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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소망 Mar 08. 2024

'행복이'니까 행복해야 돼

유기견과 행복한 여행

나는 군생활을 일반 군부대가 아닌 교정시설 내· 외부 경비업무를 하는 ‘경비교도대’라는 곳에서 했다. 교도관들과 함께 근무했고 소대장이나 중대장 같은 간부들도 모두 교도관이었다. 교도관들 중에 일부는 경비교도대원들이 생활하는 건물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연립주택 관사에서 살고 있었다.

 두 건물 간의 거리는 약 500m 정도였지만 야산을 지나는 좁은 오솔길로 이어져있고 부대 주위에 철재 울타리가 있으며, 오솔길이 부대에서 끝이 나기 때문에 교도관 가족들이 이쪽으로 오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런데 내가 전역을 약 6개월 정도 남겨둔 시점이었다. 네다섯 명의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 아이들이 부대 울타리밖에서 강아지 한 마리를 데리고 놀고 있었다. 아이들의 관심은 오롯이 강아지뿐이었고 계속 번갈아 쓰다듬고 있었다. 흰 바탕에 검은 무늬가 있는 바둑이 종류였는데 작고 정말 귀여웠다. 나도 어렸을 때부터 개를 좋아했기 때문에 그 강아지에게 관심이 갔는데, 더욱 관심을 끌게 한 것은 아이들이 불러대는 '행복이'라는 강아지 이름이었다. 예쁜 강아지를 보고 있는 것도 좋은데 '행복아', '행복이'라고 여기저기서 아이들이 불러대는 말까지 듣고 있자니 내가 절로 행복해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한참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 2시간마다 이어지는 교대근무를 나갈 시간이 되었다. 아쉬운 마음으로 그 자리를 떠났지만 행복이가 계속 생각이 났다. 근무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행복이가 그곳에서 놀고 있는 것을 기대했다. 하지만 너무 큰 기대였을까? 아이들도 행복이도 보이질 않았다. 이상하게도 허탈하고 허전했다. 또다시 그 아이들과 행복이가 같이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검은색, 하얀색 복슬 복슬한 털에 검고 맑은 눈망울 그리고 작은 꼬리를 빠르게 흔들며 얌전히 아이들의 손길을 받으며 놀던 행복이의 모습이 머릿속에 계속 아른거렸다. 다음날 무언가에 이끌려 행복이를 처음 봤던 그 시간대에 그곳에 갔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아이들은 없었다. 아쉬움으로 그곳을 바라봤다. 그러던 중  무엇인가 움직이는 물체가 나의 시선을 붙잡았다. 풀숲 사이를 조심스레 왔다 갔다 하는 ‘행복이’였다 너무 반갑고 놀라웠지만 또 한편으로는 아이들은 어디 가고 혼자만 여기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강아지가 홀로 교도관 연립사택에서 이곳까지 오기에는 너무 먼 거리였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이 잠시 머리를 스친 후 나는 바로 울타리 문을 열어 행복이에게 다가갔다. 나의 손길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나에게 왔다 그리고 꼬리를 빠르게 흔들었다. 한참 동안 행복이를 쓰다듬었다. 그렇게 일이십 분의 시간이 흘렀어도 아이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행복이도 집으로 갈 마음이 없어 보였다. 아니 돌아갈 집이 없어 보였다. 나는 직감적으로 알았다. 어제 그 아이들이 행복이를 이곳에 유기하러 왔다는 것을... 그래서 버려진 행복이는 여기저기 헤매다 사람의 체취가 느껴지는 이곳에 다시 찾아온 것 같았다.  마음이 많이 아팠다. 이렇게 귀여운 강아지를 버리다니 그것도 이름이 행복이 인데 이름과 너무 맞지 않는 것 같았다.  


행복이를 데리고 와서 물과 먹을 것을 줬다. 그리고 창고 한편에 잠잘 곳을 만들어줬다. 그리고 다음날 다시 그 아이들을 기다려 보기로 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어도 아이들은 오지 않았다. 버려진 게 확실했다.

행복이에 대한 잡다한 생각이 떠올랐다. 어떤 환경의 집에서 살았을까? 어른들은 왜 아이들을 시켜 이곳에 갖다 놓으라고 했을까?  강아지를 버리고 가는 아이들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행복이란 이름은 누가 지었을까? 행복이를 기르던 집은 행복했을까? 하는 생각들이 정신을 혼란하게 했다. 그러나 지난날은 부질없었다. 지금 현재는 버려져 있기 때문이다.  행복이를 연민하게 만드는 이런 생각은 다 머릿속에서 날려버리고 내가 다시 행복이에게 행복을 찾아주기로 다짐했다. 이제부터는 내가 행복이의 주인이고 친구이다.

이런 나의 마음을 알았는지 행복이는 나를 잘 따랐다. 그 당시 나는 계급이 높았으므로 그 누구 하나 내가 행복이를 기르는데 방해를 하거나 부대 내에서 맘껏 뛰노는 행복이를 귀찮아하거나 괴롭히지 못했고 오히려 부대원들도 예뻐하고 같이 놀아줬다. 그러나 밥을 주고 잠자리를 살피고 씻기는 것은 나의 몫이었다. 밥은 사료를 주지 않고 매일 부대원들이 식사 후 남긴 음식을 버리는 잔반통에서 행복이가 먹을만한 것을 골라서 줬다. 그 덕분인지 행복이는 건강하게 잘 자라줬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근무를 마치고 생활관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평상시에는 나를 보자마자 막 뛰어오는 행복이 였는데 그날은 나를 보고도 가만히 옆으로 누워 있었다.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졸려서 누워 있는 자세가 아니었다. 그리고 얼굴이 매우 괴로워하는 모습이었다. 허겁지겁 달려갔다. 그리고 몸을 쓰다듬었다. 심장이 멎는다는 말이 이 느낌일까? 부드러웠던 행복이 몸이 점점 굳어가고 있었다. 너무 놀라 머릿속이 하얗게 된 것처럼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넋을 놓아버렸다. 그러다 바로 정신을 차리고 무엇인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왜 행복이가 이렇게 됐는지 원인을 알아보려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근처에 식사 후 남은 음식을 버리는 잔반통이 있었다. 그곳에 날아드는 파리나 해충을 없애기 위해 가끔씩 소독액을 뿌리는데 행복이가 잔반통 주위에 떨어진 음식을 먹다가 소독액 묻은 음식을 먹었을 것 같다는 추측을 했다. 그리고 그 추측에 확신이 더해지자 학창 시절에 배운 ‘염기성’, ‘산성’이라는 화학용어가 바로 뇌리를 스쳤고 소독액은 알칼리성이니 산성용액을 먹이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뒤를 이었다. 산성용액이 무얼까? 아 비눗물! 비눗물을 먹이면 중화가 될 것 같았다. 바로 식당 조리실로 뛰어가서 물에 식기세제를 타서 가지고 왔다. 그리고 그 세제물을 행복이 입을 벌려 넣었다. 매우 괴로워하면서도 세제물을 삼키기 시작했다. 내가 자기를 살리려 하고 있다는 믿음이 있었던 것 같았다.

두세 번 먹이며 배를 만져줬다. 얼마 후 지성이면 감천이란 말처럼 기적이 일어났다. 딱딱히 굳어가는 행복이 몸이 조금씩 부드러워졌다. 정말 신기했고 기뻤다. 잠시 후 행복이는 안정을 찾았다. 뱃속에서 염기성 소독액이 산성인 세제물과 섞여서 중화가 된 것 같았다. 나를 믿고 세제물을 힘겹게 삼켜준 행복이가 너무 고마웠다.  그 사건 이후로 행복이는 더욱더 나를 좋아하고 따라다녔다. 예전에는 밥을 주는 주인이므로 나를 좋아하고 따라다녔다면 지금은 생명의 은인으로 나를 좋아하며 따라다니는 것 같았다.


‘거꾸로 매달아도 국방부 시계는 돌아간다’는 말처럼 군대에서의 시간은 매우 느리게 흐르는 것 같지만 그래도 멈추지는 않는다. 어느덧 나의 군생활도 한 달 남짓 남았다. 보통 이때쯤이면 대부분의 군인들은 마음이 많이 들떠있을 것이다. 물론 나도 그랬지만 너무나 큰 고민이 있었다. 바로 행복이에 대한 고민이었다.

내가 전역하면 행복이를 돌봐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혹시 있다 하더라도 사람이 계속 바뀔 것이다. 또 누구에게도 관심받지 못하는 천덕꾸러기가 될 가능성도 있었다. 한 번 버림을 받았는데 또 한번 버림을 받는다는 것은 아무리 짐승이라지만 가혹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전역 시 데리고 가기에는 적잖은 부담이 있었다.

부모님과 살고 있는 집은 작은 평수의 상가주택이었다. 전세였고 3층짜리 건물이었는데 3층에서 살았다. 3층 내부에는 수도시설도 화장실도 없어 건물 세입자들이 외부에 있는 시설을 공동으로 사용해야 하는 열악한 주거환경이었다.

가족끼리만 살아도 좁고 불편한데 행복이까지 함께 살기에는 여러모로 적합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는 행복이가 더 이상 강아지가 아니었다. 소형견이지만 바둑이 종류로 어느 정도 몸집이 있었다.

또 하나의 고민이 꼬리를 물었다. 집에 갈 때 지하철, 고속버스, 시내버스 등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하는데 행복이를 태워 줄지도 의문이었다. 탈 수 있다 하더라도 고속버스를 4시간 정도 타야 하는데 행복이가 조용히 가만히 있을지도 걱정됐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부대 내 공중 전화기 앞에 섰다. 망설여졌다. 부모님은 분명 나를 믿고 나의 말을 들어줄 것이다. 그리고 행복이를 데리고 오라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부모님의 허락보다도 행복이로 인해 부모님이 불편해질 것을 염려하였다. 나도 타지에서 대학생활을 해야 하므로 내가 계속 돌볼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행복이로 인한 불편함도 기르는 것도 모두 부모님 몫이었다.

전화신호가 갔다. 어머니가 전화를 받았다. 행복이 이야기에 밝은 목소리로 흔쾌히 데리고 오라고 하셨다. 고마웠지만 너무 미안했다.

전역날이 되었다. 군용 얼룩무늬가 있는 20L 정도의 반원형 여행용 가방에 행복이를 넣고 목만 나오게 한 후 자크를 잠갔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주위사람들이 불쾌해하지 않도록 최대한 행복이를 숨겨야 했다. 이런 나의 마음을 알았는지 행복이는 답답한 가방 속에서 나오려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혼잡한 지하철에서 나는 한쪽 귀퉁이에서 행복이를 꼭 껴안고 체온을 나눴다. 그리고 시외버스를 타고 가는 4시간 동안 내 무릎 위에 앉혀놓고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말없는 대화를 주고 받았다.

집에 도착했다 부모님도 개를 좋아했기에 행복이를 보고 기뻐하셨다. 행복이도 부모님을 잘 따랐다. 행복이 때문이 웃는 일도 많아졌다. 행복이가 우리 가족에게 웃음이라는 행복을 선물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행복이 배가 점점 불러오더니 새끼를 낳았다. 행복이가 우리 가족에게 새 생명이라는 또 하나의 행복을 선물한 것 같았다.


몇 년간의 행복한 시간을 우리 가족들에게 안겨준 후 행복이는 하늘의 별이 되었다. 행복이와 함께했던 시간이 많이 흘렀어도 그때를 생각하면 마음이 포근해진다. 그리고 너무나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행복’이라는 말을 생각해 본다. ‘행복이’가 ‘행복이’이므로 행복해야 되는 것처럼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행복이’로 부르고 싶다. 김행복, 이행복, 임행복처럼 그래서 모두가 '행복이'니까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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