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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굴

by Nora Vail


어느 날 아침, 도라는 결국 토끼굴 앞에 섰다. 흰 토끼와 모자 장수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모자 장수가 입을 열었다. "아침부터 진짜 짜증 나게." 도라는 흰 토끼의 시계로 시간을 확인했다. 약속 시간이 이미 한참 지나 있었다.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지금 당장 다과회 준비를 해야 한단 말이야." 모자 장수가 투덜거렸다. 도라는 화풀이로 모자 장수의 모자를 뺏어 머리에 푹 눌러썼다.


도라의 모자를 벗기기 위해 광기 어린 바람이 그를 향해 거세게 불었다. 꽃들은 조용히 숨을 죽였다. 모자는 펼쳐진 종이책처럼 우아하게 펄럭였다. 도라는 고군분투하며 거대한 존재들을 향해 잉크가 뚝뚝 떨어지는 칼을 단호하게 휘둘렀다. 거대한 존재들은 상식이 통하지 않았고, 그의 손가락과 발가락, 팔다리와 혓바닥이 피를 튀기며 잔인하게 갈려나갔다. 그럼에도 도라의 몸에선 도마뱀의 꼬리처럼 신체 부위가 빠르게 재생됐다. 그건 하트 여왕의 폭정에 놀란 도마뱀이 도망치며 도라를 깨물며 생긴 마법이었다. 도라는 다시 한번 칼을 고쳐 잡았다.



장난을 치던 하트 병사들의 시선이 하나둘씩 그에게 모이기 시작했다. 공작부인들도 돼지에게 아기를 맡긴 다음 따끈따끈한 애플파이를 안고 달려왔다. 긴장한 도라는 그만 칼을 잘못 휘두르는 치명적인 실수를 했다. 거대한 존재들은 도라를 깔깔 비웃으며 공작부인들의 입에 애플파이를 넣어줬다. 공작부인들은 꽃들처럼 조신하지 못해서 애플파이가 입안에 들어오는 대로 천박하게 와그작와그작 씹어댔다.


벌어진 입으로 파이 조각들이 튀어나와 화살처럼 도라를 향해 날아왔다. 도라는 호되게 애플파이를 맞으며 원더랜드에서 자신의 편을 찾는 게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마다 작은 역할이라도 맡기 위해 정교하게 미쳐있는 원더랜드에서, 도라는 그저 원더랜드에 떨어진, 조금 특이한 이방인일 뿐이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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