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쉐어하우스를 나오기로 하고 바로 들어가기로 한 쉐어하우스는 한 가족이 살고 있는 집이었다.
한국인 언니와 어렸을 때 한국에서 이민을 온 지금은 호주인은 남편과 어린 아이가 있는 집이었다.
언니는 임신중으로 둘째가 태어날 때까지 비어있는 방을 쉐어로 내어 놓은 것이었다.
언니도 워홀로 호주에 왔다가 그 동네에 있던 한인교회에서 지금의 남편분을 만났다고 했다.
남편분은 아주 어렸을 때 가족이 모두 호주로 이민을 와 한국말이 조금은 서투신 분이었다.
이 전 쉐어하우스와 분위기가 완전히 정반대여서였을까?
나는 이 집이 참으로 마음에 들었다.
이제 막 5살이 되었던 꼬마아이는 나를 '이오' (이모 발음이 서툴렀음) 라고 부르며 잘 따랐으며 꼬마공주님의 영어수준이 나와 아주 잘 맞았기도 했다.
욕실과 화장실을 공동으로 사용해야했던 전 쉐어하우스와는 달리, 두분은 안방 화장실이 따로 있어 나 혼자 욕실을 사용하는 것도 매우 마음에 들었다.
점심은 어차피 알바하러 가서 먹기 때문에 저녁만 해결하면 되었던 나에게 그들은 나와 함께 저녁식사 시간을 가졌다.
내가 함께 하지 못하면 그들이 먹었던 음식을 조금 덜어놨다가 먹으라고 놔두기까지 하는 매우 따뜻한 분들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며, 내가 알아서 먹는다고 해도 항상 그렇게 내 음식을 따로 마련해 놓으셨다.
"어차피 우리 먹는 거 조금 덜어놓는 것 뿐인데 뭘" 이라며..
그런 작은 배려가 나는 너무 감사해서 까페에서 남은 빵이나 케잌들이 있으면 한아름 가져다가 드렸다.
한번도 사장님이 남은 베이커리들을 가지고 가라고 해도 한두개만 가져올 뿐 대부분은 빈손으로 돌아왔던 나였지만, 그 집에 살고 나서 부터는 종류별로 다 가지고 왔다.
"이솜!"
"어! 언니!"
"우리 여기 마트왔다가, 커피 마시고 가려구"
"아 정말요? 뭐로 드릴까요? 계산은 됐어요. 제가 살게요"
"무슨 소리야!"
"에이, 이 정도는 제가 낼 수 있어요. 괜찮아요"
"다음부터는 여기 안와야겠다"
"헤헤. 잠시 기다리면 메뉴 드릴게요"
언니도 나보다 훨씬 전에 워홀을 와서 그런지 고생을 많이 했다고 했다.
그래서 더더욱 내가 더 마음에 쓰였을지도 모른다.
내가 방에 혼자 있으면 꼬마아이는 어김없이 내 방문 앞을 기웃거렸다.
"이오.."
"왜? 놀아줄까?"
끄덕.
귀여운 꼬마아이의 놀이친구가 되는 것도 꽤나 즐거운 일이었다.
호주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이 이상하게 나에게도 즐거웠다.
어린이 영어교실에 와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하고 말이다.
그렇게 그 곳에 산지 4개월이 지날 때였다.
나는 그 곳을 떠날 때가 되었다.
언니의 출산일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이솜아, 너무 아쉽다. 딸도 너 잘 따르고 좋아했는데.."
"아니에요. 둘째 건강하게 잘 나아요"
"그래도 가끔씩 연락해. 한국 돌아가기 전에 꼭 한번 연락해. 알았지?"
"네. 그동안 너무 고마웠어요"
"아냐. 딸이랑 놀아줘서 내가 오히려 더 수월했지. 내가 고마워"
그렇게 그들과 좋은 추억을 가득 안고 나는 세번째 쉐어하우스로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