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수탈에 고향을 떠나야만 했던 설움
작열하는 여름 태양은 이삭이 조금씩 피어나는 초록 벼를 더욱 눈부시게 했다. 앞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은 살랑살랑 벼들을 흔들며 녹색물결을 만들어 냈고 산 위에서 미끄러지듯 내려오는 산바람에는 싱그런 벼들의 풀내음이 묻어났다.
"여보, 벼가 이렇게 잘 자라는 걸 보니 올해도 풍년일 거예요"
잡초를 뽑기 위해 논으로 향하며 만배에게 만배 부인 순이가 말했다.
"그러게. 태풍만 없으면 좋으련만"
검게 그을린 얼굴에 부리부리한 눈매를 가진 만배가 순이에게 댓구하며 멈춰 섰다. 그리곤 밀짚모자를 고쳐 쓰고 파란 하늘을 쳐다봤다. 뭉게구름이 유유히 흘러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이 논을 일구기 위해 고생했던 옛 시절이 생각났다.
마을 사람들과 함께 산 밑의 흙을 파고 돌을 캐서 , 바닷물을 막고 갈대밭을 메우고, 수로를 만들었는데 얼마나 힘이 들었던지 회상하는 것만으로도 몸 이곳저곳이 쑤시고 결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잘 사는 미래의 꿈이 있는 곳이기에 만배는 이곳에 오면 힘이 나고 기분이 좋았다.
풍년을 꿈꾸며 논에 들어가 여기저기 숨어있는 잡초를 뽑았다. 그렇게 한참 일하다 보니 어느덧 서쪽 하늘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이제 그만하고 가요. 애들 배고프겠어요"
순이가 피를 한 손 가득 모아 논둑 위로 올라가며 말했다. 만배는 아직 못다 한 일이 있어 아쉬운 듯 머뭇거리다가 곡괭이로 헐어진 논둑을 다지며 올라왔다.
"내일은 논둑을 손 좀 봐야겠어. 두더지가 구멍을 내서 헐어진 곳이 있네"
혼잣말인지 순이에게 하는 말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농기구를 챙겨 집으로 오는 길 마을 입구에 작은 종이가 붙어있었는데 대충 붙였는지 바람에 날릴 듯 말 듯했다. 안내문이었다. 무슨 내용인지 궁금해 둘은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동양척식주식회사에서 토지조사사업을 하니 세 달 이내에 토지 신고를 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신고할 때 필요한 내용이 만배의 머리를 어지럽게 했다. 토지의 면적, 취득 연월일, 소유권 취득원인, 소유권을 증명할 수 있는 문서, 토지의 연혁 등.
아버지 때로부터 농사짓던 조그마한 땅을 개간해서 넓혔기 때문에 언제부터 소유했는지 알 수도 없었고, 소유권을 증명할 문서도 없었다. 멍하니 안내문을 바라보던 부부는 일단 집에 가서 생각해 보기로 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바쁜 농사일로 토지 신고 절차는 차일피일 미뤄졌고 결국 토지신고 기한이 지나버렸다.
토지신고를 까맣게 잊은 채 벼수확을 마친 만배는 보리를 심기 위해 순이와 함께 논에 나왔다. 보리파종 준비를 하는데 저 멀리서 세명의 남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한 명은 양복을 입고 측량 기구를 어깨에 들쳐 매고 있었고, 두 명은 검은색 제복에 곤봉을 차고 있었다. 꼭 순사 같았다.
그들은 멀리서 오고 있었지만 만배를 향해 온다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죄지은 게 없었지만 왠지 불길한 마음이 들었다. 그 사람들이 한걸음 한걸음 다가오며 가까워질수록 만배의 심장은 두근두근 빨리 뛰기 시작하며 긴장이 되었다.
이윽고 다다른 양복 입은 남자가 만배를 보고 인상을 찌푸린 채 일본말로 뭔가 말했다. 그리고 그 말을 함께 온 사람이 통역을 했다.
양복 입은 사람의 이름은 우메노이고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 직원이라고 했다. 함께 온 두 명중 한 명은 일본인 순사이고 통역을 하는 다른 한 명은 한국인 순사였다.
토지조사를 하기 위해 측량을 하러 왔다고 했다. 그리고 만배의 토지는 토지신고가 안되어 있기 때문에 동양척식주식회사에 귀속된다고 했다.
만배는 너무나 어이가 없고 기가 차서 정신이 나간 듯 아무 말도 못 하고 가만히 서 있었다.
"그게 무슨 말이래요? 지금까지 농사를 지었는데 토지신고 안 했다고 우리 땅이 아니라는 게 말이 돼요?" 울부짖듯 목청을 높여 순이가 말했다.
"조선총독부의 토지조사령 명령에 의한 것이다. 오늘부터 이 땅의 주인은 동척에 있다. 이 땅에서 계속 농사짓고 싶으면 소작료를 내야 한다" 우메노의 앙칼진 목소리가 만배부부의 마음을 후벼 팠다. 황당한 상황 속에서 잠시 넋이 나갔던 만배가 조금씩 정신이 돌아오며 끓어오르는 분을 참을 수가 없었고,
수년동안 갈대밭이던 이 땅을 일구기 위해 피땀 흘렸던 기억이 만배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며 생겨나는 억울한 감정을 제어할 수도 없었다.
"신고가 뭐고 측량이 뭔지 나는 모른다. 어제까지 농사 지어먹던 내 땅인데, 이 왜놈은 무슨 소릴 지껄이는 거야. 썩 꺼져"
만배가 악다구니를 쓰며 곡괭이를 쳐드는 순간 일본 순사의 곤봉이 만배의 머리를 향했다.
눈앞에서 불이 번쩍하며 머리가 깨질 듯 아프고, 하늘이 노랗고, 앞이 캄캄했다. 곤봉 한대에 만배의 저항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하고 아픔인지, 설움인지, 억울함 때문인지 모를 눈물이 얼굴을 가득 적셨다. 순이도 만배를 향해 앉아 큰소리를 내며 울었다. 일본 순사의 곤봉 앞에 할 수 있는 거라고 울음밖에 없다는것이 만배를 더 처량하게 했다.
한동안 흐느끼던 만배가 울음 섞인 목소리로 넋두리를 했다.
"우습다. 신고와 측량을 모르는 죄로 나는 내 땅에서 오늘부터 소작농이 되었단다. 땡볕에 감자 껍질처럼 등이 다 벗어지게 일하여도 이 쌀은 내 새끼들 입으로 들어가지 못한단다. 참새 새끼 마냥 배고프다 입 벌리고 울고 있는 내 새끼들을 그저 바라만 봐야한단다"
절규에 가까운 만배의 부르짖음을 차마 볼 수 없다는 듯 태양은 붉은 여운을 남기고 도망치듯 서산으로 제 모습을 숨겼다. 그리고 땅주인으로서의 삶도 저 산 너머로 가버린 슬픈 하루였다.
동척에서는 아주 헐값에 일본인에게 만배 땅을 팔았고 만배는 그 일본인 지주에게 수확량의 50%를 소작료로 냈지만 비료값과 세금까지 부담해야 했고 매년 소작료도 조금씩 올렸기 때문에 만배의 형편은 점점 어려워졌다.
"여보 더 이상 소작농으로 살 수 없을 것 같아. 옆집 김 씨처럼 우리도 부산으로 가면 어떨까? 그곳에 방직공장이 있는데 농사일보다 덜 힘들고 봉급도 많이 준데"
피곤에 지쳐 막 잠이 들려하는 순이에게 만배가 말했다.
"저도 그 말을 들었지만 객지에 가면 고향이 그리울 것 같아요. 그곳에서 잘된다는 보장도 없고요"
졸린 눈을 비비며 순이가 말했다. 새로운 삶에 용기가 나지 않는 것 같았다.
만배는 순이의 손을 지그시 잡았다.
"힘들어도 다시 시작해 보자고. 내가 지금처럼 당신 손을 꼭 잡아줄게"
"그래요~ 그럼 떠나요. 소작농이라는 꼬리표가 없는 곳으로"
부산을 가기 위해 만배 부부와 세명의 아이들은 목포역 앞에 단출한 짐보따리를 지고 서있었다. 부산에 가기위해서는 대전까지 호남선 기차를 타고 갔다가 다시 경부선 기타로 갈아타야 했다.
만배는 한참 동안 하늘을 쳐다봤다.
지나간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많은 고생을 했고 억울함도 있고 설움이 있었지만 한때는 행복했고 꿈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기차가 출발할 시간은 다가왔지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정든 고향을 다시 올 기약 없이 떠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나 아려왔다.
그때 역 안 어디선가 노랫가락이 들려왔다. 목포 출신 가수 이난영이 부르는 목포의 눈물 노래였다.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면, 삼학도 파도 깊이 스며드는데, 부두의 새악씨 아롱 젖은 옷자락, 이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설움'
만배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있는 듯한 구슬픈 곡조와 가사가 위로가 되었고 새로운 삶을 향해 떠날 준비가 되게했다.
그렇게 만배는 목포의 눈물 노래를 배웅 삼아 기차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