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어려서부터 독서를 나름 많이 했던 편이었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집에 항상 책이 가득했고 그림책, 동화책, 과학책, 시집, 소설 가리지 않고 다양한 분야의 책을 아무 목적도 없이 읽으며 자랐습니다. 그때는 그냥 그 자체가 즐거웠습니다.
그런데 중학교 고등학교를 진학하면서 독서보다는 학업에 열중하면서 자연스레 독서와 거리가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물론 제 스스로가 만들 핑계일 수도 있지만 적어도 제 학업 성적은 독서에 관심을 가질 만큼 여유롭지 않았습니다.
성인이 되고 나서 성공하려면 독서를 해야 한다는 사회의 권유에 다시 책을 잡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그 분야는 '자기 계발'이라는 명목으로 돈, 성공, 주식, 부동산에 한정된 카테고리에만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그것은 제게 독서가 아니라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공부'였던 셈입니다.
그러다 몇 년전 서점에서 우연히 심리학에 관한 책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이전과 다른 '즐거움'을 경험했습니다. 심리학에 소개된 효과 하나하나가 너무 흥미롭고 신기해서 신비함 마저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마치 어린시절 아무런 목적 없이 독서 자체를 즐겼던 그때로 돌아간 것 같았습니다.
그 이후로 책을 대하는 태도를 바꿨습니다. 책에서 무언가를 얻어야 한다는 강박보다, 독서 그 자체를 즐기다 보면 배움은 따라올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그것이 최고의 독서법이라고는 확신할 수 없지만, 적어도 평생 독서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는 믿고 있습니다. 결국, 저에게 독서란 '즐거움' 그 자체에 있습니다.
자기계발이라는 트렌드가 다시 떠오르면서 독서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동시에 독서의 필요성과 많은 독서법들이 전파되고 있습니다. 독서를 안 하면 큰일 난다는 독서 예찬론부터, 기적의 독서법, 인생을 바꾸는 독서법, 빠르게 속독하는 방법까지, 감탄스러운 마음마저 듭니다.
제 글을 보시는 모두는 각자만의 독서 목적과 독서법을 실천하고 계실 것입니다. 정답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 시점에 한번쯤은, 정말 무엇을 위해 독서를 하는지를 다시 한번 떠올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논어 제6편 옹야에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
"그것을 아는 자는 그것을 좋아하는 자만 못하고 그것을 좋아하는 자는 그것을 즐기는 자만 못하다."
아무리 그것을 잘 알고 좋아한다고 하더라도 즐기는 자만 못하다고 했습니다. 결국 독서든, 독서토론이든, 글쓰기든 간에 '즐기는 마음'에 모든 답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럼에도 간혹 독서를 미친 듯이 하기 싫은 날이 있습니다. 책을 잡는 일조차 막대한 과업이라는 생각이 들 때 말입니다.
서울대 김영민 교수님의 에세이를 빌려 한 가지 팁을 드리자면 "위선이라도 떨어보는 것"입니다. 하기 싫어도 그렇지 않은 척 위선을 떨다 보면 정말 신기하게도 진심이 생겨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정말로 독서를 하기 싫은 날에는 스스로를 독서광이라고 세뇌시킵니다. 그러고는 책을 가지고 소파에 앉습니다. 정말 한 문단만 읽자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겨우 두 줄을 읽어냈을 때 눈꺼풀의 중력은 인간으로서 버티기 힘든 수준의 무게로 저를 짓누르며 무의식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그렇게 저의 야심 찬 독서광의 꿈은 물 건너가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