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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지현 Feb 19. 2024

다꾸, 애들이나 하는 거 아냐?

육아 우울증에서 벗어나게 해 준 나의 다이어리 꾸미기 도전기

끝이 살짝 구부러진 날카로운 핀셋을 들고 나는 작업에 집중한다.


이건 아주 예민한 작업이다. 방금 맛있는 요리를 마친 메인 셰프의 섬세한 플레이팅, 아름다운 색깔을 손톱에 칠한 후 빛나는 스톤을 올려 구우려는 네일 아티스트의 마지막 터치. 그 정도에 비하면 되려나.


나는 진지하다.


나는 지금 아주 작은 원형 스티커들을 다이어리 종이 위 원하는 위치에 하나하나 붙이는 중이다.


스티커의 미세한 위치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는 것이 바로 다꾸(다이어리 꾸미기)의 묘미다. 그래서 나는 핀셋으로 이 작은 스티커들을 집어 살짝 붙였다 떼었다를 반복해 위치를 잡는다.


이 때 필요하다면 마스킹 테이프도 떼어 붙이고, 기록도 하고 싶으면 한다. 한 마디로 내 마음에 만족스럽게 꾸미고 싶을 때까지 꾸미고 마무리한다.


어느 날 꾸며본 스크랩 다꾸. 키치한 느낌이 있어 키치 다꾸라고도 한다. 다꾸는 자유롭다.


나는 현재 스티커나 영수증, 예쁜 종이들을 모아 붙이는 '스크랩 다꾸'와 기록 중심의 '기록 다꾸'를 함께 하고 있는데, 다꾸를 하면 할수록 이 세계는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체험하고 있는 중이다.


6살 아들이 있는 이미 다 큰 성인인 아기 엄마인 내가 어찌 보면 유치하달 수도 있는 이 취미에 빠지게 된 건 22년 10월 경이었다.


이미 다꾸의 세계에 들어가 있던 친구가 내게 스티커들과 다이어리 하나를 선물로 사 주며 자신과 취미를 함께할 것을 권유한 것이 발단이었다.


생각해 보니 중학교 때 아이들 사이에서 다이어리 열풍이 불었던 적 있다. 그렇게 따져 보면 나는 '다이어리 꾸미기'에 대해서 옛날부터 알고 있었다.


얼굴도 동그랗고 안경도 동그랬던 한 친구. 그 친구의 다이어리를 무척 부러워했던 기억이 난다. 그 친구가 색색깔로 갖고 있었던 외제 펜들도 부러웠고, 그 친구의 단정한 글씨체도 참 많이 닮고싶어 했었다.


그래서 나는, 몰래 그 친구의 글씨체를 롤모델 삼아 글자 예쁘게 쓰기를 열심히 연습했었다. 결국 글씨체는 똑같아지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것이 내가 갖고 있는 첫 다이어리 꾸미기의 추억이다.


그렇게, 그래서.


친구를 만난 날, 나는 아기를 재워놓고 밤에 일어나 선물로 받은 다이어리를 열심히 꾸몄다.


PVC 재질의 비닐로 된 6공 다이어리. 친구가 몇 장의 속지를 꾸며서 끼워주었고, 나는 친구의 솜씨에 감탄하며 몇 장을 팔락팔락 넘겨보았다.


그리고 친구가 준 스티커들과 그날 받은 포장지를 뜯어 붙이며 열심히 '첫 다꾸'를 완료했다.


그 예쁘게 꾸며진 페이지들이 얼마나 사랑스럽던지!


나는 당장 그 페이지들의 자신을 정성껏 내 휴대전화로 촬영했고, 꼼꼼히 보정했으며, 자랑스럽게 나의 소셜 미디어에 업로드했다.


예쁘게 꾸민 '작품'을 남에게 보여주고, 자랑하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 아니겠는가!


내게 그 작은 A7용지 두 장의 다이어리 종이는 하나의 작품 세계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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