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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경 Feb 19. 2024

그럴듯한 어른이 되고 싶었는데 이젠 못하겠어요

 이젠 회사에서 말도 잘 안 합니다. 누가 말을 걸면 ‘네…?’ 아니면  ‘저요…?’ 같은 말만 죽을 것 같은 쇳소리로 나옵니다. 목소리에 힘을 줄 기력도 없어요.


 얼마 전엔 자려고 침대에 누웠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오늘 터진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윗선도 언제 잘릴지 모르는 파리 목숨이라 어떻게든 잘 얼버무릴 방안을 생각해 보래요. 그런 건 실무자가 하는 거니까 제가 잘 해보래요.

 그리고 내일의 일도 또 생겨날 것인데, 그것도 원래 일정대로 해내지 못하면 제가 일의 우선순위를 모르고 대충 일한 탓이 될 것입니다.

 밑에서(사실 나와 연봉은 별 차이도 나지 않는 사람들) 실수한 것이 있다면 걸러내지 못한 제 탓 이고, 제 위에는 그런 거나 신경 쓰는 사람이 아닌 더 위대하신 분들만 있으므로 모든 것은 제 탓입니다.

사실 대부분의 문제는 원칙대로만 하면 생기지 않았을 거었지만 저에게는 아무 결정권도 없고 그냥 시키는 대로 하고서 잘못된 후의 책임만이 있습니다.


 눈물이 콸콸 쏟아지고 가슴이 쿵쿵 뛰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울다가 스르륵 잠이 들고, 작은 소리에도 놀라 깨버려서 다시 심장에 손을 얹고 눈물 흘리기를 반복하다 보니 아침 알람이 울었습니다.


 저도 잘하고 싶었어요. 그럴듯한 어른이 되고 싶었습니다.

 남들처럼 한 사람분을 해내고 싶었습니다.

 회사에서는 내 일을 잘하면서 돈을 벌고, 몇 년 안에는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양쪽 다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았어요.

 20대 초반 까지는 특별한 사람이고 싶었는데 30대에 접어드니 남들 다 하는 것을 성공하고 싶어 졌습니다.


 하지만 회사는 망해가고, 몸은 지치고, 정신은 스트레스로 얼룩지고.

 그 끝에 예민하고, 우울하고, 그 무엇도 해낼 수 없을 것만 같은, 그 어디서도 필요로 하지 않을 것만 같은 나만 남았습니다.


 ‘조금만 더 바쁘면, 좀 정리되면 괜찮아질 거야… 추가된 업무가 익숙지 않아서 그래. 적응되면 또 해낼 수 있을 거야. 힘든 건 항상 언젠가는 지나갔으니까.’

그렇게 어떻게든 붙잡고 있기를 몇 달째.


 함께 미래를 보고 싶었던,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던 사람은 지쳐서 떠나갔고, 버티면 지나갈 줄 알았던 고통들은 여전히 함께하고 있습니다.

 지치고 피곤해요. 어른은 다들 이렇게 버티면서 사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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