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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는 김에 뉴질랜드 Apr 03. 2024

아리랑을 외치다

그동안은 코로나로 열지 않았던 큰 학교 행사들이 하나둘씩 열리고 있다. 뉴질랜드는 학교마다 행사가 다르다. 예를 들면 텀 1에는 A 학교는 연극 공연을 하고, B 학교는 댄스파티를 연다. 이외에도 매 학기마다 크고 작은 행사들이 있다. 뉴질랜드는 4학기 수업을 진행하는데 한 학기당 10주 수업을 하고, 방학은 2주이다.

학교의 행사에 있어 뉴질랜드와 우리나라는 결이 다르다. 우리나라는 지자체에 따라 해당 시 전체 학교들이 비슷한 시기에 동일한 행사를 진행한다. 가령 운동회 같은 외부인들이 참여하는 (?) 행사들 말이다. 


이번에 나의 딸이 다니는 학교에서는 "컬처 데이"라는 큰 행사가 열렸다. 몇 년 만에 열리는 행사라고 했다. 나라별로 공연을 신청하고, 음식도 신청한다. 큰 유학원을 통해 뉴질랜드에 온 사람들은 같은 유학원들끼리 행사 공연을 준비하고 음식을 따로 준비하곤 한다. 올해는 유학원의 사이즈 상관없이 함께 진행하게 되었다. 이번에 나의 딸은 한복을 입고 아리랑을 부르고, 퀸카와 강남스타일에 맞춰 춤을 추는 공연을 하였다. 음식은 나를 포함하여 한국인 유학생 엄마 3명이 조리를 하였고, 나머지 2명은 음식 재료 구매 역할을 했다.  대한민국 팀은 간단하게 떡 치킨 강정으로 100인 분정도 준비했다. 공연 신청을 한 아이들은 2주 전부터 방과 후에 모여 연습을 하였다. 무대 위에 서는 대열을 맞추고, 무대 이동 동선도 맞추며 열심히 준비하였다. 


<자랑스러운 나의 조국. 나의 나라. 나의 뿌리.>


외국에 살다 보니 영주권 없는 자의 서러움, 집 없는 자의 서러움, 영어 미숙자의 서러움을 느낀다.  뉴질랜드는 복지가 잘 되어 있는 국가 중 하나이다. 퇴직 후 연금을 받아 생활하는 작은 아버지는 지금이 세상 살기 좋다고 말씀하신다. 퇴직 후 연금을 빠방 하게 받으려면 자격이 필요하다. 그것은 바로 연봉 구간이다. 나의 연봉이 높은 구간에 있어야 빠방 하게 연금을 받을 수 있다. 그 말은 그동안 세금으로 많이 떼갔단 말이다.  아쉬운 부분도 있다. 풍요 속 빈곤. 평화롭고 자유로운 아름다운 타우랑가에 살고 있고, 친절한 사람들이 많은 뉴질랜드에서 살고 있지만 가끔은 내 나라 언어로 마음껏 주절주절거리고 싶을 때가 있다. 사방이 중국어가 들리는 오클랜드 같은 곳 말고 말이다. 그냥 내 나라에서 커피 한잔 딱 때리면서 실컷 떠들어 대고 싶은 그런 날 말이다. 친절하고 평화롭고 아름다운 비치가 있고 마당 넓은 집에서 벌레들과 평화롭게 살고 있지만 정서적으로 빈곤이 올 때가 있다.  내가 나고 자란 문화를 공유하며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타우랑가에는 한국인이 많지 않고, 한인 커뮤니티가 있나? 잘 모르겠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같은 유학원 엄마들끼리 어울리는 작년 문화와는 달리 올해 새로 온 엄마들은 유학원 간판 떼고 그냥 한국인이라는 공통분모로 함께 어울린다. 가끔 나를 태워 주기도 하고, 서로의 안부나 일상을 공유하는 단톡방도 있다. 아이들도 한 번씩 한국인들끼리 한국어로 떠들어 대는 것도 나쁘진 않은 것 같다. 비싼 돈 들여 유학까지 왔는데 왜 한국인과 어울려야 하냐고 싫어하는 엄마들이 있다. 한국인과의 교류가 필수는 아니지만 나는 필요하다 생각한다. 하지만 개인의 선택이니 정답은 없다. 

그런 부분에서 이번 공연 참여는 잘 한 선택이었다. 나의 딸이 아리랑을 익히고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아리랑을 연습할수록 아리랑을 부르는 나의 딸은 점점 진지한 자세로 노래를 불렀다. 역사를 듣고 노래 가사를 읽으니 그 느낌이 와닿았던 걸까? 


<엄마. 가사가 슬픈데 아름다워. 멜로디도 슬프기도 하고 안 슬프기도 해. 아리랑. 이 단어가 입에 맴돌아.>


나의 딸은 아리랑을 한동안 계속 흥얼거렸다. 


외국에서 아이를 키우며 한 가지 생각한 점은 내 나라의 뿌리는 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행사 당일 100분의 소시지를 튀기느라 오전 내내 분주했다. 100분의 소시지를 다 튀기고, 나의 딸의 한복을 챙겨 5시까지 학교로 갔다. 지나가는 길에 같은 학교 한국인 엄마가 태워 주었다. 학교에 가서 보니 무대가 학교 중앙 운동장에 설치되어 있었다. 무대 앞에는 자유롭게 매트나 의자를 가져와 앉아서 무대를 즐길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공연은 6시부터 시작. 이미 많은 사람들이 학교 운동장에 자리 잡고 앉아 있었다. 

음식은 홀에 세팅하게 되어 있었다.  대한민국을 포함하여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프랑스, 중국, 베트남, 인도 등 다양한 나라의 음식들이 먹음직스럽게 차려졌다. 2달러 정도를 내면 접시를 받는다. 줄을 서서 차례대로 접시에 나라별 음식을 조금씩 담아 먹을 수 있었다. 음식은 넉넉하게 게 준비하지 못했지만, 조금씩 나눠 먹을 수 있어 다행스러웠다. 

우리는 얼른  지정된 한국 자리에 준비해 간 음식을 세팅하고, 공연을 하기로 한 아이들은 한복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한 번 더 아리랑 가사를 연습했다. 음식은 한국인 엄마 한 명, 한국인 아빠 2명이 나누어 주었다.

6시에 드디어 MC선생님의 마오리어로 행사가 시작되었다.

운동장에선 나라별로 공연 순서에 맞게 공연이 진행되었다. 아이들이 공연을 하는 나라도 있고, 어른이 나와 공연을 하는 나라도 있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나라는 어떤 아버님이 영국 전통 복장을 입고 무대에서 악기를 연주했다. 그분은  연주를 하면서 무대를 내려가 학교를 돌아다니며 한참 동안 무대 밖에서 연주를 계속하였다. 그 아버님은 자신의 음악에 심취했던 것 같다.

외국인 신분으로 현지 엄마들과의 교류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하지만 이런 계기를 통해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고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었다. 

나의 딸은 행사 일주일 전 친한 친구 2명에게 한국의 한복을 선물했다. 비슷한 당의의 한복을 입고 셋이 서 있는 모습을 보니 너무 아름다웠다. 학교 행사에 왔던 많은 사람들이 "뷰티풀 드레스" 라며 무슨 옷인지 물어보았다. 그래서 한복을 입은 나의 딸과 그 친구들이, 


<이건 한복이야. 한국의 전통 옷이지.>


라고 이야기를 해주었다. 아마도 한복을 잘 몰랐던 외국인들도 아이들이 입은 한복을 보고 알았을 것이다. 이것이 한국의 전통 옷이구나를 말이다. 한복을 입은 세명의 아이들이 학교 이곳저곳을 다니는 모습을 보고 다른 부모들도 사진을 찍어 가기도 했다. 그리고 나의 딸은 다른 친구들과 함께 사진을 찍으며 또 한복에 대해 알려 주었다. 

외국인의 눈에 비친 한복은 어떤 모습일까? 나의 키위 친구는 아름 다고 신비로운 느낌이라고 했다. 아마도 금박의 당의가 고급지게 보였던 게 아닐까. 


<한국의 아름다움이 이곳 뉴질랜드에 스며들기를 기도해 본다.>


마침내 한국팀의 공연 순서가 다가왔다. 무태 옆에서 상기된 표정의 아이들. 한국인임을 자랑스러워하며 무대에 오른 아이들은 큰 언니의 진행 멘트에 맞춰 일사불란하게 큰 목소리로 목청껏 아리랑을 외쳤다. 뉴질랜드 타우랑가에서 울려 퍼지는 아리랑이라니. 

인생은 어디에서 어떻게 흘러갈지 모를 일이다. 한국에서도 하지 않는 한복을 입고 아리랑을 부르는 공연을 이곳 뉴질랜드에서 하다니. 오늘 공연이 아이들의 마음에 추억의 한 페이지가 될 것이다. 완벽한 공연은 아니었지만 용기를 내어 무대 위에서 한복을 입고 공연을 한 아이들은 큰 자신감을 얻었을 것이다. 강남스타일이나 퀸카를 출 때 오합지졸 쿵쿵따 완벽하지 못했다. 방향도 제각각이었다. 하지만 그 무대를 즐기는 아이들의 표정은 여유로웠고, 그 무대를 지켜보는 관객들은 관대했다. 관객 맨 앞줄에는 나의 딸 친구들이 앉아 나의 딸의 이름을 외치며 "굿!"을 외쳐 주었다.

한국 학교 시스템은 무대에 올라가 공연을 하는 기회가 많지 않다. 한국에서는 실수를 두려워한다. 왜? 실수를 하게 되면 질타와 질책이 사방에서 비수같이 쏟아지니까. 예민한 아이들은 그것을 견디기 어려워하고, 아이들의 자신감을 깎아 내리게 된다. "잘 못해도 너도 잘할 수 있어. 다음에는 더 잘할 수 있어."라는 용기를 선생님뿐만 아니라 함께 그 공연을 보는 아이들도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태권도 학원에서 방학 때는 태권도 수업뿐만 아니라 줄넘기 수업도 진행하였다. 당연히 줄넘기 수업을 신청했었다. 그날 나의 딸만 도복을 입었다. 엄마의 불찰이었겠지만 그날 나의 딸은 울고 말았다. 


<엄마, 다른 아이들이나,  언니, 오빠들이 자꾸 오늘 도복 입는 시간 아닌데 왜 입었냐고. 너 엄마가 잘 못 준거지? 너 엄마는 줄넘기 시간에는 도복 안 입는 거 몰랐데? 도복 안 입는 건데 왜 이거 입은 거야."라고 자꾸 물어. 그리고 내가 대답을 해 줘도 계속 같은 걸 물어봐. 내 대답은 듣지도 않아. 자기들끼리 키득거리기만 하고 지적질만 해대. 도복안 입는데 왜 입고 왔냐고. 내가 다른 걸 입은 게 죄야? 그렇게 큰 잘못인 거야? 나는 이제 그냥 줄넘기 안 갈래. 줄넘기 시간에 도복을 안 챙겨 준건 엄마 탓이잖아. 엄마가 잘 챙겨 줬으면 내가 안창 피했잖아. 도복 입은 애래요 라고 애들이 놀렸단 말이야. 됐어. 이제 줄넘기는 끝이야.>


8살짜리 딸이 저리도 울분을 토해내다니. 잊을 수 없는 일 중 하나이다. 그날 내가 잘 달래 보려 했지만 나의 딸은 끝끝내 줄넘기 수업은 가지 않았다. 그다음 날 나의 딸이 이런 말을 했다.


<난 괜찮아. 또 태권도 수업 할 거니까. 집이 멀어서 그냥 입었어.라고 계속 대답해 줬는데 내 말을 들어주는 애들은 없었어. 아니, 물어봤으면 대답을 들어야 하는 거 아니야? 정말 이상해.>

 

묻는이 따로, 대답하는 이 따로. 따로국밥이다. 


 타인의 시선, 용서받지 못할 다름,  소통 불가. 왜 그럴까.


아리랑을 목청껏 부르는 한국인 유학생들과 K-pop을 기꺼이 즐기는 뉴질랜드의 키위들. 황홀한 저녁이었다. 놀라운 점은 퀸카를 알고 따라 부르는 키위들이 있었다. 확실한 건 뉴질랜드의 아이들 중에는 한국의 방탄소년단 이외에도 한국의 다른 아이돌을 알고 있단 점이다. 내가 어릴 때는 주윤발이 최고였었는데 말이다. 


신명 나는 무대를 마치고 내려온 아이들의 표정에서 뿌듯함이 느껴졌다. 무대를 마치고 음식을 먹기 위해 줄을 섰다. 접시 가득 받아온 음식을 먹으며 함께 웃고 떠들고 나니 어느새 해가 저물었다. 

컬처 데이를 마치고 나의 딸과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오니 머피가 어김없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언제나 늘 그 자리에서 한결 같이 퍼질러 자고 있다. 머피도 이제는 완전한 한국인 가족과 사는 반려묘다.

Have a good 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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