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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경 Feb 19. 2024

얼마나 힘들어야 힘들다고 말해도 돼요?

 벌써 몇 년 전, 입원과 수술로 무력감에 빠져 있던 때에 집 근처 성당을 찾은 일이 있습니다. 저는 성질이 신앙과 거리가 먼 사람이라 길게 가지는 못했지만 아직도 기억에 남는 것은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견딜 수 있는 만큼의 시련만을 주신다”는 말.

얼마 전 화재로 성당 건물이 불타 버려 식당으로 사용하던 작은 건물에 보여 미사를 보던 중 신부님 께서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우리는 이겨낼 수 있다고.


 그러나 요즘은 생각합니다. 과연 어디까지가 견딜 수 있는 시련일까. 지금 나의 고통은 견딜 수 있는 만큼을 넘어선 것일까. 아니면 견딜 수 있는 것인데 내가 약해빠져서 이 모양인 것일까.


 힘들다고 말하면, 너만 힘든 게 아니라 다들 힘들다고 합니다. 도저히 견딜 수 없다고 말하면, 그 정도는 힘든 것도 아니라고 참아야 한다고 해요.

 사실은 다 내던지고 집에 가고 싶습니다. 그냥 침대에서 점심때까지 안 일어나고 싶어요. 근데 그래도 되는지 모르겠어서 퇴사하지 못하고 참고 있었습니다.

 대책 없이 백수가 되는 건 어른의 삶에 실패하는 일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얼마나 힘들어야 힘들다고 말해도 되는 걸까. 힘들다는 것을 수치로 나타내서 일정치가 넘으면 ‘포기해도 됩니다!’라고 판정해 주는 전문가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가능하면 나의 힘듦에 대해 정밀감정서도 써서 발급해 주었으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빨간 인주로 도장도 쾅쾅 찍어서요.


 여러 사람들에게 요즘 얼마나 힘든 지를 설문조사라도 해서 그 평균치를 내면 힘든 정도의 기준치로 삼을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조사를 해야 신빙성 있는 결과를 얻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힘들다고 포기하면 패배자가 될까. 혹은 낙오자가 될까. 얼마나 힘들어야 나의 포기를 합리화해 줄까. 지금은 일단 잠을 좀 자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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