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늘소망 Mar 21. 2024

작은 차 큰 기쁨

티코의 추억


나의 직장생활은 20대 중반, 농촌 면지역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내게는  모든 것이 많이 서툴고 어렵고 힘들었고 게다가 덤으로 교통수단의 불편함까지 있었다. 직장생활을 위해 농촌지역으로 가기 전까지는 도시에서 살았기 때문에 거리 이동에 큰 불편함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시내버스는 보통 10분 ~20분 정도 기다리면 탈 수 있었고 아무리 오래 기다려도 30분 내에는 왔다. 그런데 농촌 지역은 달랐다. 군내버스 배차간격이 기본 1시간이고 2시간 간격도 있으며 늦은 오후시간에는 그마저도 없었다. 업무상 읍내에 갈 일이 자주 있었는데 운행 시간도 대중없어 한번 버스를 놓치면 1시간 이상은 기다려야 했다. 해야 할 일도 많고  정해진  시간까지 가야 하는 일도 있는데  버스가 안 와서 짜증도 나고 시간을 길에서 낭비한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인내심을 기르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추운 겨울날 버스를 2시간 동안 기다린 적이 있었다. 짜증을 넘어 화가 났다. 그리고 나의 인내심이 임계점에 다다랐다.    

 


승용차를 사야겠다는 맘을 먹었다. 하지만, 사회 초년생이라 모아 논 돈이 없었다. 그렇다고 적은 월급에 할부로 차를 사는 것도 부담이 되었고 중고차는 잘못 샀을 경우 수리비가 많이 나가는 경우를 주위에서 봤기 때문에 그마저도 머뭇거려졌다. 하지만 어떻게든 차를 사야 했다. 더 이상 추위에 떨며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내게 '작은 차 큰 기쁨'이라는  매혹적인 광고문구로 살며시 속삭이듯 다가온 차가 있었으니 바로 대우 국민차 티코였다. 국민차라는 수식어에 맞게 가격이 저렴했고 취득세, 등록세 감면의 세제혜택이 있었다. 머뭇거릴 이유가 없었다. 차를 사기 위해 영업사원과 차량가격을 알아보던 중 티코도 다 같은 티코가 아니었다. 옵션에 따라 가격차가 많이 났다. 내게 차량의 옵션은 사치였다. 그래서 옵션이 전혀 없는 깡통차를 샀다. 영업사원이 타고 오는 내 파란색 티코를 처음  마주한 날 정말 감격스러웠다. 나에게도 차가 생기다니 신이 났다. 이젠 더 이상 기다려도 기다려도 오지 않는 버스 때문에 마음 졸일 일이 없었다. 버스가 끊긴 밤에도 읍내에 나갈 수 있었다. 야호~ 신났다.

티코 신문광고

그렇게 나는 티코를 신나게 타고 다녔다. 이곳저곳 가고 싶은 곳을 막 돌아다녔고 읍내 일 보러 갈 때도 편하게 갈  수 있었으며 시간도 많이 절약할 수 있었다. 효도랍시고 어머니를 모시고 '드라이브'라는 것도 했고, 차 없는 직장동료들도 태워주며 은근히 생색을 내기도 했다. 일주일에 한 번은 물세차도 하고 보닛도 열어서 먼지도 닦았다. 티코와 함께하는 시간이 참 좋았고 또 고마웠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처음에 얻었던 효용이 줄어드는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 티코에도 적용이 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티코에 대한 만족도가 낮아졌다. 내구성도 없고 안정감도 없고 승차감은 물론 내릴 때 멋지게 보이는 하차감도 없었고 장점이라고는 휘발유 1L에 24km를 가는 경제성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참 사람의 마음이 간사한 것 같다. 예전에는 티코의 장점만 크게 보이고 단점은 작게 그리고 대수롭지도 않게 생각됐는데,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났다고 반대가 돼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티코를 외면할 수가 없었다. 생애 첫차라는 수식어를  나에게  부여하며  티코가 아니면 줄 수 없는 많은 추억을 선사했기 때문이었다.

생애 첫차 티코를 마주했을 때의 감격, 차 안에 꽃향기 가득 채우고  아내에게 했던 프러포즈, 좁은 차 안에 정원 5명을 친구들로 꽉꽉 채워 많이 불편했지만 그랬기 때문에 더 즐거웠던 여행, 차 안이 좁았기에 더 가까이서 대화를 많이 할 수 있었던 딸의 유치원 등·하원길 등의 기억들이 티코가 떠나가면 희미해지고 잊힐 것 같았다.  그래서 티코를  떠나보내지 못하고 한 해 두 해 새로운 추억을 만들며 서로의 동반자 관계를 이어갈 때쯤 사람으로 치면 권태기가 티코에게 찾아왔다. 가끔씩 고장도 나고 연비도 떨어지고, 외관은 광택도 다 잃어버리고 흠집도 많이 생겼다. 이제는 힘들다고 자기를 나의 일상에서 놔주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그럴 때마다 카센터에 데리고 가 달래면서 티코와의 인연의 끈을 놓지 않았다.


 티코를 만난 지 10년이 되던 해 어느 날 밤, 신호대기 중이었는데 갑자기 엔진에서 굉음이 났다. 너무 소리가 커서 두려운 마음에 시동을 끄려고 했지만 꺼지지 않았고  자동차 열쇠까지 차에서 빼도 꺼지지 않았다. 그리고 굉음은 계속되었다. 두려움을 넘어 공포가 밀려왔다. 집에 거의 다 왔기에 차를 조심히 운행해 살고 있는 아파트 주차장에서 차를 세웠다. 여전히 시동은 꺼지지 않았고 굉음은 계속되었으며 심지어 보닛에서 하얀 연기가 올라왔다. 보닛을 열어봤다. 엔진 아랫부분 어딘가가 벌겋게 달궈져 있었다. 너무 놀라 어찌할 바 몰랐다. 마침 아내가 사준 차량용 소화기가 생각이 나서 급하게 꺼내 소화기를 발사했다. 소화액이 나가는 칙소리에 시동도 꺼지고 엔진룸도 안정을 찾았다. 다음날 티코는 폐차장 견인차에 실려   나를 떠났다. 그 모습을 보면서 오랜 친구와 헤어지는 것처럼 마음이 뭉클했다. 그러면서 마음속으로 말했다. 그동안 좋은 추억과 기쁨을 줘서 고맙다고..


가끔씩 티코를 회상할 때면 2개의 시구가 머릿속에 오버랩된다.

슬픔·이별을 노래한 한용운 시인의 '님의 침묵'에는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라는 시구가 있다. 티코에게 이 시구를 변경하여 읽어주고 싶다. ‘아아 티코는 갔지마는 나는 티코를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오래되어 효용이 많이 떨어진 차가 되어버렸어도 나는 보내지 않았기에 아직도 내 맘속에는 서로의 추억을 곱씹으며 티코가 계속 달리고 있는 것 같다.

첫 마음의 싱그러움을 표현한 정채봉 시인의 시 '첫 마음'에는 ‘첫 출근하는 날 신발끈을 매면서 먹은 마음으로 직장일을 한다면 (중략)  이 사람은 그때가 언제이든지 늘 새로움이기 때문에 바다로 향하는 냇물처럼 날마다가 새로우며 깊어지며 넓어진다.’라는 시구가 있다.     

비록 작고 저렴한 깡통차였지만, 그것을 처음 샀을 때의 기쁨과 감격 그리고 감사했던 마음으로 매일 나의 하루하루를 산다면, 날마다 새롭고 마음이 깊고 넓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행복이'니까 행복해야 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