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스럽게 자유롭게 살까?
한국에서 이모가 온 날이었다. 뉴질랜드는 차량 운전이 한국과 반대이다.
이모는 3시간 정도의 도로 연습을 한 후, 집으로 돌아왔다. 차량 연습을 할 때는 화를 내는 상황이 생길 때도 있는데, 날씨 탓인지, 기분 탓인지 모르지만 투닥거리지 않고 침착하게 "그래, 잘했어. 여기서는 멈추고, 그래. 그렇지."등의 나긋한 말투로 도로 연수를 마칠 수 있었다. 이곳은 뉴질랜드가 아닌가. 급할 것도 화를 내야 할 것도 없는 곳이다. 시간이 흐르는 대로 천천히 하면 할 수 있는 곳, 뉴질랜드다.
물론 몇 번의 실수는 있었다. 역주행도 하고, 회전교차로에서는 멈춰 서야 하는데 그냥 지나쳐 버려 빵 소리를 들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역시 젊어서 그런 걸까. 금세 오른쪽 운전좌석에서 운전하는 것에 익숙해졌다. 동네 안에서는 시속 30킬로로 운전해야 하고, 다른 운전자들도 과속하지 않는다. 도로 폭도 한국보다 넓다. 무엇보다 이곳은 건널목, 횡단보도가 많지 않다. 우리는 무단 횡단이 불법이라 하지만 이곳은 사람이 길가에 서있거나 건너려고 하거나 혹은 건너고 있거나 했을 경우 운전자들은 반드시 멈춰야 한다. 그래서 동네 안에서는 과속하지 않는 것 것 같다.
운전에 자신감이 생긴 이모는 본인이 운전을 해보겠다고 했다. 그래서 며칠 후, 우리는 공원으로 향했다. 이모는 한국과는 다른 고속도로에 당황하기 시작했다. 이모는 "언니! 이렇게 끝도 없이 일직선으로 100킬로씩 달리는 게 가능해? 온통 소밖에 안 보여. 그리고 고속도로라면서? 이거 국도 같은데?" 라며 물었다. 한국의 고속도로와는 다르다. 국도와 고속도로를 합친 느낌이랄까? 이곳에서 조금 더 오래 살다 보면 익숙해지겠지. 이모는 100킬로로 달리는 게 무섭다면 80킬로 정도로 달렸다. 우리를 추월해 가는 차들도 있었다. 유학원에서 말하기를, 이곳은 이민자와 유학생 가족들이 많아서 고속도로에서 천천히 달리면 현지인들이 알고 눈치껏 앞질러 가거나 기다려 주면서 운전하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알려줬다.
큰 고층 건물, 아파트, 꼬마 빌딩, 빌라, 다가구 주택, 골목길이 없는 자연의 모습을 닮은 길을 막힘 없이 달릴 때 내 어깨에 쌓여 있는 피로가 날아가는 느낌이다. 한국에서는 이왕이면 좋은 자동차, 이왕이면 학군지의 아파트, 이왕이면 고층에서 살았으면, 이왕이면 명품 백을. 이왕이면. 이 말은 필요 없다. 자연스러운 삶을 살면 되는 것이다. 계절에 맞게 꽃과 나무가 자라고 열매가 맺히는 것처럼 나 역시 욕심을 내려놓고 자연을 느끼며 살면 되는 것이다. 인생은 여행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난 지금 인생의 여행길에서 잠시 뉴질랜드에 머물고 있는 중이다. 따사로운 햇살이 쏟아지는 구름의 나라에서 행복을 찾고 있다.
초행길이라 천천히 운전하다 보니 어느새 공원에 도착했다. 주차 폭이 넓어 주차는 쉬웠다. 한국에서 공원을 많이 가보진 않아서 비교가 될까 싶지만, 한국은 공원을 둘러싼 고층 아파트가 보인다면, 이곳은 공원을 둘러싸고 있는 나무만 보인다. 내 딸의 눈에도 이상해 보였던지, "엄마, 아파트가 안 보여. 희한해."라고 웃으며 재잘거렸다. 내 딸이 더 넓은 세상의 아름다움을 많이 볼 수 있길 바란다.
사랑하는 나의 딸과 함께 폭포수를 위에서 내려다보았다. 한눈에 보이는 시원한 물줄기, 내 몸을 타고 흐르는 나쁜 세포들도 씻겨 내려가는 것 같았다. 거대한 폭포가 신기했는지 난간에 붙어 포켓몬 노래를 흥얼거리는 딸의 모습이 귀여워 뒷모습을 찍었다.
폭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려는 인도인 가족을 만났다. 뉴질랜드에서도 느꼈지만 인종차별이 작은 나라라 할 지어도 인도, 파키스탄에서 온 사람과의 벽은 분명 존재했다. 7-8명 정도 되는 가족들이 폭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려고 한 명씩 나와서 돌아가며 가족들의 사진을 찍고 있길래, 가족 전체가 온전히 나온 사진을 찍어주려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그들은 내가 찍어준 가족사진이 퍽 맘에 들었나 보다. 한국인은 어떤 민족인가. 사진에 진심인 민족 아니겠는가. 오른쪽, 왼쪽, 무릎을 구부렸다, 폈다 움직이며 5장의 사진을 찍어주었다. 자기 사진이나 많이 찍어주지 남 찍어 준다고 얼굴을 찡그리던 딸은 어느새 엄마의 열정적인 사진 촬영을 보고 "엄마, 이쪽에서 찍으면 더 예뻐."를 말해 주며 함께 멋지게 찍어 주고 싶어 했다. 딸과 함께 찍은 사진을 건네자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였다. 그리고 사진을 찍어 주어 고맙다며 7살쯤 되어 보이는 소년이 수줍게 초콜릿을 건넸다. 딸이 좋아하는 호키포키 초콜릿을 주다니. 내가 다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차 타고 오는 길 내내 호키포키가 먹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딸이 그 초콜릿을 먹으며 "엄마, 엄마가 아까 그 가족들 사진을 찍어 주길 잘한 것 같아. 이 초콜릿도 받고 말이야."라고 말을 하는 게 아닌가. 딸의 칠흑 같은 검은 빛 눈동자가 반짝였다. 이 세상에 검은색 보석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내 딸의 아름다운 눈동자일 것이다. 호기심 가득 찬 반짝이는 그 눈빛이 영원하였으면. 나는 무한한 폭포를 바라보며 내 딸이 세상의 힘듦에 찌들어 빛을 잃지 않게 해 달라 속으로 소원을 빌었다.
우리도 사진을 찍고는 차를 타고 인근 동물원으로 이동했다. 동물원에서 줄을 서서 표를 사기 위해 기다리는데, 앞쪽에 보니 우리가 사진을 찍어 주었던 가족들이 있는 게 아닌가. 그들은 우리가 표를 사고 들어가자 자신들이 샀던 먹이 체험용 2컵을 건네주며 고맙다는 말을 다시 한번 건네었다.
작은 친절에 초콜릿과 먹이 체험용 2컵을 받다니. 뜻하지 않은 행운이다. 내가 좋아하는 오소의 작가의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주겠지."라는 책에 이런 문구가 있다.
<나는 여행이라는 스승을 통해, 삶에 대해 더 낮아질 것을 배운다. 엎드려 고개를 숙이면 더 많은 것이 보이는 것이다.>-오소희작가, 바람이 이우리를 데려다주겠지.
누구와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호의와 친절을 나눌 수 있다. 피부색이 다르다 하여 그들이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나의 친절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의 딸은 엄마와 함께 하는 이 길에서 인종의 차별 없이 지낼 수 있다는 것과 호의와 친절, 미소는 나눈 것이라는 점을 알아 갈 것이다. 9살 인생에서 학원이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9살은 호기심과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게 학교 밖에서의 경험도 중요하다 생각한다.
학교에서는 공부를 하고, 학교 밖을 나와서는 마당과 공원, 놀이터에서 뛰어놀며 바람과 햇살을 느껴야 하고, 하늘과 꽃, 나무, 곤충을 보아야 하며, 지나가는 사람들과의 미소와 작은 대화 나누는 것을 통해 내 딸은 멋진 어린이가 되어 갈 것이다.
한국에선 동물원을 다녀올 때면 갇혀 있는 동물생각에 눈물짓던 딸의 모습에 선뜻 가기 어려웠는데 오늘은 즐거워 보이는 딸의 모습에 뉴질랜드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