집에 가서 쉬고 싶은 마음에 조금은 짜증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왜요??"


환자는 글씨를 쓰고 싶은지 허공에 적는 흉내를 냈다. 종이와 펜을 찾아오기 귀찮았던 나는 내 팔에 손으로 글씨를 적어보라고 했다. 환자의 팔에 힘이 없어 내 팔에서 손이 툭툭 떨어져 버리는 바람에 연신 "다시요"를 외치며 한 글자 한 글자 유추해 낸 말을 이러했다.


'평생 잊지 않을게 고마워요'


짜증 내버린 내가 너무 부끄럽고 미안했다. 울컥하는 마음을 뒤로하고 내일 아침에 인공호흡기 무사히 잘 빼고 모레 웃으며 보자고 약속했다. 출근이 기다려진 퇴근길은 처음이었다. 



다음날 출근하자마자 그 환자를 보러 갔다. 자리가 비어있었다. 자리를 옮겼나? 그새 너무 괜찮아서 병동으로 갔나? 생각하며 근무 중이던 동기에게 찾아가 물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다. 

환자는 그날 내가 퇴근한 이후, 새벽에 갑작스러운 심정지로 돌아가셨다고 했다. 왈칵 눈물이 났다. 아무도 없는 장비창고에 들어가 남몰래 펑펑 울었다.


내가 다 괜찮다고 했는데, 이제 다 나았다고 했는데···

요구르트 먹을 수 있게 해 준다고 했는데··

그때 짜증 내지 말걸······...


쉽게 내뱉었던 긍정적인 말들, 쉽게 내버린 짜증이 모두 후회로 돌아왔다. 그때가 처음으로 내가 환자들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 사건이었다. 거창한 친절을 베풀지는 못하더라도 '말의 무게에 대해 생각하는 간호사가 되어야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무리 힘들어도 짜증은 내지 말아야지' 다짐했다. 내가 어떻게 하면 일을 좀 더 잘하거나, 편하게 할지는 늘 생각하지만 내가 어떻게 환자를 대해야 할지에 대해서 생각하는 건 쉽지 않았던 것 같다. 이런 강렬한 마음의 울림이 있은 뒤에야 생각하게 되었듯이.




이후에도 물론 환자에게 짜증을 한 번도 내지 않았다 던 지, 모든 말을 신중하게 해서 후회가 남은 적이 한 번도 없다던지 그렇지는 않다. 분명 눈물의 다짐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원이라는 환경 속에서 간호사는 너무 바쁘다. 다만, 한 번이라도 덜 차갑게 말하고 한 번이라도 더 따뜻하게 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잠시만요··· '와 '이것만 하고 가봐야지···.'를 스스로 지키는 것뿐. 그 순간들이 다음에 후회로 돌아올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리고 후회해도 그땐 이미 만회할 수 있는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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