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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소망 Feb 19. 2024

재롱이와 보온도시락

지금은 생소한 단어가 되어버린 국민학교. 그리고 추억의 그 시절

어머니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3형제의 도시락을 준비했다. 양은도시락에 꾹꾹 눌러 넣은 쌀밥과 반찬이라고는 김치뿐이었지만 사랑과 정성이 곁들어서인지 점심시간이 즐거웠고 친구들과 함께 먹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러던 어느 겨울 초입의  점심시간,  도시락을 꺼내는 친구들의 모습 속에 평상시와는 다른 무언가 변화가 있었다. 몇몇 아이들이 보온도시락을 가지고 온 것이었다.

싸늘하게 식어버린 양은도시락의 찬밥을 먹고있을때  따뜻한 밥에 따뜻한 물을 마시는 아이들이 조금 부러웠지만 괜찮았다. 대다수의 아이들은 다 나처럼 양은도시락의 찬밥을 먹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하루하루가 다르게 보온도시락을 가지고 오는 아이들의 수가 늘어나기 시작했고 며칠사이에 그 숫자가 역전이 되어버렸다. 이제는 조금이 아니라 많이 부러웠다. 밥맛도 없어졌다. 나도 보온도시락에 점심을 싸 오고 싶었다.


재롱아!

학교가 끝나고 집에 가면 제일 먼저 나를 반겨주는 개 이름이다. 재롱이는 나를 보자마자 세차게 꼬리를 흔들며 앞다리를 치켜올려 나를 안으려고 했다. 우리는 같이 마당도 뛰어다니고 계단으로 옥상까지 누가 더 빨리 올라가나 더 빨리 내려오나 경주도 했다

나를 아주 잘 따르고 장난도 잘 쳐서 친구 같은 존재였고 가끔씩 학교에 있을 때 빨리 집에 가서 함께 놀고 싶다는 생각이 나게 하는 개였다


점점 더 보온도시락을 가지고 오는 아이가 훨씬 많아졌다. 이제는 손가락을 꼽을 만큼 적은 수의 아이들이 양은도시락을 가지고 왔다.  따뜻한 밥을 먹지 못하고 찬밥을 먹는 것 보다도  보온도시락이 없다는 것이 창피해지기 시작했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가서 부모님께 이야기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다른 아이들은 다 보온 도시락인데 나도 보온 도시락 사줘요" 이 말을 들은 아버지의 표정이 약간은 굳어졌다. 얼굴에서 고민의 흔적을 엿볼 수 있었다. 그런데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모습을 보며 가정형편을 뻔히 아는 나도 왠지 기분이 좋지 않았고 슬퍼지기까지 했다.


재롱아!

여느 때와 같이 대문을 열고 재롱이를 불렀지만 보이지 않았다. 가끔씩 목줄을 풀어줄 때도 있었는데 목줄까지 보이지 않았고 개집이 정리된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형들이 데리고 나갔겠지'라는 생각으로 머릿속에 들어오는 이상을 느낌을 밀어냈다

부엌으로 들어왔는데 내 눈을 의심케 하는 물건이 벽에 걸려 있었다. 멋진 파란색 보온도시락 3개가 뽐내듯이 부엌 한쪽벽 중간에 위풍당당하게 걸려있었다. 와~ 속으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기분이 갑자기 좋아졌다.

그런데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말처럼 갑자기 나의 가슴을 아리는 생각이 튀어나왔다. '혹시 재롱이를'


아버지가 나오셨다. 그리고 표정 없는 모습으로 한마디 하셨다. "재롱이가 너희 삼형제 밥 따뜻하게 먹으라고 보온도시락 선물하고 멀리 떠나갔다"  더 이상 나도 아버지도 아무말이 없었고 할 수도 없었다. 아버지도 재롱이를 팔고 싶지 않았지만 아들들을 위해 결정을 하셨고 그 결정의 빌미를 준 장본인이 나였기 때문이다.


보온도시락을 싸가지고 갔지만 전혀 즐겁지 않았다. 오히려 양은도시락을 먹는 아이들이 부러웠다.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다. 목을 메게하는 도시락을 먹으며 재롱이와의 추억을 곱씹었다.

수많은 시간들이 지났지만 지금도 찬바람이 불 때면 가끔씩 재롱이가 생각난다. 그 당시에는 나의 점심밥을 따뜻하게 해 주었지만 지금은 나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재롱이가 많이 그립고 순수했던 유년 시절이 그립고 천국에 계신 아버지도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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