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영현,〈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를 읽고
살아가며 사랑보다 분노를 내뱉는 순간이 더 많음을 자각했다.
사회를 향해 모두 함께 소리를 모아야 하는 분노도 있지만
내가 말하는 건, 매일의 일상에서 내가 바꿀 수 없는 상황과 환경(이를 테면 일터)에서 비롯되는 분노 말이다.
12시간. 하루의 절반에 달하는 시간. 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6시간.
거기에 준비하고 씻는 시간을 다시 제외하면 5시간.
그마저도 일터에서 비롯된 부정어를 쏟아내거나,
자극적인 소재를 뿜어대는 스마트폰 화면과 스피커에 점령당한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로 채우지 못하는 그 시간들이 너무나 아깝다.
이따금 마주하는 단비 같은 순간을 단지 '찰나'로 여기고 흘려보내는 것이 아쉽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라는 마음가짐을 갖자는 뻔한 말을 실천하자는 것은 아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발생하는 충돌을 막을 수 없음을 안다.
하지만 보다 사랑이 많아지길 선택할 수 있다.
찰나를 영원으로 남기고, 곱씹는 과정 속에서
나는 더 충만해질 수 있다.
하루 10분, 1시간, 5시간, 어쩌면 매일의 절반 이상을 온전하게
내가 선택한 사랑의 시간으로 채울 수도 있는 것이다.
카카오 맵에서 가장 가까운 순서로 정렬한 카페에서 마신 맛있는 커피라든지,
읽고 싶은 책과 듣고 싶은 음악을 발견했다든지,
가볍게 차려낸 음식이지만 행복하게 즐기는 동생의 칭찬을 듣는다든지,
엄마의 마음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다든지 하는
나의 소중한, 찰나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사랑'을 '시간'으로 남기자.
쓰고 찍으면서 한 번,
다듬고 되새기면서 또 한 번,
슬픔과 분노가 올라올 때 반복해서 읽고 들으면서
사랑으로, 평안으로 채워내자.
나를 소중히 하자.
나의 시간을 소중히 하자.
나의 마음과 몸을 들여다보자.
다정함을 잃지 말자.
다정한 눈과 말을 간직하자.
다정함을 나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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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새벽이라도
하루 끝의 새벽은 우울하지만
하루 시작의 새벽은 상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