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에 개봉 예정이었던 듄: 파트2가 무려 4달이 연기된 끝에 드디어 찾아왔습니다. 약 2년 반의 기다림 끝에 듄: 파트2를 수원 돌비시네마에서 감상했습니다. OTT가 미디어의 중심이 된 시대임에도, 평일 아침 극장은 '듄'을 보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온전하게 영화를 감상하는 데 있어 극장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듄은 꼭 극장에서 관람해야 하는 작품입니다.
SF의 바이블, 휴고상과 네뷸라상을 수상했던 소설 '듄'의 영화화는 매우 고단한 작업이었던 것으로 유명합니다. 여러 요인 중 첫 번째는 이 영화의 장대한 스케일에 있습니다. 소설 '듄'은 스페이스 오페라의 시초이며 스타워즈 시리즈의 모태가 되었던 거대한 세계관을 자랑합니다. 1960년대에 쓰여졌던 이 소설이 스크린에 온전히 구현되기까지는 무려 60년의 기다림이 필요했습니다.(1984년데이비드 린치의 작품은 흥행과 작품성 모두 참패함.) 드넓은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대가문의 전쟁, 아라키스의 장대한 사막, 크기를 가늠하기 어려운 샤이 훌루드의 모습까지. 수 많은 영화인들에게 꿈처럼 여겨졌던 영화 '듄'은 감독 '드니 빌뇌브'의 지휘 아래서 환상적인 모습으로 탄생했습니다.
영화관을 찾기 전, 복습을 위해 듄: 파트1을 집에서 한 차례 더 감상했습니다. 그리고 가정용 tv와 미니 프로젝터의 스케일은 듄의 광활한 세계를 담기에 턱 없이 비좁다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이 영화를 극장에서 관람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스크린의 크기가 아닌 '음향'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샤이훌루드가 전달하는 모래알의 미세한 진동과 홀츠만 실드(방어막)를 활용한 전투에서 느껴지는 생동감은 오직 극장의 음향을 통해서만 체험할 수 있습니다.
영화 '듄'이 특별한 것은 관객에게 sf적 서사를 전달하는 것을 넘어 아라키스의 사막을 체험하는 경험을 선사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피켓팅으로 유명한 용아맥의 거대한 스크린이 아니더라도, 이 작품의 음향이 전하는 감동을 온전히 느끼기 위해서는 돌비 시네마가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습니다. 샤이 훌루드의 진동이 의자를 타고 제 몸을 흔드는 순간은 정말 황홀했습니다.
2. '듄'의 이야기가 뻔하지 않은 이유
영화의 성공과 더불어 최근에는 각 서점에서 원작 소설을 찾는 사람들이 많이 보입니다. 저 역시 파트1을 감상한 뒤에 원작 6부를 모두 구매해 읽어 보았습니다. 출간된 지 무려 60년의 세월이 지난 이 옛 이야기가 2024년에도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했습니다. 듄의 세계관을 관통하는 중심 설정은 바로 '메시아'입니다. 듄의 세계에는 구세주가 등장하여 현세의 인류를 구원의 길로 이끌 것이라는 믿음이 있고, 그 믿음의 대상이자 메시아의 길을 직접 걷게 되는 주인공 '폴'이 있습니다.
실은, 이러한 이야기 전개는이미 우리에게 익숙하게 느껴집니다. 설정만 놓고 보면 듄의 이야기는 그다지 특별할 것이 없어 보입니다. 메시아의 이야기는 매우 오래 전부터 계승되어 왔습니다. 예수에 대한 종교적 믿음의 이야기는, 현대의 영화 스타워즈의 루크 스카이워커에 투영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듄의 이야기는 뻔하지 않으며, 어딘가 특별하게 느껴집니다.
원작자인 프랭크 허버트는 메시아가 아닌 '안티 히어로'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듄의주인공은 결코 초월적인 영웅이나 구세주가 아닙니다. 이러한 특징은 특히 듄: 파트2에서 크게 두드러집니다. 폴은 각성을 통해 점차 절대자에 가까운 능력을 얻는 듯 보이면서도, 스스로 평범한 인간이라는 점을 끝 없이 강조합니다. '리산 알 가입'에 대한 신화는 베네 게세리트에 의해 조작되고 주입된 허상일 뿐이며, 메시아의 전설은 치밀하게 계산되고 조작된 이야기입니다. 즉, 파트2에서 주인공이 각성을 통해 특별한 능력을 갖게되는 것은 사실일지라도, 폴은 여전히 인간일 뿐입니다.
그래서 2024년의 우리는 폴에게 더욱 몰입하고 그가 어떤 실수와 잘못된 선택을 하게될지 불안해합니다. 파트2의 이야기는 폴의 성장과 승리로 끝나는듯 보이지만, 사실 영화가 끝나고 주인공은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인 '챠니'를 잃게 되었습니다. 또한 대가문들을 모두 적대하게 되었으며 반 쪽짜리 황제에 불과한 입지에 놓였죠. 그래서 관객들은 파트3를 더욱 궁금해하고 뒷 이야기를 기다리게 될 것 같습니다.
3. 파트1과의 비교
듄 시리즈에는 감독 특유의 연출 스타일이 진하게 녹아 있습니다. 그는 3시간에 가까운 러닝타임 동안 매우 느리고 긴 호흡으로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유튜브 쇼츠와 인스타 릴스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연출은 관객들로 하여금 낯선 외계의 행성에 서서히 몰입하게 하는 장치가 됩니다. 장면 하나하나가 빠르게 전환되거나 허투루 지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아라키스의 환경과 생물은 더욱 소중하고 생동감 있게 다가옵니다. 폴이 프레멘으로서의 마지막 시험을 받는 순간에 샤이 훌루드를 마주하는 장면은 마치 내가 그 장소에 있는 듯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파트1과 비교했을 때, 파트2에는 보다 정교한 액션 시퀀스와 밀도 있는 서사, 블록버스터에 걸맞는 화려한 전투씬들이 등장합니다. 다수의 관람객들이 '전작에 비해 발전했다.'는 평가를 내리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파트1에 대해 단순히 느리다, 지루하다 등의 악평을 내렸던 분은 아마도 이번 작품 역시 불호에 가깝지 않을까 합니다.
한 편, 전작의 일부 악평을 의식해서인지는 몰라도, 파트2는 다소 급하게 진행되는 서사로 인해 캐릭터를 허무하게 희생시키는 면이 있습니다. 메인 빌런인 페이드 로타를 비롯한 하코넨 가문이 몰락하는 과정은 너무나 무력하기까지 합니다. 복수의 과정에 고난이 있어야 그 끝이 달콤할텐데, 복수가 너무 쉬우니 끝이 허무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흑백 시퀀스의 적절한 활용과 더불어 새로운 빌런인 '로타'를 매우 매력적으로 등장시켰음에도, 그를 특별한 활약이나 역할이 없이 허무하게 퇴장시키는 장면은 다소 김이 빠졌습니다. 대가문들을 통솔하며 최강의 군대인 사다우카를 보유한 황제 역시 파트2에서는 그저 스토리의 진행을 위한 희생양이 되고 말았습니다. 파트1에서 권모술수를 통해 하루 아침에 주인공의 대가문에 멸문지화를 일으켰던 황제는 고작 편지 한 통에 도발되어 몸소 적진에 행차해 스스로 자멸하고 맙니다. 최종 러닝타임이 2시간 46분이니, 추측컨대 많은 장면이 편집된 결과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4. 파트3를 기다리며
듄: 파트2는 전작을 감상한 팬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한 작품이었습니다. 리뷰에서 아쉬운 점들을 몇 가지 언급했지만 평가의 기준이 그만큼 높았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2024년의 '듄 시리즈'는 많은 팬들로부터 감히 '반지의 제왕'의 아성에 도전할 수도 있을거라는 찬사를 받고 있습니다. 반지의 제왕의 3편이 개봉한 시점으로부터 벌써 21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여지껏 그 어떤 판타지 시리즈도 그 영화를 넘어서기는 커녕 비할 정도의 완성도를 보여주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듄은 조금 다르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살짝 가져봅니다. 티모시 샬라메의 연기는 나날히 발전하는듯 보이며 듄:파트2의 뒷 이야기에는 원작의 탄탄한 설정과 광활한 세계관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파트3는 2027년 공개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이미 드니 빌뇌브는 시나리오 작업에 착수했다고 합니다. 부디 시리즈의 흥행을 통해 파트3 이후의 이야기 역시 계속 같은 감독에 의해 제작되었으면 합니다.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의 기준을 새로 썼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듄, 프로도가 샤이어에 돌아간 뒤 21년만에 느껴보는 설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