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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소망 Jun 24. 2024

내 삶의 과자 연대기

과자가 주는 달콤한 추억

누구나 과자에 대한 달콤한 기억이 있다. 나의 첫 기억은 '뽀빠이'라는 이름의 과자다.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이었기에 수십 년 전 기억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야 하지만 지금도 시판되고 있는 과자여서  기억의 조각을 찾는 것은 어렵지가 않다. 라면처럼  꼬불꼬불한 형태의 노란색 면을 짧게 잘라놨는데 바싹거리는 식감에  고소한 맛이 났다.  작고 많은  알갱이가 봉지에 들어있어서  하나씩 먹지 않고 한 움큼씩 손바닥에 부어 한꺼번에  입에 넣거나, 물 마시듯 과자봉지에  입을 대고 털어 넣기도 했다.  봉지를 뜯을 조금 세게 잡아당기면 봉지가 터져 수백 개의 과자 알갱이가 분수처럼 공중에 산발해 버릴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하는데  행여나 봉지를 뜯다 과자가  땅에 떨어져도 흙만 불어 날리고 바로 입으로 직행했. 자꾸 먹다 보면 이 텁텁해 물이 먹고 싶은데 그 안에 들어있는 별사탕을 먹으면 이상하게도 입안 상태가 초기화되어 계속 먹게 되는 과자였다. 수십 년 동안 여러 세대의 입맛을 다 통과하고 아직도 팔리고 있는 걸  보면  잘 만든 과자인 것 같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빠다코코낫'이란 과자를 처음 접했다. 직사각형 비스킷 위에 버터를 발라 만든 것처럼 보이는데 다른 과자의 단맛과는 약간 다른 풍미가 있어  좋아했었고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변함없는 맛을 유지하고 있어 내가 좋아하는 과자이다. 이외에도 오징어땅콩, 자갈치, 꿀꽈배기, 샤브레, 웨하스, 산도 등이 초등학교 때 자주 먹었던 과자로 기억에 남아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새우깡과 맛동산을 좋아했다. 그  두 개의 과자는 한 봉지에 많은 양이 들어있음에도 중독성이 있어 계속 끝까지 먹게 된다. 새우깡에는 짭조름한 맛이 맛동산에는 땅콩과 설탕의 조화로운 맛이 내 입맛을 사로잡았다. 학창 시절  학교 주변에는 어김없이 핫도그, 튀김 등 튀긴 음식을 많이 파는데 그런 음식의 기름진 맛에 길들여진 이유 때문인지 과자도 새우깡, 맛동산처럼 유탕처리된 것을 좋아했다.

군대에서는 건빵의 가치를 재평가했다. 단순하게  밀가루를 오븐에 구운듯한 맛이어서 즐겨 먹진 않았는데 군대 훈련소에서 나눠주는 건빵은 훈련에 지치거나 허기질 때 맛과 힘을 주는 마법 같은 과자였다.  

성인이 되어서도 많은 종류의 과자를 먹었다.  그중에 한 에피소드로 인해 좋아하게 된  과자가 있다. 직장에서 나와 다른 한 명의 직원이 매일 번갈아가며 숙직을 하던 때가 있었다. 어느 날 숙직실을 정리하다 TV뒤쪽에 숨겨져 있던 과자를 발견했다. 숙직을 교대로 하는 직원이 나 몰래 혼자 먹으려고 사다 논 것이었다. '콘칩'이라는 과자였다. 다음날 그 직원에게 왜 과자를 숨겨놨냐고 물어봤다. 어떤 의도인 줄 알기에  대답 없이 서로 웃기만 했다.  하지만 잘못한 것이 없음에도 많이 무안해했다. 다음날 숙직실 책상 한가운데에 콘칩이  있었다. 숙직실에서 TV를 보며 처음 먹어보는 콘칩은 옥수수의  풍미를 입안 가득 느끼게  했고 TV 보는 재미도 더 끌어올렸다. 그 일을 계기로  콘칩을 볼 때마다 그 일이 생각나 나도 모르게 미소가 흘러나오고 과자를 살 때  우선순위에 오르게 되었다.


내 삶의 무대에 많은 과자가 엑스트라처럼 등장했다가 퇴장했다. 하지만 오랜 기간 동안 내 입맛을 사로잡으며 계속 나와 함께하고 있는 과자들도 있다. 그중에서 몇 개의 과자를 무대밖으로 내보내고 달콤한 추억으로만  간직하려 한다. 콘칩, 새우깡, 맛동산이다. 한때 맛있게 먹었던 기억에 이끌려 손이 가지만 정작 입안에서는 예전의 풍미로 미각을 자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세 과자의 공통점이  유탕처리된 즉 기름에 튀긴 과자라는 점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기름기가 많은 음식을 즐기지 않다 보니 과자도 유탕처리된  과자에는 손이 가지 않게 된다. 


행복한 추억을 줬지만 이제는 사 먹고 싶지 않은 과자들을 생각하니 뭔가 허전한 생각이 든다. 그 과자들을 기름에 튀기지 않았다면 어떤 맛이 나올지도 궁금했다. 그러면서 나에게 철학적 질문을 던져본다.

기름의 고소한 맛에 너무 의존해  원재료의 맛이 묻혀버린 유탕처리 과자처럼,  생각이나 신념, 주관을 이기주의, 물질주의 같은 달달한 세속적 가치관에 섞어 기름에 튀기듯 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래서  소금이 그 맛을 잃듯 본연의 자아와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나중에는 자신에게도 스스로 실망하는 경우가 생기는 건 아닌지? 오랜 시간 동안 나와 함께한 과자의 발자취되돌아보며 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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