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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wBreasts Jul 12. 2024

6. 걱정하지 않은 일은 반드시 일어난다.

part1-암은 내 가슴에...

걱정하지 않은 일은 반드시 일어난다. 중요한 일은 걱정을 끊임없이 해라!



“우리가 걱정하는 일들의 70%는 일어나지 않는다.” 

라는 이 말을 나는 언제 어디서 봤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는 않는다. 아마 어떤 유명한 사람이 했던 말이거나, 어느 책에서 봤을지도 모르겠지만 이 말의 다른 의미는 우리가 걱정하지 않는 일들의 30%는 일어난다는 말이 아닐까?라고 개인적으로 해석을 했었다.      


 그래서, 중요한 일이 생기면 괜한 걱정을 일부러 더 열심히 기를 쓰고 했다. 그래야만 나의 간절한 마음이 하늘에 닿아 그 모든 걱정이 그저 괜한 걱정으로 전환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나만의 미신 같은 것이었다. 만약 그렇지 않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야.”라거나 “쓸데없는 걱정 하지 마.”라고 작은 일을 우습게 보거나 무시를 해 버리면 그 일들이 종종 화가 되어 돌아오기도 했기 때문이다.     

 

 내가 어릴 때 엄마가 폐결핵을 앓은 적이 있었다. 당시는 폐결핵은 사람이 죽을 수도 있는 병이었다. 엄마가 병에 걸린 이유는 할아버지와 아빠가 하시던 사업이 부도가 나면서 집안이 크게 흔들렸었고 거기서 엄마는 큰 며느리로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했다. 내가 워낙 어릴 때라 드문드문 기억이 나는데 남동생도 함께 걸려서 동생과 엄마가 요양병원으로 가게 된 기간이 있었다. 정확한 이유를 이해도 할 수 없는 나이였고, 엄마가 안 계셨으므로 나도 이모 댁이나 고모 댁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들이 많았다. 엄마와는 가끔씩 전화 통화를 했지만 나는 나를 데려가지 않은 엄마가 너무 보고 싶었고 그것을 표현하지도 못한 채 혹시 엄마를 못 보게 될까 봐 많은 걱정을 했다.     

 

 엄마는 병이 완쾌되어 동생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으나 나는 늘 엄마가 아플 수 있다는 생각을 해 왔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어릴 적 트라우마가 남아서 혹시 엄마가 갑자기 사라지는 일이 생길까 봐 엄마가 외출이라도 할라치면 조심히 운전하라며 엄마의 안전을 항상 걱정했었다. 하지만, 오랜 시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나는 원하던 직장으로 취업을 했고 이제 앞으로 우리 가족에게 남은 일은 평범하게 일상을 살아가는 것뿐이라고만 믿었다. 

    

 엄마가 갑자기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은 어릴 적 트라우마에서 시작된 망상이고, 이제 내 인생에서 그런 일은 없을 것이고 나의 엄마는 분명 머리가 백발이 될 때까지 내 옆에서 언제나 있을 것이라고, 그러니 쓸데없는 걱정은 그만하자고 모든 걱정을 내려놨다. 그 후 2년도 되지 않아서, 내가 나의 방종한 일상과 평범한 일상을 즐기고 있던 틈을 타 결국은 엄마에게 예상하지도 못했던 시한부 선고가 내려졌다.     

 

 그때도 나는 생각했다. 내가 내 운명 앞에서 교만하게 내게 그런 일은 더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걱정을 놓아 버리고 너무 즐겁게 살아서 내 뒤통수를 친 것이라고. 결국 그 일은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었던 엄마를 하늘로 데려가 버렸고 나는 그 후에는 말도 안 되는 작은 일에도 과한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로컬 병원에서 조직 검사를 받고도 이상하게 걱정이 되지가 않았다. 작은 일에도 항상 과하게 걱정하던 내가 그렇게 걱정을 안 하는 것은 스스로가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내가 의미를 부여했던, 엄마 무덤 위에 가득 피었던 제비꽃에 의미를 둔 탓이었을까? 남은 일은 정말 좋은 일뿐이라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들었다.      


 암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나의 상상력과 과도한 스토리텔링으로 만들어낸, 한 낮 자연 현상에 불과한 우연한 제비꽃 씨앗이 봄바람에 날려 단순히 어떤 누군가의 무덤 위에 뿌려져 꽃을 피웠을 뿐인데 그것을 보고 때마침 엄마의 20주기에 힘든 나에게 엄마가 보내는 메시지라고 생각한 내가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왜 나는 종종 이렇게 별 의미 없는 일에 나만의 의미를 부여하고 실망을 할까.      


 결국은 이렇게 걱정하지 않았다가 걱정하지 않은 일이 화가 되어 내게 떡하니 안겼다. 완두콩만 한 알갱이가 잡혔을 때부터 조직 검사를 할 때까지 나는 전전긍긍하며 대 환장 파티 지경의 걱정을 했었어야 한다. 식음이라도 전폐하고 내가 암이면 어쩌지라고 엉엉 울면서 시간을 보냈더라면 이 일은 암이 아닌 것으로 바꿀 수 있었을까?      


 나는 이번에도 나의 운명 앞에서 교만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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