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모이는 장소가 도서관 뒷마당이 아닌 호수공원이다. 그곳에는 어떤 야생화들이 있을까 기대를 안고 갔는데 아뿔싸 정원의 도시 순천, 그것도 아름다운 호수공원에는 잡초가 없다. 그저 하~~ 감탄사가 나올 정도로 깨끗하고 갖가지 정원수와 푸른 잔디와 계절별 화초들로 정교하게 꾸며져 있다. 이 정도로 깨끗하고 아름다운 호수공원을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고하시는 많은 분들의 노고가 떠올라 한순간 숙연해졌다.
때마침 잔디에 물을 주기 위해 스프링클러에서는 시원한 물들이 뿜어져 나오고 나는 어딘가에 있을 관상용 화초가 아닌 작은 풀꽃을 찾기 위해 이곳저곳을 살펴보았다. 너무 더운 탓인지 닭의 장풀도 루트베키아도 지쳐있는 듯하고 미국자리공이 장난감 목걸이처럼 이제 막 열매를 맺으려 하고 있었다. 호수에는 연잎이 한가득 연꽃은 이미 져버렸을까? 구석으로 몰린듯한 어리연들이 무리 지어 노랗게 피어있었다.
와~~ 곱다. 오늘은 너를 그려야겠다. 멀리서 보는 어리연은 앙증맞게 귀여운 노란색 작은 꽃이었다. 구름 낀 날씨 때문일까 사진이 어둡게 나온다. 원하는 각도도 나오질 않는 위치다. 손에 닿는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어리연 한송이를 꺾었다. 벤치로 가져와 루페로 관찰하는데 아! 잘못 골랐다는 느낌! 꽃잎 한 장의 중심부가 새의 혓바닥처럼 뻗어있고 양쪽 가장자리에는 카네이션 꽃잎 같은 주름진 꽃잎이 다섯 장, 암술과 수술도 잎사귀 안쪽 솜털까지 이 주름과 음영을 어떻게 표현한다는 말인가
그래도 이 예쁜 꽃을 꺾어가며 선택했는데 최선을 다해 그려봐야지, 덥고 습한 날씨에 벤치에 앉아 스케치를 해보았다 제법 그럴싸해 보인다. 더위 탓일까? 어리연 쇼크 탓일까? 머리가 아파온다. 색칠은 집에 가서 해야지, 저녁 즈음 색칠하기를 시작한다. 이제껏 색깔을 테스트했던 집에 있는 수채화 종이와 스케치북의 종이가 다른 색이다. 그러니 이색인 거 같아! 해서 칠해보면 다른 색일 때가 있었던 거다. 왜 이게 이제야 보이는 걸까? 다 해놓고 보니 음영조절 한답시고 칠해놓은 색이 내가 보아도 이건 정말 아닌 것 같아, 다시 한 장 그린다. 이번에는 샤프펜슬로 그려보았다. 각도를 조절하고 균형감 있게 그려 첫 번째 그림보다는 훨씬 나아졌다 생각했는데 다 그리고 나니 스케치할 때 그린 연필자국이 너무 선명하다. 각도에 치중하다 보니 꽃잎이 너무 오동통해 그림이 아니라 도형 같아 보인다. 이것도 안 되겠다. 다시 한번 그리자!
이번에는 꽃잎이 뻗어나가는 각도도 잘 살피고 잎의 곡선도 자연스럽게 그리고 연필자국도 적절히 지웠다.
이 정도면 만족하자 그런데 어리연 정면샷만을 그리자니 허전하다. 처음 계획은 연잎 대신 진초록색 배경을 조금 칠하려 했는데 연잎까지 그렸다. "윽~ 그리지 말걸! 너 하는 짓이 그렇지 뭐!~" 비웃기나 하듯 동동 따로 떠다니 연잎, 갑자기 견갑골이 아파온다.
"달이나 그릴걸! 내 주제에 무슨 어리연이야!"
결국 마음을 고쳐먹었다. 어리연은 먼 훗날 고수가 되면 도전해 보는 걸로... 언젠가 쓰임이 있겠지, 산책하다 사진 찍어둔 동천 주변에서 보았던 하늘말나리를 그려본다. 덜거덕덜거덕 마음의 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