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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운 당신

'친애하는 나의 20대 며느리' 번외편

by 블루랜턴

아들 부부가 분가한 후 나의 일과는 한껏 단출해졌다.


소박한 식사와 가벼운 스트레칭, 꾸준한 산책과 독서, 그리고 글쓰기에 집중하며 하루를 온전히 자유롭게 보냈는데, 그것은 오래전부터 마음속으로 그리던 내 삶의 모습이었다.


1분 1초를 아끼며 음미하던 나의 행복한 날들은 그러나, 2주를 넘기고 끝이 났다.


지난 7월 초,

예정대로라면 브런치 연재북 '친애하는 나의 20대 며느리'의 완결을 두어 달 앞두었을 쯤이다.


수개월 전 의사는 몇 가지 해당요인을 들며 남편에게 폐검사를 받아볼 것을 권했고, CT 스캔과 조직검사로 진행되더니, 급기야 폐암 4기 진단이 내려졌다. 다른 쪽 폐와 뼈로 전이된 상태라고 했다.


청천벽력 같은 결과에 밖으로 뛰쳐나와 한참을 혼자 울었다. 평소 제대로 챙겨주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이 컸다. 처음에는 그랬다. 그러다가,


내 말을 언제나 귓등으로 흘려버리던 남편이 이제는 늙은 나를 이렇게 고생을 시키는구나 하는 생각에 미운 마음도 들다가,


평소 건강한 식습관을 경시하던 남편의 오만함이 원망스럽다가,


그래도 암은 아니지, 이건 아니야 하다가,


글쓰기를 당분간 못하겠구나, 나는 또다시 뒤로 밀리는구나 하는 마음에 서럽기도 했다.


그러다가, 그깟 것이 뭐가 중요해 남편을 돌봐야지 하며 숨 한 모금 꿀꺽 목구멍으로 삼키고는 마음을 다잡았다.


남편과 함께 한 세월이 40년이 되어간다.

중학생 때부터 담배를 피웠다고 하니 그는 자그마치 50년이 넘는 담배력을 갖고 있다.

돈을 아낀다며 싸구려 커피를 마시고 독한 저급 담배만 피워대는 남편은 정작 돈도 모으지 못했고 몸은 고장 났다.


바른생활과는 거리가 먼 사람.

배려심이라고는 1도 없는 사람.

사랑을 받지 못해 사랑을 할 줄도 모르는 사람.


항암치료를 앞두고 마지막으로 아들 며느리와 함께 성당에 간 날, 미사가 끝난 후 며느리가 신부님께 다가가 특별기도를 부탁했다. 나와 남편, 그리고 아들과 며느리가 신부님을 마주 보며 둘러섰고, 신부님이 남편의 이마와 양 손바닥에 동그라미를 그리며 향유를 발라주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마음을 다해 간절하게 기도했다.


덤덤하던 남편이 그간 참았던 눈물을 흘리며 입 속으로 운다. 코를 훌쩍이며 흐르는 눈물을 연신 닦아내는데, 며느리도 이내 같이 눈물을 흘린다.

아! 불쌍한 이 남자를 어쩌면 좋은가!




지금은 3차 항암치료를 마친 상태다.

패스트푸드를 비롯해 모든 가공식품을 끊었고, 단백질과 야채 위주로 식단을 바꿨다. 평소 게을리하던 운동도 열심히 한다.


마지막 항암이 10월 초에 있을 예정이고, 그다음 달에는 전신 CT 스캔이 있다. 이후의 최대 관건은 재발하지 않는 것이지만, 그의 병은 악명만큼이나 재발률이 높다.


남편의 감정상태는 어느 날은 순하게 평온하다가,

어느 날은 초조하고,

어느 날은 조기 가시처럼 까칠하다.


관 뚜껑 덮기 전 날까지 담배를 피우며 살겠노라던 그는 항암치료 시작 일주일 전에 금연을 시작했다. 오늘이 금연 65일째다. 이제라도 끊었으니 다행이려나?


당신 정말, 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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