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알게 모르게 업무적으로 의지하던 나의 사수가 갑작스럽게 퇴사했다. 사수는 나보다 2년 선배였으나 새로운 인생항로를 개척하겠다며 나를 두고 홀연히 떠났다.
2인 1조로 해야 할 업무는 정해져 있었고, 하필이면 1년 중 가장 중요한 시기였다. 업무인수를 받기는 했지만, 당장은 1인 2역을해내야만 했다. 갑자기 충원할만한 사람을 찾기에는 다른 파트도 모두 같은 입장이어서 어려웠다.
바쁘게 주어진일을 소화해내고 있을 때 하필 팀장도 교체되었다. 신임팀장이 업무파악을 하는 시기라 어지간한 의사결정은 나 스스로 했다.
그동안 의사결정을 사수에게 의지하던 나는 스스로 모든 일과 의사결정을 해야만 했다. 적응하고 나니 할만했다.
나의일은 사람의 숫자보다는 창의력과 추진력이 필요한 일이다. 어쩔 수 없이 둘이 하던 일을 혼자서 95% 정도 진행했을 때 신임팀장과 최종의사결정에 갈등이 생겼다. '사수와 팀장의 공백기'를 무사히 넘기는 것이 목표였던 나에게 팀장의 갑작스러운 제동은 청천벽력 같았다. 그동안의 공든 탑이 무너질 위기에 봉착했다.
위기를 타개해야만 했다. 나는 의사결정에 영향을 끼칠만한 다른 분에게 도움을 요청해서 간신히 내 의견을 관철시켰다. 자기주장이 강한 팀장은 이일로 나를 못마땅해했다. 한마디로 찍힌 것이다. 이제는 나의 의사결정에 대한 결과만이 나에게 면죄부를 줄 수 있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어정쩡한 시간이 힘겹게 지나고 나의 의사결정이 생각보다 크게 성공했음이 밝혀졌다. 운이 좋았는지 해외마켓에서 좋은 반응과 기대이상의 매출로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관련자들이 성과급과 함께 특진을 했다.
나 역시도 회사로부터 충분한 보상을 받았다.
시간이 지나서 보니 물질적인 보상보다 이 사건을 계기로 '나의일에 대하여 자신감을 얻은 것이 가장 큰 보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일을 겪은 어느 날 책을 일다가 문득 '위기는 곧 기회다'라는 문구를 발견했다. 위기를 만나면 누구나 위축되기 마련이다. 나도 그렇다. 그러나 절박함은 위기라는 벽을 뛰어넘는다. 한 번 두 번 벽을 넘다 보면 어느덧 그만큼 성장한 자신을 발견한다. 나는 이 사건을 계기로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것은 절박감이고 온전히 자신에게 달려있다"라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누구나 일을 하다 보면 위기에 봉착한다. 대부분은 외부의 압력이나 환경에 의해서다. 그런 상황에서는 우선 전후상황을 파악해 보고 특별한 대책이 없다면 주어진 일을 진행하면서 계속 방법을 찾다 보면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정답이 특별히 없는 애매한 분야의 일에서는 더 그럴 것이다. 그러나 그런 분야일수록 일단 한번 인정을 받으면 주변의 압박으로부터 편해진다.
나는 어릴 때부터 하고 싶은 일은 몰래라도 했다. 그렇다고 그 일들이 나쁜 일들만은 아니었다. 단지 부모님이 걱정할 수도 있는 일들도 있었던 것도 같다. 나는 둘째 아들이다. 부모님은 대부분 한국의 부모가 그랬듯 장손에게 모든 것을 집중했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형이 혼나거나 칭찬받는 것을 옆에서 보면서 내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했다. 어쩌면 이런 나의 주어진 환경이 스스로 의사결정하는 습관을 만들어준 것 같다.
그러나 문제는, 부모님이 알게 되면 크게 혼날 일인데 내가 꼭 하고 싶은 일이었다. 지나고 보니 부모님 몰래 일을 저질러놓고 결과에 대하여 스스로 후회한 일들이 더 많았다. 그렇다고 반드시 교과서적으로만 살 수는 없었다.
문화심리학자인 김정운작가는 그의 저서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에서 "'한 일에 대한 후회'는 오래가지 않는다. 그러나 '하지 않은 일에 대한 후회'는 쉽게 정당화되지 않는다."라고 했다. 실제로 그는 그 말을 다양한 방법으로 실천하는 것 같다.
나도 그런 편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새로운 시도를 하기 전에 그 일에 대한 결과를 온전히 책임질 수 있는가'이다.
요즘은 나이가 점점 들어서인지 나 스스로 새로운 시도를 잘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불씨는 여전히 살아있음을 몸으로 느낀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도 그런 일 중의 하나일 것'이라는 스스로의 위안으로 글을 정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