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늘소망 Feb 23. 2024

아내의 까마귀 발

그리워지는 그 시절 그 장소

내 아내는 보험설계사이다. 지금은 25년 가까이 일을 해서 베테랑이지만 많이 서툴고 힘들었던 햇병아리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그 일을 하게 된 지 1년남짓 만에 나를 만났고 함께 가정을 꾸렸다.      

지금은 그런 모습이 많이 사라졌지만 아내가 처음 일을 할 때에는 보험설계사들이 고객을 만날 때나 상품을 판매할 때 자기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새겨진 명함과 판촉물을 많이 가지고 다녔다.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출근할 땐 보험 상품설명서, 판촉물 등이 가방에 한가득  있었다. 나름대로는 고객을 만난다는 기대와 많은 상품을 판매하겠다는 들뜬 마음으로 아침을 시작했을 것이다. 하지만 영업활동의 어려움을 간접적으로나마 알고 있는 나는 아내의 고된 하루가 머릿속에 그려져 현관문을 나서는 뒷모습이 안쓰럽기도 하고 애처롭기도 했다. 그리고 더욱 나의 마음이 무거워지게 하는 건 양손도 부족할 정도로 짐도 많고 가방도 무거운데 승용차가 없는 뚜벅이였다는 것이다.     

아내의 가방과 수첩에는 버스승차권이 많이 있었다. 이곳저곳에서 많은 고객을 만나기 위해 시내버스를 이용해야 했기 때문이다. 걷다가 버스 타다가 고된 일과의 연속이었지만 퇴근해서는 항상 웃는 모습으로 들어와서  오늘 누굴 만났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재잘거리곤 했다.    

 


비가 많이 오던 어느 여름날이었다. 비가 오는 날은 무거운 가방에 우산까지 들어야 하므로 평소보다 힘든 하루가 예고되었다. 아내는 우중충한 날씨에 기분마저 지는 것을 이겨보려는 듯 하얀 원피스를 입고, 베이지색 가죽끈으로 만들어진 샌들구두를 맨발에 신고 무장하듯 가방과 우산을 들고 힘차게 집을 나섰다. 그리고 분명 오늘도 영업을 잘해봐야지 하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영업실적을 많이 올렸으면 좋겠다는 생각보다 오늘도 너무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해를 마치고 퇴근을 했다. 현관에 들어서자 아침에 신고 갔던 아내의 샌들구두가 보였다. ‘벌써 퇴근했나?’ 평소 나보다 퇴근이 늦었던 터라 반가운 마음보다는 좀 의아했다. 그리고 내가 왔음에도 아무런 인기척도 없었다.  침실 방문을 열었다. 아내가 있었다. 아침에 입고 갔던 하얀 원피스 그대로 침대에 누워 자고 있었다. 오늘 하루 너무 피곤해서 옷 갈아입을 기력도 없이 침대에 누워버린 것 같았다.     


물끄러미 아내의 자는 모습을 바라보다 시선이 발끝을 향했다. 발목과 발의 피부색이 달랐다. 발목은 살색인데 발은 까마귀 발처럼 시컴해져 있었다. 비 오는 날 하루 종일 걸으며, 버스를 타고 내리며 얼마나 많은 흙탕물이 발에 튀었을지 상상이 되었다. 한 손엔 무거운 가방을 또 한 손엔 우산을 들고 흙탕물에 발이 시컴해지는 것도 모르고 바쁘게 돌아다녔을 것이고 버스를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우산을 폈다가 접었다가 수십 번도 더했을 것이다. 아내의 하루가 흑백 TV 영상처럼 머릿속에 보여졌다. 아내가 깨지 않게 조용히 물수건을 가지고 왔다. 흙탕물이 튀겨 발에서 굳어버린 흙을 닦아냈다. 그리고 내 마음속에 흐르는 눈물도 닦아냈다.

    


힘들었지만 애틋했던 시절이 훌쩍 지나가 버리고 언제 그런 시절이 있었냐는 듯 지금은 승용차를 타고 다니고 무겁게 많이 들고 다녔던 상품설명서 대신 가벼운 태블릿 pc를 멋지게 들고 다닌다. 하지만 나는 왠지 가끔  그때가 그리워진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비가 오는 날 예전  아내의 회사 앞 시내버스 승강장을 지날 때면 그녀의 까마귀발이 생각나며 마음이 흐뭇해진다.


작가의 이전글 재롱이와 보온도시락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