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밖 사수 인터뷰 | 전주 책방 똑똑 공동대표 시리 (1)
에디터 소피의 말
이방인에게 외로움이란 필연이다. 새로운 지역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간다는 건, 나를 가장 잘 알고 내가 가장 잘 아는 아늑한 세계로부터 벗어나 혼자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시리는 혼자가 아니었다. 시리가 전주에서 관계 맺은 사람들이 또 하나의 아늑한 세계를 만들었다. 그 안에서 시리는 용감한 PM이자 대표로, 누군가의 든든한 동료이자 친구로서 뚜벅뚜벅 전주를 걸어 다니고 있다. 그 길에는 어떤 이야기가 있었을까?
edited by 소피
제 삶을 새롭게 쓰고 싶어서 루틴 있는 삶을 시작했어요. 이전에는 프리랜서로 다양한 갈래의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보니까 마감 기한에 맞춰서 움직이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은 루틴 관리 어플인 [마이루틴]을 사용하고 있는데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모닝페이지를 써요. 눈 뜨자마자 수정하지 않고 3페이지를 떠오르는 대로 쓰는 건데, 창조성 회복에 도움 된다고 해요. 그 이후에는 10분간 스트레칭을 하고 30분 정도 아침식사를 하면서 하루를 시작해요.
요즘은 책방 똑똑을 운영하면서 똑똑의 일과도 추가되었어요. 책방은 오후 2시 ~ 7시까지 열어요. 1시간 전에 도착해 환기와 청소로 오픈을 준비하고, 문을 연 뒤로는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속 여우처럼 여우의 기다림을 계속해요.(웃음) 7시에는 마감 정산 후 바로 집에 간다고 말하고 싶지만, 보통 1-2시간 정도 일을 더 하다가 집을 돌아가는 일상을 보내고 있어요.
고향은 익산인데, 건축과 졸업 후 설계사무소에서 일하면서 서울에서 살게 됐어요. 그런데 야근과 주말출근이 너무 많더라고요. 실적이나 마감 압박도 컸어요. 이런 얘기를 전주에 있던 지인에게 하게 됐는데, 그 지인이 전주의 일자리를 소개해줬어요. 다행히 면접에 붙으면서 2020년에 전주로 이주했어요.
2020년도에 전주사회혁신센터의 공간 조성팀에서 공간 매니저로 근무했어요.
추가 근무를 80시간 할 정도로 일을 많이 했어요. 공간 매니저로 입사해서 소통협력공간 조성이라는 사업을 맡았는데요. 원래는 공간활성화만 담당하면 됐지만 공간이 조성되는 과정을 아카이브 하는 것까지 스스로 도맡아서 했어요. 공간 조성의 과정은 공간의 구축에서부터 시작이라고 보고, 철거부터 인테리어 담당자까지 현장직분들의 인터뷰를 진행했죠.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공간의 역사를 전달하고 싶었거든요.
사회혁신센터의 인연으로 다양한 중간지원조직을 만날 수 있었어요. 그중 원도심 도시재생 현장지원센터와의 만남에서는 도시재생 대상지의 오래된 골목이 갖는 의미와 특성, 도시재생 과정에서 주민 참여의 방법과 과정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어요. 저는 도시재생으로 새로운 건물과 프로그램이 만들어질 때, 주민-방문자-기획자-건축가-운영자 등 다양한 관계자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려면 관계마다 중간 다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중간 다리로서 제안받은 게 <공간디자인워크숍>이었어요.
원도심 거점 공간 둥근숲 공간 워크샵은
사회혁신센터 사업으로 도시재생 사업 담당자분들을 만났을 때 저의 관점을 꾸준히 전달했던 일상의 대화가 디자인워크숍의 단초가 되었어요.
원도심 도시재생 현장지원센터에서 도시재생사업으로 원도심에 ‘둥근숲'이라는 거점공간 조성계획이 있었어요. 제가 공간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사용자의 필요를 꾸준히 파악하고 반영하는 일이에요. 도시재생 사업 담당자분들도 동의하는 지점이어서 공간디자인워크숍을 제안해 주셨어요.
그리고 공간디자인워크숍을 계기로 인연을 맺은 ‘둥근숲'에서 '고물자골목 공간, 사람, 기록 전'이라는 공간 아카이브 전시를 한 달 동안 진행했어요.
고물자골목 아카이브 전시 기획은
이 또한 원도심 도시재생 현장지원센터에서 제안을 받아 진행되었는데요. 골목 기록 및 활성화 사업의 일환으로 원도심에 있는 고물자골목에 대한 기록을 담는 전시 기획을 제안받았어요.
고물자골목은 1950년대 구호물자 보급품이 거래된 일명 ‘구호물자의 거리’를 말해요. 긴 시간 동안 차곡차곡 쌓인 시간과 이야기를 담고 나누기 위해 공간 아카이브 전시 ‘고물자골목 공간, 사람, 기록 전’을 기획했어요. 그동안 수없이 스쳐 지나간 골목에 축적되어 있었던 시간을 떠올려보길 바라는 마음으로 골목에 쌓여있는 이야기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구현했던 전시예요.
둥근숲이 자리한 고물자골목이 쌓아온 시간과 이야기를 존중하고 애정하는 청년들이 있었어요. 골목 내의 상인들은 청년들이 골목에 자주 드나들며 활기를 불어넣는 모습을 반가워하셨고, 이를 지지하는 도시재생센터도 있었고요. 저는 이 3가지가 있었기에 새로운 일의 인연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해요.
간람록, 불모지장, 책방 똑똑, 쓰레기 없는 축제를 위한 전북시민공동행동, 자원순환정책포럼위원회... 전주달팽이집도 운영하고 있어요. 굉장히 많죠..?(웃음)
‘간람록'이라는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어요. 공간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을 제안하는 브랜드예요. 이 일이 제가 하고 있는 일들의 가장 중심에 있고요. 이름은 제 일의 구심점이 되는 ‘공간, 사람, 기록’ 이 세 가지 단어의 끝 글자를 따서 만들었어요.
간람록을 통해서 '책방 똑똑'을 운영해요. 쓸모없어 버려지고 방치되는 빈집에 어떤 색깔을 입혀서 보여줄 것인지 고민하면서 똑똑 디렉터를 맡게 됐어요. 저는 책방 사장이기 전에 빈집을 재해석하는 똑똑 공간기획자의 역할이 우선이에요.
‘불모지장’도 운영하고 있어요. 불모지장은 불편한 모험을 통해 지속 가능한 지구를 만들어가는 비건 장터인데요. 2020년 9월, 모아와 페퍼라는 두 기획자가 1인 가구가 장보는 과정에서 쓰레기가 과도하게 많이 나온다는 문제의식을 느끼고 기획했어요. 저는 두 번째 장터인 2021년 5월부터 운영진 제의를 받아서 디렉터로 합류했고, 전반적인 기획 전체를 보는 역할을 했어요.
제가 불모지장 디렉터를 맡으면서부터는 그린워싱을 지양하기 위해 ‘쓰레기 없는 문화’라는 본질과 이 문화를 확산하는 것에 집중했어요. 행정안전부의 지역 문제 해결 플랫폼에 의제로 ‘쓰레기 없는 장터'를 제안했죠. 의제 제안 당시에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졌던 '쓰레기 없는 축제를 위한 전북시민공공행동'에 결합해 쓰레기 없는 축제를 본격적으로 만들고 있어요.
휴학하고 6년 동안 평화재단에서 청년포럼이라는 청년양성팀 상근자로 활동했어요. 사무팀장 정도의 역할이었는데요. 처음 맡았던 프로젝트는 '새로운 백 년을 열어가는 청년학교'라는 사업이었어요. 그 밖에도 10주간의 Book 세미나, 청년현장탐방, 동북아 역사 기행을 포함해서 아카데미와 청춘 콘서트 등의 활동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경험을 했죠. 명찰 제작부터 1만 명 규모의 콘서트 총괄까지 크고 작은 일을 다양하게 해 볼 수 있었어요. 직접 운영하는 경험 외에도 다른 단체/조직과 협력하며 사업을 풀어갔었는데요. 덕분에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이 자연스럽고 수월해요.
수익만족도는 4점. 사실 안정적인 삶은 아니에요. 제가 수입에 대한 불안이 높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아요. 제가 지금 제가 말했던 일들 중에 수익을 목적으로 시작했던 건 지금 책방 똑똑 말고는 없어요.(웃음) 단순 알바를 제외하고요.
지역 만족도 4점. 저는 전주에서 사는 삶이 너무 좋아요. 사실 똑똑에 가는 거 아니면 대부분의 삶을 도보 거리에서 해결해요. 대중교통 이용 안 하는 걸 좋아하고, 이용하지 않아도 되게끔 15분 거리의 생활권으로 사는 이 삶이 굉장히 좋아요. 서울에서 그런 삶을 살 수 없잖아요. 시골도 차로 이동해야 해서 가서 살라고 하면 어려울 것 같아요. 마이너스 0.5점은 최근에 전주천 버드나무 벌목 등으로 개발 위주의 도시 계획을 세우는 전주시 개발계획에 대한 아쉬움이에요
관계하는 삶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요. 여기서 관계는 나와 나의 주변을 둘러싸는 사람, 공간, 장소, 사회 모두를 말해요. 그래서 항상 남을 돕고, 남이 잘 될 수 있게 일을 하는 편인데요. 제 동료가 당장 빛을 발하지 않더라도 자신 안에 반짝반짝 빛나는 게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해요. 더 나아가, 제가 자리하는 단체의 필요한 역할, 혹은 사는 지역에 필요한 일을 하고요.
제가 일이 삶의 98%였던 사람이라 그런지, ‘나'라고 대답하고 싶어요. 인생의 반려라 생각하는 짝꿍이 있어요. 짝꿍이 폴란드로 파견 근무를 나가곤 하는데, 처음엔 저와 같이 나가고 싶어 했어요. 저도 ‘내가 언제 해외 나가서 살아보겠어?’ 하며 훌쩍 떠나고 싶은 생각이 있었지만, 전주에 남겠다고 했는데요. 제가 왜 남으려고 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책임감'이더라고요. 전주에서 언제까지 여기서 ‘나’를 만들고 싶다는 목표와 계획이 있어요. 전주의 나를 완성하자는 마음이 전주에서 계속 살아가게 하는 동력이 되는 것 같아요.
전주에 계속 있을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하게 됐던 결정적인 계기는 새로운 커뮤니티와의 연결이었어요.
지역에 자리 잡을 당시에 관계 맺은 커뮤니티 안에만 있을 땐, 그 커뮤니티가 곧 그 지역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새로운 커뮤니티, 또 다른 커뮤니티들에 속하면서 비로소 '이 지역에서의 나'로 살 수 있게 됐어요. 나를 인식하는 사람, 커뮤니티를 지역에서 다양하게 늘려갈수록 지역과 깊게 관계 맺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커뮤니티의 다양성과 소속감은 지역 살이에 도움이 되는 건 맞지만, 커뮤니티가 삶의 중심이 되는 걸 경계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해요.
전주 달팽이집이라는 셰어하우스에 입주해서 지금까지 살고 있어요. 아는 분을 통해 소개를 받았는데, 때마침 2인 1실 자리가 하나 남아서 살게 됐어요. 저는 비영리 단체에서 공동체 생활을 오랫동안 경험해서 모르는 사람과 같이 살아도 괜찮았거든요. 많이 살 때는 40명이 공동생활을 했어요.(웃음)
셰어하우스는 영화감독, 공간운영자, 기획자, 활동가 등 다양한 삶의 모양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어요. 덕분에 ‘우리가 같이 이런 걸 해보자는 식’의 함께 무언가를 도모하려는 대화를 많이 할 수 있었죠. 대부분 자신들이 지향하는 바를 일을 통해 풀어내려고 하는 사람이어서 가능했던 것 같아요.
지역에 내려와서 생활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안정감이고, 그 안정감은 일자리, 잠자리, 그리고 놀자리가 있어야 생긴다고 생각해요. 셰어하우스를 통해 전주살이의 안정감을 얻었어요.(웃음)
뭘 좋아하고, 좋아하는 게 있는 지역이 어딘지 아는 게 중요해요. 제가 스스로 뭘 좋아하는지 알고, 제가 좋아하는 것들이 가득한 전주에서 계속 살려고 하는 것처럼요. 미디어로만 봤을 땐 내가 가서 잘 적응할 수 있는 곳인지 알 수 없잖아요. 그래서 그 지역이 나와 결이 맞는 곳인지, 그곳에서 내 삶을 안정적으로 꾸려나갈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막연하게 다가오니까 불안함이 생길 수 있어요. 불안함을 해소하려면 궁금한 지역에서 살아보면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보고, 평소에 안 나가던 모임에도 참여해 보는 게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아요.
장소는 ‘원도심’ 인데요. 저는 원도심을 걸어 다니는 걸 좋아해요. 원도심은 도보로 다양한 콘텐츠와 공간을 읽을 거리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에요. 예를 들면, 사람들이 좋아하는 맛집이나 카페일 수도 있고, 커뮤니티 공간이나 작은 담벼락 같은 것들 말이죠. 아참, 전주천을 따라 걷는 길도 무척 좋아하고요!
맛은 ‘백반’이에요. 크게 두 가지를 추천드리고 싶은데요. 우선, 구도심 쪽에 '중앙식당’과 똑똑 근처에 있는 '도마집'이에요. 둘 다 매일 찌개와 반찬이 바뀌는 백반집이에요. 저는 식당 근처의 동네 주민들이 점심식사를 하러 자주 찾는 집밥 같은 백반을 좋아해요. 물론 집에서 식사할 땐 1~2찬 정도로만 먹지만, 추천한 백반집의 찬은 5~6개 정도 나와요. (도마집은 엄마와 딸, 중앙식당은 엄마와 아들이 한다는 TMI도 전해요.)(웃음)
사람은 3명을 말하고 싶은데요(웃음)
‘유설'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을 자아도취에 빠지지 않고 건강하게 풀어내는 사람이에요. 자기만 사랑하는 게 아니라 전주를 사랑해요. 그리고 자기의 동료들을 사랑해요. 살아가는 방식도 사람마다 굉장히 다른데 설은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봐주는 방식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자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네가 모르던 전주>가 탄생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감자'는 나를 살리는 일을 성실하게 해가는 사람이에요. 자기가 좋아하는 게 뭔지 알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로 일상을 구축하고, 일상의 패턴을 잘 챙기면서 지키고 있는 사람이라서 자랑하고 싶은 사람이에요. 왜냐면 몇 년 동안 아침마다 영어학원 가는 걸 계속해 왔다고 하더라고요.(웃음)
‘달봉’ 작년까진 전북환경운동연합 상근자였고, 지금은 비혼여성 협동조합의 이사이자 먼 미래에 빵집 주인이 될 수도 있는 친구예요. 달봉은 모든 사람과 일에서 장점을 먼저 발견하고 말해주고, 사람과 일을 돌봄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돌보는 말을 먼저 건네주는 사람이에요. 자신을 돌보는 영역에서 일과 사람, 관계, 시간을 배치하고 조정하는 모습을 근래 발견했어요. 저는 가치를 따라 일을 하며 스스로를 소진시키는 편이라 달봉의 모습이 멋지고 부러웠어요. 제가 이렇게 말하면 친구는 '시리는 000을 더 잘하고, 000을 할 때 정말 멋있어'라고 부러움 뒤편에 숨어 있는 저의 자책을 돌봐줄 친구예요.
시리 사수가 왜 똑똑을 기획했고, 어떻게 운영하고 있는지, 그리고 똑똑이 어떻게 지역의 커뮤니티로서 나아가고 있는지 있는지 알아 볼게요!서울 밖 사수 시리 인터뷰 2편 보러 가기!
✼사수에게 궁금한 점이 있으신가요?
질문을 수집해 답변글을 제작할 예정입니다. 질문은 아래 링크를 통해 작성 부탁드려요 :)
시리의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_sirixsiri/
에디터 소개
로컬생활자 소피 | @local.sop
사람이 필요한 지역과 기회가 필요한 사람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하는 기획자 & 에디터를 꿈꿔요. 정착할 곳을 찾아 여러 지역을 넘나들고 있고, 궁금한 이야기를 찾아 3년째 에디터로 활동하고 있어요.
최승선 | @choi_welcome
지역과 공간이 주는 경험과 서비스를 디자인하는 전공의 대학원을 다니고 있어요. 도시재생 사업을 하는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 지역에 플레이어가 필요하다는 걸 느꼈어요. 플레이어가 되어야겠다는 마음으로 창업을 준비를 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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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자원이 서울로 몰리는 나라에서 서울 밖의 삶을 들여다봅니다. 서울 밖의 자리를 사수하는 사람들을 찾아 더 많은 서사가 다양한 지역에서 흘러나오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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