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시간 반을 비행기 타고 스페인으로 날아간 날 오후 우리는 프라도 미술관으로 향했다.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에 있는 프라도 미술관은 스페인 왕실의 수집품인 12~19세기의 회화 8,000여 점을 소장한 세계 3대 미술관 중의 하나이다. 방대한 작품과 전시 공간을 보호하기 위해 입장 시 관람객은 공항 검색 수준의 검문대를 통과해야 한다. 가져간 백팩을 바구니에 담아 보관하고도 엑스레이 검문대를 통과하며 주머니 속에 있는 작품을 훼손할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작은 물건들까지도 다 꺼내 놓아야 입장이 가능하다. 볼펜도 내놓으라고 한다. 목에 건 카메라가 있으니 기꺼이 내놓는다. 이제 들어가자 돌아서려는데 영어로 된 안내문이 눈에 들어온다. '전시실 내부 작품 촬영 금지'
미술관 안내 데스크 로비
스페인이 자랑하는 3대 거장 벨라스케스, 고야, 엘그레코의 작품들을 비롯한 세계의 유명한 화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으나 사진을 찍을 수 없다. 위 사진은 사진촬영이 가능한 안내 데스크 로비이다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며 전시된 작품들을 둘러보다 2층의 어느 조각상 앞에 이르렀을 때 가벼운 발걸음 소리들이 들려 돌아보았더니 예닐곱 살 되어 보이는 아이들 이십여 명이 소리 없이 다가와 약속이라도 한 듯 조각상 앞에 모두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는다.
분명 그들은 스페인어로 이야기하고 있는데 스페인어를 전혀 모르는 내 귀에 한국어처럼 들리는 마술이 일어난다.
"이 조각상의 남자와 여자는 어떤 사이일까?"
" 우리도 이 사람들처럼 포즈를 취해 볼 수 있을까?"
"우리가 이 작품을 만든 작가라면 이 조각상의 제목을 뭐라고 지어볼 수 있을까? "
담임선생님인지 큐레이터인지 알 수 없는 남자분이 묻자 아이들은 서로 자기가 해보겠다는 듯이 소리 없이 손을 높이 들거나 흔들어 알리더니 작은 목소리로 자기의 생각을 이야기한다. 똑같은 포즈를 취해 볼 수 있겠느냐는 선생님의 질문에 지목된 아이들이 앞으로 나와 자세를 잡는 동안 앉아 있는 아이들도 제각각의 포즈를 취한다.
반사적으로 카메라를 들고 그들의 모습을 찍었다. 수 십 명의 어린아이들이 미술관 내에서 발소리가 크게 나지 않도록 이동하는 모습, 누가 지시하지 않았음에도 작품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동안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객들의 시선을 차단하지 않도록 모두 바닥에 앉는 모습, 첫 줄에 앉은 아이들은 엉덩이를 바닥에 대고 앉고 두 번째 줄은 무릎을 꿇고 세 번째 줄은 무릎을 세워 앉는 모습이 신기하기만 하다. 작품에 대해 이야기 나눌 때도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이 이야기하는 모습, 스페인의 모든 아이들이 모두 다 이렇지는 않겠지만 감동적인 모습이었다. 국제적인 수준의 문화유산이 많은 탓일까, 어린아이들의 몸에 밴 듯한 미술관에서의 매너 또한 국제적인 수준이다. 어린아이들이 문화재를 대하는 의식은 부모들의 의식을 모델링하였을 것이다. 또한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도 아닐 것이다.
"아이니까 그럴 수 있죠" 무조건 이해해 주지 말고, " 하지 말라고 해도 말을 안 들어요" 포기하지 말자. 어린아이들의 교육은 콩나물에 물을 주면 한 순간 그대로 빠져나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반복되는 부드러운 물결이 콩을 쑥쑥 자라게 하는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