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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nowfield Feb 16. 2024

그만한 가치

2024







오전 9시, 지난밤의 냉기가 가득한 거실의 좁고 딱딱한 소파 위에서 얇은 담요 속으로 움츠려 있던 나는 눈을 떴다.

운동 후 씻지 않고 잠들어 버려서 얼룩진 얼굴로 아침에 눈을 뜨니, 처음 느낀 감정은 분노였다.


왜 나는 이것밖에 하지 못할까


어제 운동이 끝난 후 집에 돌아온 시간은 오후 6시였다.

오래간만에 운동을 무리하게 한 탓인지 집에 오자마자 온몸이 아파 잠시 소파에서 누웠는데 그대로 15시간을 잠들어버렸다.

지난밤에 내가 해야 할 일들은 수없이 많았다.

아니 이미 그전부터 미처 끝내지 못한 일들이 수없이 쌓여있었고 지난날들도 그랬듯 어제도 그것을 처리하지 못했다.

나는 분명히 그런 상황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지만, 요 근래 바닥나버린 체력과 정신력이 따라주지 않는다.

그렇게 나는 오늘 하루를 나에 대한 분노와 실망감으로 시작했다.


오늘도 일을 해야 하니 분노를 뒤로하고 일을 할 준비를 시작했다.

부랴부랴 씻고 준비한 후 일을 하기 위해 프린트를 하려고 아이패드를 바라보았는데 화면이 뿌옇다.


잠을 15시간이나 잤는데도 눈이 안 보이네













5년 전쯤부터 나는 간헐적으로 눈이 안 보였다.

정확히는 눈이 안 보이는 것보다는 초점이 잡히지 않았다. 마치 카메라로 촬영할 때 초점을 잡기 위해 반셔터를 누르는 과정과 유사했다.

간헐적으로 발생하는 증상이었고 생활에 큰 지장은 없었기에 그대로 방치했다.

그렇게 작년부터 이 증상은 간헐적이 아닌 일상 그 자체가 되었다.

그래도 이전에는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초점이 맞아지곤 했지만, 이제는 한 번 초점이 흐려지면 잠에 들 때까지 계속해서 세상이 뿌옇게 보이곤 했다.


단순히 시력이 나빠졌을 거라 생각해서 안경을 맞추러 안경점에 방문했는데 안경사는 나에게

“시력 괜찮으신데요? 안경을 왜 맞추려는 거세요?”라고 물었다.

내 시력은 10년 전 라식 수술을 했을 때 그대로였다.


카메라의 반셔터 기능처럼 눈에도 초점을 맞춰주는 근육이 있는데, 잠이 부족할 경우 이 근육이 제 역할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지난 10년 넘게 첫 5년은 2-3일에 1-2시간, 그 후로는 하루에 2-3시간씩만 잠을 자며 공부와 일을 해왔는데,

수면 부족이 누적되면서 눈에 초점을 맞춰주는 근육이 약해진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그 이후 나는 하루에 7시간을 자기 위해 노력을 한 결과, 확실히 5시간 이상 잔 날은 눈이 잘 보이고,

잠을 5시간 미만으로 잔 날은 어김없이 눈이 안 보이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단순히 전날 충분한 수면만 취하면 눈이 괜찮을 것이라 믿었는데,

오늘은 무려 13시간이나 잤지만 초점이 맞지 않았다.


눈의 초점이 맞지 않을 때면 신경이 예민해진다.

뇌에 압력이 찬 것만 같은 통증과 더불어 손님과 만나야 하는 날이면 혹시나 실수할 수도 있다는 걱정에 마치 불안증이 온 사람처럼 심장이 뛴다.

오늘은 전날 할 일을 끝내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잠을 충분히 잤음에도 불구하고 보이지 않는 눈 때문에 분노를 넘어 세상이 원망스러웠다.


왜 항상 나만













나는 어릴 적부터 줄곧 탓하는 사람을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아왔다.

‘저 사람 때문에, 내 환경 때문에, 이 상황 때문에’

‘내가 이걸 안 하는 이유는 절대 내가 부족하거나 게을러서가 아니라 이런 이유 때문인 거야.’

나에게 있어서 이런 말은 힘들게 노력하지 않고자 하는 단순한 게으름과 나약함들을

온갖 핑계를 동원해 내 이 모든 것이 자신만의 문제가 아닌 외부의 문제인 거로 포장하는 행위로 보인다.




나는 ‘때문에’라는 말을 기피한다.

내 지난날은 ‘때문에’를 ‘덕분에’로 만들며 살아왔다.

태어났을 때부터 약한 몸 ‘덕분에’ 나는 건강한 식습관을 가졌다.

가난한 집안 ‘덕분에’ 나는 돈을 버는 것에 욕심을 가졌다.

알코올중독과 가정폭력을 행사하는 아버지 ‘덕분에’ 일찍이 타인에게 기대지 않고 스스로 세상을 사는 법을 배웠다.

혼자 길에서 노숙하며 사회를 시작한 경험 ‘덕분에’ 망함에 대한 겁 없이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가졌다.

초졸이라는 학벌 ‘덕분에’ 회사에 입사할 수가 없어 직업의 선택지가 취직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방향성을 가졌다.

특출 난 재능이 없는 ‘덕분에’ 내가 해낼 수 있는 포지션을 정확히 파악하는 능력을 갖췄다.

학습 능력이 떨어지는 ‘덕분에’ 지식에 대한 열망과 호기심, 배우는 자세를 가졌다.

내가 가진 많은 결핍들은 내가 어떤 행동을 해야 할 동기가 되었고

결핍을 뛰어넘으며 나는 지금까지 계속해서 성장해 왔다.

내가 그렇게 살아왔기에 남 탓과 상황 탓을 하며 안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한심하게 때로는 안쓰럽게 바라봐왔다.


그렇게 살아왔는데 나는 오늘 나에게서 그동안의 내 신념에 반하는 모순적인 모습을 발견했다.

체력이 받쳐주지 않아 스케줄을 소화하지 못하는 나에게 분노하고,

잠을 잤음에도 보이지 않는 눈 때문에 분노하고 있다.


나는 왜 이렇게 화가 나 있는 거지.














지난날을 되돌아보니 내가 분노하는 상황은 항상 같았다.

건강한 식습관을 유지했는데도 유전적 요인 때문에 나는 당뇨 초기 증상이 왔고

이후 찾아온 호르몬 질환 때문에 살이 20kg이나 쪘다.

알레르기에 취약한 체질 때문에 음식을 잘못 먹거나 조금만 먼지가 많은 환경에 가도 아파서 병원 신세를 져야 했으며 꽃가루 알레르기는 내게 매년 봄마다 눈물, 콧물을 흘리며 잠에서 깨는 나날을 선사했다.

스트레스에 예민한 탓에 연인과 약간이라도 다툼이 생기면 위경련이 일어나 응급실로 가야 했다.

일이 잘돼서 이대로만 유지하면 돈을 모을 수 있겠다 싶을 때에도 약한 면역력 때문에 주기적으로 아파서 오랫동안 일을 쉬며 모았던 돈을 다 써야 하는 상황을 매번 맞이했다.

나이가 들며 체력이 떨어지는 걸 느껴 운동을 시작했더니 한 달도 안 돼서 편도염에 임파선염, 혓바늘까지 돋아 두 달을 누워있었다.

다시 체계적으로 운동을 배워보자는 마음으로 PT를 시작해서 이제 막 체지방도 10kg이나 빠지고 조금씩 근육도 늘고 있는데 갑작스러운 체중 감소에 몸이 놀란 탓인지 매일 먹던 음식에 새로운 알레르기 반응이 생기고 호르몬 질환까지 심해져 다시 살을 찌워야 했다.

유전적으로 심장이 약한 탓에 조금만 무리해도 몸에 무리가 와서 운동을 꾸준히 할 수가 없었다.

나이가 들수록 약해지는 체력에 반해 여전히 내가 움직인 만큼 수입이 생기는 구조라 힘들어도 움직여야 하고, 움직일수록 힘들어져 다시 아파지는 악순환.


이럴 때마다 나는 소리를 치며 울었다. 아프거나 서러워서 우는 게 아닌 분노 때문에 나오는 눈물이었다.

탓을 돌릴 곳이 없어 그저 세상이 원망스럽고 마치 누군가 지독하게 내 인생을 방해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누구보다 열심히 산 것 같은데.


남들 놀 때 일하고 공부하고, 외식이나 배달 음식도 아닌 자연식 위주로 먹고, 중간에 멈추긴 하지만 운동도 꾸준히 하고, 술자리에 가서도 물만 마시며 그렇게 살았는데

왜 자꾸 나만 아픈 거야.

왜 아픈 것 때문에 해야 할 일조차도 하지 못하는 거야.

전에는 이 정도 아픈 건 참고해 낼 수 있었는데 왜 이제는 안 되는 거야.


매번 분노했었다.

분노하다 다시 몸이 나아지면 집중해서 일을 하고 또다시 아플 때면 분노하고.

그렇게 10년 정도를 반복하며 지냈는데 오늘에서야 내가 왜 분노하는지에 대해 처음으로 생각해 봤다.


나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해 나는 화가 났던 것 같다.

지금까지 주변에서 ‘너는 안돼’라고 말하는 모든 일들을 해 왔던 내가

마음만 먹으면 뭐든 다 할 수 있다고 믿고 살아왔던 내가

타고난 건강과 체력은 통제할 수 없음에 무력감을 느껴 화가 났다.














오늘도 마찬가지였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 정도 스케줄은 아무 무리 없이 해냈는데 이젠 해낼 수 없는 체력에,

내 또래의 다른 아이 중 나보다 더 잠도 안 자며 열심히 사는 친구들이 많은 것 같은데 내 눈만 고장 난 것 같다는 생각에 화가 났다.


내 뜻대로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무력감을 느껴 화가 나는 나를 보니 지난날 내가 한심하게 때로는 안쓰럽게 바라보았던 사람들이 떠올랐다.

내가 내 건강을 통제할 수 없음에 무력감을 느끼는 것처럼

그들도 그들이 처한 상황과 환경을 통제할 수 없음에 무력감을 느꼈던 걸까

사람마다 각각의 다른 주제 안에서 이겨낼 수 있는 역량이 다르듯 그들이 단순히 힘들게 노력하고 싶지 않아서

핑계를 대거나 나약한 게 아닌, 내가 건강이라는 주제에는 무력감을 느끼는 것처럼 그들도 그들의 상황이나 환경이라는 주제에 무력감을 느꼈던 거지 않을까.




갑자기 PT 선생님과 했던 대화가 떠올랐다.

선생님이 물었다.

“요즘 잠 좀 주무세요?”

2시간 정도 잤어요. 며칠 전부터 하는 게 있어서 3일 동안 책상에 앉아있었는데 3일이 지나는지도 모르다가

오늘 아침에 운동 가야 한다는 알람 보고 급하게 잠깐 자다 왔어요.

“어떻게 사람이 3일 동안 책상에 앉아있어요?”

3일 동안 책상에 앉아 있는 게 PT를 50분 받는 것보다 쉬워요.




사람마다 이겨낼 수 있는 역량이 다른 만큼 더 쉽게 이겨낼 수 있는 주제도 다를 수 있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

그들은 그들이 처한 환경과 상황의 주제가 이겨내기 힘들었을 수도 있듯이

나는 내 건강과 체력을 내 힘으로 이겨내기 힘들다는 걸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는 어떻게 해야 내가 가진 체력에 맞춰서 일을 할 수 있을까?


한번 몰입하면 될 때까지 잠도 안 자고 밥도 안 먹고 해내는 성향을 가진 덕에 지금까지 성장해 왔지만

이 성향으로 인해 나는 안 그래도 약하게 태어난 몸의 건강을 더 악화시켰다.


그렇다면 이 성향을 죽이고 체력에 맞춰 적당하게 스케줄을 짜서 일을 하면 되지 않을까?


다시 태어나면 태어났지 이 성향은 내 의지로 바뀌지는 않을 것 같다.

작년에 7시간 자는 것을 목표로 노력했던 것을 생각해 보면 길어야 3일이다.

이런저런 고민 끝에 나는 내 건강과 일을 맞바꿔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 하는 일이 내 건강, 시력과 맞바꿀만한 가치가 있는 일인가?


아무래도 성향을 바꾸는 쪽보다는 하는 일을 지금보다 가치가 있는 일로 바꾸는 것이 나에겐 더 쉬울 것 같다.

미래에 건강이 심각하게 나빠지더라도 지금 하는 일로 건강을 잃은 것보다는

가치가 있는 일을 해서 건강이 나빠지는 편이 내 건강 값을 더 높게 받을 것 같은 느낌을 받을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문득 감사했다.

지금만큼 체력이 떨어지기 전에 무언갈 미친 듯이, 원 없이 열심히 해본 경험을 해봤음에 감사하다.

건강이 더 나빠지기 전에 내 몸 상태를 알아차렸음에 감사하다.

약한 몸 덕분에 예민하게 몸 상태를 확인하는 버릇이 생겨 큰 병이 생기기 전에 예방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초점이 안 맞는 것조차 이렇게 불편한데 눈이 보인다는 것에 감사하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다른 방향을 찾을 수 있는 정신력을 가진 것에 감사하다.

이미 나에게는 과분할 만큼의 돈을 벌어봐서 돈이 나에게 큰 가치는 없다는 것을 일찍이 깨달아 돈에 따라가지 않고 가치 있는 일을 선택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본업을 줄이고 대신 가치 있는 일을 시작하는 데에 시간을 할애해도 먹고사는 데 문제가 없을 만큼의 위치에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2024년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였다. 초콜릿은 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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