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니 Nov 04. 2024

영화 《위대한 개츠비》 리뷰

미국이 간직한 희망


    소설로도 3번 정도 읽었지만 읽은 지 꽤 오래되어 기억이 가물가물해 영화를 바탕으로 《위대한 개츠비》 리뷰를 써본다.

 일단 사회적, 역사적인 배경을 먼저 살펴보자. 《위대한 개츠비》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미국을 배경으로 한다. 20세기, 1920년대의 미국은 제1차 세계대전(1914~1918) 동안 유럽에 군수물자를 팔아 경제적 부흥기를 맞이했으며, 물질주의가 만연하고 부패와 타락이 넘쳐났다. 유럽이 전쟁으로 국력이 약해진 반면, 미국은 1917년 이후 전쟁에 참전을 해 상대적으로 그 사이 성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듯 경제호황기가 지속되다 보니 사람들은 소비와 향락을 주체하지 못한다. 1919년에 금주법이 내려지기도 했지만, 이에 대항해 주류밀매업들이(speak-easies) 비밀스럽게 생겨난다. [전쟁에 참전한 후 그 비참함을 느끼고 고국인 미국으로 돌아온 젊은 예술가들이 정작 고국 사람들은 향락적인 삶을 즐기는 것을 보고 현타가 와서 유럽, 특히 파리를 전전했으며, 이들이 바로 '잃어버린 세대(The Lost Generation)'.]

 이와 같은 사회적, 역사적 배경을 배제하고 줄거리만 본다면 《위대한 개츠비》는 그저 아침드라마(..)나 다름없이 막장이다. 하지만 이 소설이 이토록 미국인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당시의 시대상을 잘 반영하며 아메리칸드림을 여실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소설은 때론 비유와 은유를 통해 현실을 그려내고 고찰할 기회를 주기에 큰 힘을 지닌다. (여담으로, 몇 년 전 20세기에 영어로 쓰인 가장 훌륭한 책 1위로 꼽힌 게 《율리시스》, 2위가 《위대한 개츠비》인데 영화에서 닉이 주식 일을 하면서 문학에 소홀해졌다는 내레이션을 하며 《율리시스》를 내팽개친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는 영문학상 제일 어려운 소설로 꼽히기도 한다. 각주가 소설 본문보다 길다고.)

 각설하고, 이러한 배경에 녹아든 인물들을 한번 살펴보자. 개츠비는 소위 돈도 없고 백도 없이 갑자기 억만장자가 된 신흥부자이며, 아메리칸드림을 가슴에 품고 성공과 평등을 추구하는 인물이다. (영화에선 그 성공과 평등에 대한 이상이 green light로 은유된다.) 그에 반해 데이지와 톰 뷰캐넌, 그리고 베이커는 기존의 재산을 물려받은 상류층이자 귀족이며 닉 또한 부유하지는 않지만 혈통 있는 귀족이다. 등장인물들의 이러한 대비는 그들이 사는 곳에서도 드러나는데, 개츠비가 사는 웨스트에그는 신흥부자들이 사는 곳 그리고 뷰캐넌이 사는 이스트웨그는 재산을 세습받은 부유한 귀족들이 사는 곳이다.

 작가의 대변인이라 볼 수 있는 닉은 도덕적 순수성, 청교도적 가치관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인물이다. 그리고 그는 도덕적, 그리고 윤리적으로 타락하고 부패한 귀족과 고위 간부에 대해서는 확실히 비판적이고 시니컬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톰은 데이지를 두고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우고 베이커는 부정한 방법으로 골프 시합에 임하며, 데이지는 차로 여자를 치었음에도 나 몰라라 하며 도망가버린다. 그 외 사회에서 높은 지위를 가진 인물들도 개츠비에게 뒷 돈을 주며 향락을 즐기고 그의 잘못을 눈 감아 주기도 한다.) 이에 반해 그는 개츠비는 옹호하고 칭찬하는데, 이는 꿈과 이상에 대한 개츠비의 순수성 때문이라 볼 수 있다. 비록 데이지와의 결혼이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물질주의를 이용해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모으긴 했지만, 개츠비라는 인물의 본성은 낭만적, 이상적이며 낙관적이다. 닉, 그리고 작가는 개츠비의 이러한 면모를 보고 그를 '위대하다'라고 칭하지 않았을까.

 소설, 그리고 영화는 닉이라는 인물을 통해 관찰자적 시점에서 전개되는데, 그는 사건에서 한 발 물러나 독자와 관객에게 상황을 전달하기도 하고 직접 이야기에 개입하기도 한다. 극 중에서도 직접 종종 언급했듯이, (가령 톰이 주유소 여자와 바람을 피울 때, 또는 개츠비와 데이지의 밀회에 참여할 때) 이렇듯 그는 사건에서 within and without 한 상태를 유지한다. 또한 그는 귀족 가문에 속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타락한 그들을 비판적이고 회의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귀족에 대해 within and without 한 입장을 취하기도 한다.

 영화 초반에 톰은 《유색 인종 제국의 발흥》이라는 책을 언급하며 흑인과 황인 등의 유색인종들이 언젠가 백인을 추월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 내용을 흘려들어 기억이 잘 나지 않을 때쯤, 영화 후반부 개츠비가 데이지에게 결혼을 하자는 말을 꺼낼 즈음 이 책이 다시 언급된다. 뒤늦게 개츠비와 데이지를 발견한 닉이 두 사람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냐며 묻자, 데이지는 닉에게 《유색 인종 제국의 발흥》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고 말한다. 작가는 왜 굳이 작품의 흐름에 큰 의미가 있을 것 같지 않은 이 책을 두 번이나 언급했을까? 잘 쓰인 소설은 어느 한 부분도 의미 없이 채워지지 않는다고들 한다. 즉, 작가가 의도를 가지고 이 책을 언급했을 수도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데이지를 포함한 귀족들이 유색 인종과 근본이 없는 신흥 부자들을 동급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넌지시 표시한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이는 자유와 평등이 보장되어 있으며 노력하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는 아메리칸드림의 실체를 보여주며 비판하는 것이 아닐까. 혹은 아메리칸드림 그 자체가 아니라 특권을 놓지 않으려 하며 아메리칸드림을 부정하는 기득권 귀족들을 비판하는 것일 수도 있다. 실제로 마침내 톰과 개츠비가 만나 데이지를 두고 신경전을 벌일 때 개츠비가 유일하게 이성을 잃었던 순간은 톰이 그의 출신을 거들먹거리며 어쨌든 개츠비가 자신들(뷰캐넌, 닉, 베이커와 데이지)과 동등해질 수 없다고 말했을 때이다. 이는 개츠비의 꿈과 이상, 그리고 그의 모든 노력들을 한순간에 좌절시키는 말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어째서 개츠비라는 인물을 보고 위대하다고 칭하는지 의문을 가지기도 했고, 또 그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기도 했다. 그 수많은 견해들 속에서, 오늘은 이렇듯 개츠비에 대한 견해 중 한 가지를 첨언해 봤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