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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영식 Jul 17. 2024

글이 써지지 않는다...!

불완전의 미학

문제가 생겼다.


요즘 들어 글이 써지지가 않는다. 여기서 말하는 ‘글이 써지지 않는다’라는 것은 나의 노트북의 키보드가 고장 났거나 혹은 컴퓨터 입력시스템에 문제가 생겨 타자를 칠 때 자음과 모음의 결합이 화면에 표시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물론 펜을 잡고 노트에 잉크를 옮기는 작업 과정 중에서 어떠한 문제가 발생했다는 뜻도 아니다. 확실하게 그보다 훨씬 이전의 문제이다.     


나에게 글을 쓰는 행위란 일상생활을 하면서 갑작스럽게 떠올랐던 생각들이나, 쓰고 싶었던 주제들이 대충 적혀있는 메모장의 두서없는 글들을 개인적인 스토리 체계로 풀어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 ‘글이 써지지 않는다’라는 것은 그 과정 중 어딘가에서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나는 ‘성장’과 관련한 주제로 꾸준히 글을 쓰고 있다. 경제적 수익이나 홍보와 같은 목적이 아니며 누군가로부터의 부여받은 과업도 아니다. 오로지 스스로의 ‘자유의지’에 의한 철저하게 자유로운 행위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완전해 보이는 자유의지로의 글쓰기는 꾸준하게 좋은 글을 써야한다는 목표 속에서 거대한 중압감과 막중한 임무로 다가왔다.     


일반적으로 위대한 예술가나 작가들은 창작할 때 많은 고통을 느낀다. 특히 좋은 작품을 향한 열망과 스스로의 기대치가 커질수록 그 고통의 크기는 걷잡을 수 없이 자라난다. 천재적 예술 재능을 가진 레오나르도 다빈치 다양한 분야에 걸쳐 수많은 작품들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지만, 생전에 완성시킨 작품들보다 미완성의 작품들 수가 훨씬 많았다고 한다. 철저한 완벽주의적 성향이 그를 끊임없이 회피하게 했던 것이다.     


사실 완전함을 갈망한다는 것은 이성이 있는 인간에게만 허락된 행태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완전함이라는 이상향은 너무 높기에, 때로는 스스로에 대한 열등감과 괴리감이라는 형태로 표현된다. 먼 그리스인들이 신들의 모습을 불완전한 인간으로 표현했다는 것은, 완전하지 않은 모습을 인정하는 신의 모습이야말로 사실 가장 도달하기 어려운 위대함이 아니었을까.     


우리 삶에도 불완전함이 필요하다. 더 정확히는 불완전한 모습마저 인정할 수 있는 용기이다. 스스로를 ‘완벽’이라는 도달할 수 없는 이상향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줄 완전하게 불완전한 모습이 진정한 우리라면, 그 시작은 미완성은 미학이다. 완성하지 않음으로 완정되는 가장 용기 있고 아름다운 인간만의 본연. 더 나아가 완벽하게 대체되는 AI시대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인류의 모습이 될지도 모른다.      


완벽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완벽한 인생을 살지 않기 위해, 완벽한 사랑을 하지 않기 위해 결심한 모든 이들에게 가장 인간다운 인간이라는 칭호를 선사해주고 싶다.      


이 글을 완성하면서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나의 필체와 고군분투하여, 몇 달을 썼다 지웠다를 수없이 반복하는 나의 위선과 겉멋에 부끄러움을 만끽해본다. 동시에 철저한 ‘불완전함’으로 글을 이어가는 나의 위대함에 응원을 보내본다.     


당신은 얼마나 불완전으로부터의 완벽한 삶을 꿈꾸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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