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6월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늦은 밤... 간식이 필요했던 아들들의 성화에 동네 빵가게에 가려고 나서는데 길게 늘어뜨린 긴털에는 더러움이 가득가득 홀쭉한 새끼 강아지가 뒷다리를 절뚝거리며 나를 계속 따라왔습니다. 경비실에 물어보니 며칠 전부터 우리 아파트에 돌아다닌다고... 하룻밤 재우고 배불리 먹여 내보내야지 했던 까만 강아지가 16년을 함께 살다 며칠 전 강아지 별로 돌아갔습니다.
어릴 적 여러 강아지를 키웠지만 한 번도 죽음을 지켜보지 않은 터라 한두 달 전부터 한 끼 밥 먹는 양이 줄고 움직임도 줄고 생전 실수하지 않던 오줌도 아무 데나 누고 그렇지만 물은 잘 마시고 초롱초롱 눈은 맑고 기분도 좋아 보였습니다. 금요일부터는 삼일째가 되도록 밥을 먹지도 않고 평소 좋아하던 육포나 삶은 닭가슴살을 가늘게 찢어주면 먹고 토하고... 장염인가? 주말 지내고 월요일 병원 가는데 몹시 힘들어하더니 병원도착해서는 발작을 일으킵니다. 고통에 몸부림치며 혀를 깨물었는지 입술에 피가 흐르고 헉헉거리는 숨소리가 의식이 없는 듯합니다. 여러 검사를 하는데 만성 신부전증... 이 상태면 되돌릴 수 없다고 진정제 주사 놓는 순간에라도 숨이 멎을 수 있다고 데리고 집에 가실 것인지 안락사할 것인지 집에 가서 생각해 보고 자기들 퇴근 전까지 알려달라고 진정제 때문인지 발작은 멈추었지만 덜덜덜 경련은 계속되고 병원 문을 나와 집으로 가려다가 의식도 없는 고통 속에 시간을 늘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혹여나 없는 동안 죽어가며 버려졌다 생각할까 싶어 다시 병원으로 가서 내 품에 안겨있을 때 안락사를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마취를 하고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심정지 주사를 놓고 고양이와 개 화장시키는 곳에 가서 화장을 했습니다
땅떼기가 있으면 나무를 한그루 심고 묻어주고 싶었는데... 몸무게가 6kg이었던 까미는 화장비 25만 원, 바구니에 예쁜 깔개와 조화롤 된 장식의 관은 이십만 원, 도자기 유골함은 십만 원, 모양이 새겨진 제법 고급스러운 오동나무 유골함은 이십만 원... 장례식장의 상술처럼 느껴지고 나일론 솜이 까미의 뼈가루에 녹아 들러붙지 않을까 이 세상 유해한 것들 없이 그냥 강아지별로 돌아가기를 바랐던 나는 그냥 아무것도 없이 까미를 삼베 보자기에 덮어 화장하고 무료로 제공되는 작은 나무상자 유골함에 담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화장장에서 준 작은 사진 액자를 세우고 뒤에 유골함을 놓고 나를 위로하기 위해 내가 평소 즐겨하던 향을 피웠습니다. 6월까지도 나랑 산에도 다녔는데... 유기견으로 다시 버려질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을까 저지레 한번 없이... 이웃집 가족들의 발자국소리도 구별하여 짖지도 않고 우리 집에 오던 날부터 용변 보는 장소도 가리고 까만 털에 엄마! 이아이는 정말 쥐처럼 생긴 거 같아! 할 정도로 못생겼다는 말을 듣던 까미... 다른 말에는 별 반응이 없는데 "우리 까미가 세상에서 최고로 예쁘지 그렇지! " 하면 그 말에는 반응하듯 내게 뽀뽀해주던 녀석.
오래전, 친구부부가 외롭고 힘들었던 영국 유학시절 자기들을 챙겨주셨던 영국 할머니의 1주기 추모식에 참석하기 위해 영국여행을 가는데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수목장 했다 해서 우리나라 광릉수목원처럼 (좋은 터는 그때 당시 5-600만 원 정도의 비용을 지불하는) 공원이나 수목원 같은 곳에 묻히신 줄 알았는데 그냥 들판에 나무 한그루... 그곳에서 친구부부는 신발을 벗고 큰절을 하며 늦게 와 죄송하다며 오열을 했고 다음날은 할머니를 추모하기 위해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이들과 함께 할머니의 유족들이 시청에 기증한 커다란 피크닉 테이블에 모여 각자 준비해 온 음식을 펼쳐놓고 그들의 가족들과 함께 공놀이도 하고 산책도 하고 사진도 찍고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오후에 헤어졌습니다.
영국은 하천이나 공원 주변에 벤치들이 있는데 사랑하는 OO를 기억하며... 그분의 출생과 사망일이 적힌 작은 카드 정도의 명패가 벤치 등받이윗부분에 붙여져 있는 걸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나와 상관없는 이름도 모르는 분이지만 그 의자에 앉을 때는 얼마나 그들을 사랑했을까 떠올리며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우리의 장례문화도 이렇게 바뀌어 가면 좋겠습니다. 내가 만약 관리사무소에 전화를 걸어 우리 아파트에 벤치를 기증하고 거기에 까미나루의 명패를 붙이겠다 하면 소름 돋게 굳이 개 죽은걸 여기에 붙여야겠느냐고 당장 떼라고 다들 한 마디씩 하시겠지요?.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도 개 한 마리 죽은 걸 가지고 글까지 올리네! 하실지도.... 하지만 제게 까미는 16년을 함께 지낸 진실한 친구이자 가족이었습니다.
이삼일전 싱크대에서 뭔가를 꺼내다가 발견한 까미가 좋아하던 육포 봉지... 비싸다고 하루에 두세 조각 이상 주지 않았는데 이 녀석 이것도 못 먹고 갔네 생각하며 울컥~ 작은 종지에 육포와 츄르, 작은 치즈를 담아 향꽂이 앞에 두었습니다. 맛있게 먹고 가~!! 제사라는 게 결국 남겨진 유족들이 스스로를 위로하고자 하는 행위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말입니다. 다음날 새벽 까미가 생글생글 미소 띤 얼굴로 꼬리를 흔들며 안방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습니다. 마음이 편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