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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소망 Apr 20. 2024

아낌없이 주는  어머니

더 많이 주지 못해 마음 아파

어머니는 매일 아침 학교에 가는 삼 형제 도시락을 쌌다. 학교 급식이 없는 때였으니 큰형부터 시작해 막내인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17년 동안 도시락의 굴레에 갇혀있었던 셈이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밥을 하고, 기본 김치반찬에 한두 개 정도 반찬을 만들어 도시락을 준비했던 것 같다. 볶은 김치, 볶은 양파, 어묵볶음이 기억에 많이 남는 걸 보니, 바쁜 아침시간에  볶는 반찬이 빨리 맛있게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당시에는 도시락을 준비하는 어머니의 수고를 깨닫지 못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정말 귀찮고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고등학교 때에는 점심, 저녁 2개의 도시락을 쌌으니 수고도 수고지만 여간 신경이 많이 쓰였을 것이다.


나는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을 타 지역으로 갔다. 1학년때는 기숙사생활을 했지만 2학년 때부터는 자취생활을 했다. 1주일에 한 번씩 집에 왔다가 다시 학교가 있는 자취집으로 갈 때 내 양손에는 다양한 반찬이 들려있었다. 그런 생활이 3년 동안 반복되었다. 대학교 때는 저렴한 학교식당도 있고 친구들과 사 먹는 경우도 있어 반찬을 많이 안 해줘도 된다고 했지만 어머니는 꾸준히 정성스레 반찬을 준비해 주셨다. 대학 졸업 후 직장생활을 하면서  자취를  하게 됐다. 이때에도 어김없이 어머니의 반찬은 계속 제공되었다. 그리고 내가 결혼을 한 이후에도, 어머니의 나이가 팔순이 넘어버린 지금도  반찬을 만들어준다. 하지만 지금은 그 양과 빈도가 예전만 같지는 않다.


언젠가 어머니에게 우리 삼 형제 도시락 싸는데 힘들지 않았는지 물어본 적이 있었다. 어머니는 그때는 다들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힘들다는 생각은 안 했고, 다른 집 아이들처럼 맛있는 반찬도 못해주고 맛있는 것도 못 사줘서 마음이 좋지 않았다고 했고 도리어 우리 삼 형제가 고생이 많았다며 그 당시가 생각나는지 눈물을 글썽였다. 그 말을 듣는 나도 눈시울이 붉어지며 울음이 나오려 했지만 꾹 참았다. 내가 울면 어머니 말에 동조하는 것 같아 어머니 마음이 더 아플 것 같았기 때문이다.  대신 어머니가 싸주는 도시락이 제일 맛있었다고 그런 생각하지 말라고 위로를 해드렸다. 이런 어머니를 생각하면 한 소년이 유년부터 노년이 될 때까지 아무 불평 없이 자기를 희생하며 주기만 했던 나무의 이야기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는 소설이 떠오른다.  어머니는 지금도 노인복지관에서 주는 간식이 있으면 안 먹고 모아놨다가 나를 준다. 과자 한 두봉, 음료수 한 두 병 정도이지만 나는 사양하지 않고 좋다고 받는다. 무엇이든 자식에게 주고 싶어 하는 마음을 받아주고 싶고 그 마음을 공감하기 때문이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평생을 자식에게 주고 있으면서도 남들처럼 많이 주지 못한 것을 마음 아파하는 어머니를 보면 고맙기도 하고, 그 사랑과 헌신에 많이 화답하지 못해 죄송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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